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시지프스의 바윗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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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시지프스의 바윗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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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한일관계 시지프스의 바윗돌

 

 

 

해마다 8월이면 동아시아가 시끄러워진다. 가해자의 논리, 피해자의 울분이 교차하면서 지정학적 숙명의 드라마가 반복 상영되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수 십 년 째 똑같다. 하지만 관객들은 해가 갈수록 더 흥분하면서 화면 앞으로 몰려든다. 소재는 이 지역 사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이야기. 그 앙금 때문에 내용보다는 오히려 국가간의 자존심 싸움이 치열하다. 당한 쪽은 감정이 끓어오르는데 휘두른 쪽이 오히려 기름을 부어댄다. 달래고 위로하기는커녕 상처를 더 깊게 들쑤시는 묘한 분위기다.

 

종전과 패전, 광복이 교차하는 이해관계에 따라 8월은 분주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가해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피해자들과 그 동안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가해자 쪽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 있다. 여기에 독도와 댜오위다오(센카쿠), 쿠릴열도라는 조연들이 대본을 탄탄하게 이끌어 뜨거운 흥행몰이에 가세하고 있다. 벌써 오래 전에 마무리됐어야 할 시빗거리들이 아직도 이 지역에서는 맹렬히 진행 중이다.

같은 역사적 운명으로 엮였던 프랑스와 독일을 본다. 1806년부터 1945년까지 140여 년 동안 4번의 전쟁을 치렀다. 첫 번째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독일을 항복시켰고 절치부심하던 독일은 70년 후 보불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18년 프랑스 연합군이 1차 대전을 이기면서 독일패망, 머지않아 히틀러는 무자비하게 파리를 점령했다. 그것도 잠시 1945년 2차 대전이 승리로 끝나면서 마지막 대결은 프랑스의 손이 올라갔다. 4전 2승2패. 훨씬 더 굴곡이 많았던 두 나라였지만 화해는 누구보다 빨랐다.

1962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과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은 파리 랭스 대성당에서 양국의 조건 없는 화해 미사에 참석했다. 300만 명이 죽어나간 4번의 참혹한 전쟁을 과거로 돌리고 동반자의 굳은 악수를 나눈 것이다. 벌써 50년 전의 일이다. 오늘날 양국은 유럽연합의 기둥이고 세계문제를 논의하는 글로벌 파트너다. 우월과 지배, 복수와 응징, 불신과 경멸의 굴레를 벗어나기까지 160년이 흘렀다. 최후의 가해자였던 독일의 참회와 진심 어린 사죄가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했다.

여기에 견주어 보면 일본은 참으로 옹졸하다. 그토록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주변국들에게 가슴 깊은 사과를 선뜻 건네지 못하고 있다. 우정 어린 마음을 보여준다면 서로 감동하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텐데. 경제대국에 아시아 리더라는 위치를 차지하고도 이웃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처신이 안타깝다. 가슴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태도 때문이다. 여기에 사방으로 집요한 영토욕과 보수 우익의 편견으로 들썩거리는 도쿄의 분위기는 이들이 과연 21세기 파트너인지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피해자의 시각이다.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니다. 그 수준에 맞춰서 응대하면 그 뿐이다. 냉정하고 이성적이면서 집요하게 우리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기울고 국운이 쇠퇴하는 마당에 주변국들이 한꺼번에 손가락질을 해대니 과거 군국주의 DNA로라도 뭉쳐 이 난국을 헤쳐 나가려 하는 일본의 몸부림은 불쌍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가해자가 조금만 물러서면 될 것을. 알량한 자존심 싸움으로 허망한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흥분하면 상처와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외교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일왕의 사과를 거칠게 요구한다든지 일본의 국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언사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경솔하다. 대통령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나라의 대표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내정치 상황을 위해 외교를 건드리는 방법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문제여서 조심스럽다. 또 일본이 집요하게 요구하는 독도 분쟁지역화 작업에 우리가 먼저 구실을 제공하고 우익세력을 뭉치게 몰아가는 전략은 마이너스다.

지루한 감정싸움을 털고 이성적인 설계로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 '광복(光復)'이라는 트라우마에 갇혀 사죄를 구걸하면서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8월15일을 '건국기념일'로 바꾸고 대대적인 의식전환 작업을 구상해 보면 어떨까. 이날은 광복절이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기도 하다. 소극적인 광복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건국기념으로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변했다. 이만큼 국력이 커지고 세계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위치에 올라섰으면 차원이 다른 각도에서의 조감이 필요한 것 아닌가.

역대 대통령마다 집권초기에는 장미 빛 미래를 논하다가 임기 말에는 애국심을 등에 지고 일본 때리기로 돌아가버리는 관성도 반성의 여지가 있다. 임기 내내 한일관계라는 무거운 바윗돌을 산꼭대기까지 힘들여 밀어 올려놓고 다시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하는 그리스 신화 '시지프스의 형벌'이 반복되지 않도록 말이다. 한해 1000억 달러가 넘는 경제교류, 500만 명의 방문객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감정싸움의 끝에는 경제분쟁이라는 가장 나쁜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일본을 완전히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그림을 그려낼 때가 되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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