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강나연 기자 | 국내 배터리 업계가 중국 사업을 본격 재조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정체), 미·중 갈등 장기화 등의 영향이다.
북미·유럽 등 기존 글로벌 시장에 힘을 싣고 있는가 하면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과 SK온은 중국 합작법인을 보류하거나 철회했고, 삼성SDI도 신규 합작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오랜 시간 배터리 산업의 전략적 중심지였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데다 소재 공급망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조비용을 갖췄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니켈·리튬·코발트 등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 내 광산·정제업체와의 협력도 중요했다.
이에 LG엔솔은 중국 완성차 업체와 난징 합작공장을 운영했고 삼성SDI는 지난 2015년 시안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뒀다. SK온은 2023년 GEM과 전구체 합작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던 LG엔솔과 SK온이 최근 중국 시장을 조정하고 있다.
LG엔솔은 최근 코발트 생산업체 화유코발트와 설립한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JV)의 공장 설립을 연기했다. SK온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중국 GEM이 지난 2023년 추진한 3자 합작법인 지이엠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 설립은 끝내 무산됐다.
삼성SDI는 기존 시안 공장은 유지하고 있으나 최근 수년간 중국에서의 신규 합작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업계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IRA과 전기차 캐즘, 미·중 갈등 장기화 등 복합적인 변수와 맞물려 있다.
IRA는 중국산 배터리 및 소재를 사용할 경우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외국 우려 기업(FEOC)'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기준을 강화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중국 리스크 줄이기' 전략이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이와 동시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북미 현지화와 ESS 시장에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LG엔솔은 북미 합작법인을 통해 현지 생산을 확대 중이다. 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는 이미 가동 중이며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혼다와의 합작 공장은 2025년 말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애리조나 단독 공장은 지난해 4월 착공해 오는 2026년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ESS 시장 공략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엔솔은 최근 일본 전자업체 옴론과 5년간 2GWh(기가와트시) 이상의 가정용·상업용 LFP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조율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태양광 업체와도 다음달 1조원 규모의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삼성SDI는 북미에서 제너럴 모터스(GM), 스텔란티스와 각각 합작법인을 설립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전기차 배터리 기가팩토리를 건설 중이다. 스텔란티스와의 '스타플러스에너지'는 올해 말 가동을 시작한 1공장(33GWh)에 이어 오는 2027년 초 2공장(34GWh) 가동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 공장의 전기차 배터리 팩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투자도 진행 중이다. 미국 대형 전력기업 넥스트에라에너지와 6.3GWh 규모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SK온은 중국 내 합작법인을 철회하고 북미 시장 중심으로 수요처를 확대하고 있다. 닛산과의 장기 공급 계약, 포드와의 블루오벌SK 합작법인 등 미국 켄터키·테네시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ESS 전략도 구체화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말 ESS사업실을 사장 직속으로 격상하고 기존 전기차 라인을 LFP 기반 ESS 라인으로 전환했다. 올해 말까지 가시적 성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IRA에 더해 고율 관세까지 겹치면서 중국 중심 공급망은 구조적으로 제한을 받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현지 생산과 조달 역량이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