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킬리만자로. 마사이 추장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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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킬리만자로. 마사이 추장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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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절부터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을 좋아했다. 첫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다. "킬리만자로는 만년설로 덮인 산이며 해발 19710 피트(5895미터)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서쪽에 있는 정상은 마사이어로 '응가예 응가이'로 불리는데 '신의 집'이라는 뜻이다. 정상 근처에는 얼어서 말라붙은 표범 시체가 하나 있다.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밝힐 수 없었다". 영화로 또는 개정판으로 세월에 밀려가면서 들춰보곤 했던 문장이다.

최선을 다해 사는 우리 삶의 열망을 담은 것이거나 미래를 모르는 인간의 영원을 노래한 것으로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주인공 해리가 총상으로 생명이 꺼져가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구원을 받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이해하며 살았다. 탄자니아 암보셀리 서쪽 가장 높은 키보 봉을 가리키는 그 킬리만자로가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져 있다.

케냐에서 대륙의 남쪽으로 종단하는 길이었다. 나이로비에서 만난 아프리카 친구와 함께 탄자니아 국경을 향한지 4시간 만에 장엄한 봉우리를 만났다. 근처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바다 같은 망망대지 지평선이다. 사방 어디에서 보아도 킬리만자로 만년설 봉우리는 신비한 기운으로 우뚝했다.

오후의 햇빛이 부드러운 시간에 약속된 마사이 마을에 도착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을 지나 한참을 더 달려야 탄자니아 국경근처 마사이 촌락 '올두바이' . 마을 어귀에 5명의 마사이 청년들이 미리 나와 반겨주었다. 울타리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마사이 부족 여러 명이 하얀 접시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내 양쪽으로 원형을 갖춰 춤을 췄다. 외부손님에 대한 환영이다.

 

▲탄자니아 마사이 부족들과 함께. 왼쪽 멀리 킬리만자로가 보인다.
▲탄자니아 마사이 부족들과 함께. 왼쪽 멀리 킬리만자로가 보인다.

남자들은 붉은 색과 자주 빛 천을 걸쳤다. 붉은 색과 파란 천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목걸이와 귀걸이는 모두의 장신구였다. 남성들은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거나 하늘을 찌르며 춤추고 여성들은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노래를 불러줬다. 마을 어귀에는 가시나무 울타리가 둘러쳐 있었다. 외부세력 침입금지. 마을 밖은 광활한 초원의 세계다.

마사이족은 중부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사는 원주민이다. 케냐 삼부루족과 탄자니아 아루샤족이 포함된다. 평균 신장 177센티. 장신들이다. 근처 부족들이 뭉쳐 생활한다. 소똥으로 만든 반원형 지붕의 낮은 집을 만들고 그곳에 거주한다. 초원의 가시나무는 들짐승들의 습격을 막는 유용한 도구다. 울타리와 생활도구의 재료로 다양하게 쓰인다.

남자는 송아지나 염소가죽으로 만든 '케이프' 를 걸치고 여자는 코티를 착용한다. 씨족은 남성중심이다. 당연히 모든 결정은 남자들이 주도한다. 일부다처제의 전통이 깊고 같은 연령대 남자들은 서로 아내를 빌려주기도 한다. 유목민 마사이족은 용감하다. 역사상 한 번도 노예가 되어본 적이 없다. 노예역사의 유일한 예외다. 전투적이고 반항심이 강해서 백인 노예상이나 아랍인들과 일전을 불사하며 자신들을 지켜냈다.

야만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초기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노예사냥은 중지되었다. 굴복하지 않는 마사이의 기개 때문이었다. 이들은 연중 유목으로 초원을 떠돌며 산다. 고기와 우유, 동물의 피를 마신다. 마사이가 날렵한 이유는 하루 한 끼 정도만 먹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곧고 쭉 뻗은 다리는 매력적이다. 걸음걸이에 신비가 숨어있는 듯하다.

요리에는 기름이나 설탕 소금 같은 양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구워서 먹는다. 초원에서 많이 걷고 적게 먹으면 당연히 마사이처럼 될 것 같다. 튼튼한 치아는 마사이족의 자랑이다. 가시나무 가지를 부러트려 만든 이쑤시개는 대화 내내 추장의 노리개 겸 칫솔이었다.

젊은 추장의 이야기로 가슴이 아팠다. "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초원에 풀이 많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말라붙어 풀이 없어지고 염소들이 배고픈 계절이 오면 우리도 염소처럼 슬퍼집니다".

 

▲마사이 마을 추장과 함께
▲마사이 마을 추장과 함께

수천 년 동안 마사이 부족은 같은 문화권을 지켜왔다. 하지만 오랜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오리지널 마사이는 이제 거의 없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은 제국주의가 그어놓은 경계다. 외부세력이 강제 분할한 땅에서 살게 된 것이다. 양쪽의 마사이가 어떻게 다른지를 묻는 나의 질문은 정말 생각 없는 우문이었다.

