서울무용제 초청 공연 '여우못'과 '자메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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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제 초청 공연 '여우못'과 '자메뷰'
  • 정지혜 객원기자 sugun11@hanmail.net
  • 기사출고 2013년 11월 06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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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순수무용 전 장르 아우르는 경연 우승자들의 무대

 

▲ 한국무용협회

제34회 서울무용제의 막이 올랐다. 서울무용제는 한국 무용계를 대표하는 축제다.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등 순수무용의 전 장르를 아우르는 만큼 볼거리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다. 특히, 세대를 아우르는 무용인들과 색다른 안무작, 국내 무용 트렌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서울무용제는 '명작무'와 '서울무용제‧전국무용제 수상단체'의 초청 공연을 선보였다. 10월 31일 열린 '서울무용제‧전국무용제 수상단체' 공연은 제32회 서울무용제의 대상을 차지했던 이혜경&이즈음무용단의 '여우못'과 제21회 전국무용제 대상의 영예를 안은 광주현대무용단의 '자메뷰'가 무대에 올랐다. 두 작품은 국내를 대표하는 상을 수상한 단체인 만큼 더없이 유려한 무대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 한국무용협회

전래동화의 새로운 변신
이혜경&이즈음무용단 '여우못'

제32회 서울무용제 대상을 수상한 이혜경&이즈음무용단의 '여우못'은 여우못 전설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탄생한 작품이다. 새롭게 재해석된 전래동화는 현대적 감각과 함께 의외의 반전을 관객에게 안긴다. 낯익은 결말은 무너지고, 새로운 결말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익숙한 이야기에서 얻은 생경한 결말은 관객의 예상치를 벗어나며 신선한 즐거움을 터트린다.

'여우못'은 시작부터 색다르다. 형광 조명이 내린 무대에 스산한 분위기가 스치면 여우령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무용수들은 괴기스러운 몸짓으로 단숨에 객석의 공기를 제압한다. 안무가 이혜경은 한국무용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작품의 전반에는 원형의 동선이 자주 드러난다. 무용수들은 퍼졌다 모이기도 하고, 강강수월래처럼 줄이어 동그랗게 돌아들기도 한다. 한국무용의 묘미인 음악 없이 '호흡'만으로 한 장면을 구현해내는 것도 인상적이다. 춤꾼들은 잔잔한 연못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고요하고도 동적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작품은 음악을 다채롭게 사용한다. R&B를 떠올리게 하는 가요풍의 음악과 긴장감을 높이는 긁는 듯한 현악기의 음색, 국악인의 소리 등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여기에 음악과 음악 사이에 삽입되는 대사는 연극적 뉘앙스를 풍긴다.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풍부한 소리의 사용은 '여우못'만의 특색을 더한다. 한국무용은 '곱다'라는 관객들의 흔한 인식을 깨기에도 충분하다. 

오브제의 활용도 눈에 띈다. '나무꾼'을 연기하는 무용수의 손에는 나무판이 들려있다. 나무판은 나무꾼을 상징하는 오브제인 동시에 그가 짊어져야 할 운명과 고뇌 등을 상징한다. 사슴을 어깨에 얹고 온 남자 무용수가 장방형의 조명 아래서 나무판을 활용해 춤을 추는 장면은 호흡과 감정이 손에 그러질 듯한 애절함이 묻어나왔다.

선녀복이 등장하는 장면은 '여우못'의 명장면 중 하나다. 뒤돌아 있는 선녀의 옷이 거대하게 펼쳐지면 등, 어깨, 소매, 치맛단 사이로 여우령들이 얼굴을 비죽 내민다. 장난기 가득한 여우령의 얼굴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쾌하다. 여우령들은 각기 옷을 찢어 사라지는데, 이 사이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장면은 선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옷을 빼앗기는 것과 나무꾼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과감한 생략과 재치로 그려냈다.

▲ 한국무용협회

격동의 몸짓
광주현대무용단 '자메뷰'

광주현대무용단의 '자메뷰'는 시작서부터 비치는 비극의 서사로 관객을 단숨에 압도한다. 장중한 음이 무대를 가로지르면 붉은 천을 선율처럼 입은 무용수들이 온 몸을 꿈틀대며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무용수들은 폼페이 화산재에 산채로 묻힌 화석들의 절규처럼 기괴하다.

'자메뷰'는 미시감을 뜻하는 심리학적 용어다. 경험한 일이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작품은 주제와 음악, 안무를 한 몸처럼 엮었다. 웅장하게 객석을 내지르는 음악은 관객을 작품 속 깊숙이 안내하고, 격동의 안무는 관객을 상상력의 세계로 몰아넣는다.

안무는 '자메뷰'라는 주제를 그 자체로 상징한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이는 미시감은 연속적이고 격렬한 동작으로 그려진다. 비슷한 이미지들은 겹쳤다가 분산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동작들이 비슷하게 겹쳐지기도 한다. 안무는 트라우마의 상흔처럼 돌고 돌며 객석을 엄습한다. 무대 연출은 절제와 폭발의 미덕을 제대로 살린다. 조명은 낮은 조도와 제한된 색 사용으로 춤을 은밀하게 비춰낸다.

'자메뷰'의 압권은 주도면밀한 군무다. 군무는 활주하는 클래식 선율과 강렬한 타악의 타격감이 더해져 거대한 중압감을 객석까지 미끄러트렸다.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현대인의 감정들은 무용수들의 무게 실린 움직임으로 공감과 설득력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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