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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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이게 아닌데

 

 

 

역사상 처음 여성대통령 시대를 맞은 우리국민들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다. 자긍심과 국격 상승이라는 선물까지 함께 받은 듯했다. 내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해서 대통령을 뽑았는지 무용담들이 세상을 덮고도 남았던 지난 한 달 반이었다. 약속을 지키고 처음과 끝이 똑같이 가지런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후한 점수였다. 사연 많은 독재자의 딸이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동정적 지지를 한 몸에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제 내각을 어떻게 짜고 새 시대를 열 것인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게 아닌데'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청와대에 경호실을 따로 설치하고 장관급 실장으로 직위를 높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정희 시대의 음습한 경호실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그림자' 가 어른거림을 느꼈다. 국가안보실을 신설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남북관계를 개방적이고 전향적으로 풀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냉전과 유신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분위기는 아닌지 걱정하는 시선들이 많다. 안보실 신설이 시대에 맞는지의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할 말은 많지만 어쨌거나 당선인의 국정철학이 담긴 조치들이겠거니 하던 시민들은 총리 후보 파동에서 제대로 열을 받은 것 같다. 남의 집 재산이나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특권으로 일탈된 행동들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과연 맞는지 인선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일이 더 커지지 전에 본인이 벼슬자리를 접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대선 전부터 걱정해왔던 박 당선인의 스타일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총리후보 드라마'를 시청한 격이다. 낙마한 김용준을 인수위원장에 계속 주저 앉힌 것도 모양새가 사납다. 자퇴생에게 차기 정권의 골격을 그려보라는 것인데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인수위원장을 그렇게 상처받은 인사에게 맡겨도 되는 자리인지 묻고 싶다. 또 기대에 못 미치는 총리감을 선보였으면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쯤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언론이나 국민들을 향해 '이런 식으로 하면 인재를 고르지 못 한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기대 밖이다.

혹시 당선인은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의 추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혼자만의 판단과 프레임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문제다. 집단지성으로 현안을 해결하고 중지를 모아도 답이 나올까 말까한 복잡한 시대에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면 뜻하지 않는 실수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역사의 수많은 리더들이 보여준 교훈이다. 독선과 아집, 비밀주의로는 풀 수 없는 것이 국정(國政)이라는 방정식이다.

언론 동업자 출신이어서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윤창중 인사부터 시작해 불과 몇 주 사이에 이동흡 파동, 김용준 낙마를 지켜보는 심정이 착잡하다.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워지고 있다. 인사가 만사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렇게 외쳤건만 결국 인사를 망사(亡事)로 몰아가고 있다. 정영사(政英舍) 출신들의 인수위 대거 진출 때부터 걱정했던 일이다. 이것이 지나간 정권의 인사 실패작 전초전은 아닌지.

이러라고 젊은이들과 등 돌리며 박근혜 당선인에 올인 했는지 실망하는 중년들이 늘고 있다. 취임도 하기 전에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취임식 축제분위기와 정권출범 6개월 정도의 허니문 기간은 없었던 일이 될 것 같다. 총리후보 첫 단추 실패에 대한 자괴감이 크다. 대선후보와 통치자는 근본부터가 달라야 한다. 통치자는 특정 정파나 지역의 얼굴이 아니라 민주 공화정의 대표다. 이에 걸 맞는 철학과 행동이 요청된다.

왜 이 나라 지도자들은 대권을 쥐는 순간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주요 포스트 후보들이 주변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세 때 보여주던 유연함은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소통이 막힌다. 묻지 마 스타일에 누구의 질문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소문, 면전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토를 달면 얼굴이 굳어지고 눈에서 레이저광선이 나오는 느낌이라는 풍문들은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밀실, 밀봉, 비밀, 함구. 이런 것들은 왕조시대에나 있었던 폐습이다. 음모론의 진원지요 불안을 키우는 그림자다.

최근 핀란드 역사를 읽었다. 러시아, 스웨덴 양 강대국 사이에 끼어진 반도가 우리 처지와 너무나 비슷한 작은 나라. 그 틈바구니에서 오늘의 강소국 핀란드를 이끈 여성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 스토리는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12년을 집권했고 지난해 퇴임했다. 퇴임 당시 지지율 80%, 경이적인 기록이다. 유엔사무총장으로 거론될 만큼 국제적 리더십을 인정받지만 외국 출장 때는 호텔방에서 혼자 다림질을 하고 머리를 만지는 소탈한 국모(國母)였다.

늘 넉넉한 미소와 배려가 트레이드 마크인 할로넨 대통령. 자신이 직접 밝힌 성공비결이다.

"모든 지도자는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란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이 변화를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자리에서 내려왔는데도 무엇 때문에 그녀가 핀란드 인들에게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는지를 한번 관찰해 볼 일이다.

나의 아집과 독선을 버리면 국민들은 가슴을 연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휘두르면 그들은 재빠르게 등을 돌린다. 권력을 대하는 민초들의 생리다.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무소의 뿔처럼 가는 것은 선거전으로 족하다. 통치자는 합리적 절차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최선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고통스럽고 외롭지만 그것이 지도자의 운명이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사이 봄이 오고 꽃이 핀다.
이게 아닌데 그러는 사이에 봄이 가고 꽃이 진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어처럼 '그러는 사이 5년이 가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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