이 근처 올두바이 계곡에서는 인류의 시원으로 알려진 유물들의 출토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 고고학자 리키 부부가 1930년대부터 평생을 바친 곳이다. 유인원인 고릴라가 인간으로 진화한 지역으로 지목된다. 두발로 걸었던 '오스트랄로 피데쿠스 보이세라'. 180만 년 전의 화석이 발견되어(1959) 세상을 놀라게 했다. 큰 아들 조나단이 석제 도구를 발견(1960)했고 둘째 아들 리처드는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에서 190만 년 전 '호모 루돌펜시스'를 출토(1970) 해냈다. 리키 가족은 인류의 줄기를 거슬러 올라간 고고학계의 횃불로 평가받고 있다.

인류는 600만 년 전 침팬지에서 갈라져 직립하는 오스트랄로피데쿠스로 진화했다. 300만 년 전 도구를 사용하는 구석기 호모하빌리스로 이어졌다. 이들이 자바원인과 베이징 원인이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으로, 4만 년 전 동굴 벽화 등을 남긴 신석기 시대 '크로마뇽인' 으로 진화해 왔다.

유럽인들은 입술이 두툼하고 키가 훤칠한 마사이족을 고대 로마 병사들이 내려와 뿌린 후손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작가 헤밍웨이는 특히 이들을 좋아했다. 아프리카 일대 200만 명의 마사이들은 킬리만자로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 암보셀리 국립공원 근처에 모여 살고 있다. 국가의 국민이라는 개념보다 마사이 부족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아직도 강하다.

 

▲생전의 헤밍웨이가 마사이 청년들과 복싱을 즐기는 모습
▲생전의 헤밍웨이가 마사이 청년들과 복싱을 즐기는 모습

케냐 정부가 사자 서식지 보호를 위해 마사이족 이주를 강요하다가 실제로 사자 30여 마리를 잡아 죽인 역사가 있다(2005). 자신들보다 사자가 중요하면 사자무리를 다 잡아 죽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창과 활만으로 저항했다. 케냐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소는 마사이 최고의 재산이다. 가장 많이 키우는 가축이다. 케냐 설화의 한 대목이다. "은가이()는 지상을 동경한 몇 명에게 밧줄로 내려가도록 허락했다. 소와 양, 염소를 함께 보냈다. 이 동물들을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함께. 그런데 어느 날 양을 잡아먹었다. 분노한 은가이는 천국으로 돌아가는 밧줄을 끓어버렸다. 지상에 버려진 아이들이 죽도록 빌었다. 은가이가 응답했다. 지상에 보낸 소와 양을 정성껏 길러 만족할 만큼 숫자가 불어나면 그때 돌아올 수 있는 밧줄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소는 하늘이 보내준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족이 되었다.

스위스에서 만든 마사이 워킹 슈즈는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소유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마사이들도 많아졌다. 내가 만난 오지의 원주민 모습은 방문객들을 위한 서비스로 봐야 한다. 많은 지역에서 상당한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떠날 때 습관처럼 들고 온 책 한권이 끝나간다. <오브 아프리카. OF AFRICA>는 마지막 책장을 덮기가 아쉬웠다. 아프리카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레 소잉카(1934-. 나이지리아 출생)의 작품이다. 검은 대륙의 지식인 소잉카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문학에 기대었다. 그것이 사상을 운반하는 위대한 도구라는 신념으로 평생을 보냈다.

아프리카 면적은 중국과 미국, 인도와 유럽을 합치고도 남는다. 외부세계의 오랜 억압과 편견에서 벗어나 이 땅의 주인들이 전정으로 그들의 서사를 펼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남아프리카 토착신앙 '오리사교'의 가르침처럼 "지혜와 타협, 공존의 정신" 이 피어나길 바란다. 피해자 아닌 조정자로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세상의 완성. 소잉카의 희망을 희망한다.

마사이들은 전통언어와 스와힐리어를 함께 쓴다. 도시로 나간 부족들은 경비원이나 노점상 등으로 생활하다가 돈 벌면 다시 초원으로 돌아간다. 소똥을 태워 끓인 우유를 마시며 가족이 함께 밤하늘의 별을 본다. 캄캄한 허공, 수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별들은 여전히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아프리카의 밤은 신비의 세계다. 대부분 전기가 아직 없는 세상이라 원시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별을 보며 명상하다가 코끼리 울음소리로 여명을 맞았다. 마사이 언어(스와힐리어) 몇 마디를 되 뇌이며 킬리만자로 롯지에서 다시 새벽잠을 청했다.

잠보(별일 없지).

맘보(별일 없어).

하쿠나 마타타(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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