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 휴대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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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로라 휴대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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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모토로라 휴대폰의 추억

   

 

20년 전 경찰청 출입 기자를 하면서 처음 써본 모토로라 휴대폰은 정말 경이로웠다. 후배기자들의 신속한 보고를 받기 위해 큰 맘 먹고 구입해준 회사비품이었다. 전화를 들고 다니면서 통화할 수 있다니. 이런 기막힌 물건이 다 있나 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신통한 전화기를 자랑하고 싶어 별로 통화할 일도 없는데 외출 때마다 들고 나섰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 서서 일부러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큰 벽돌만한 전화기 본체에 안테나가 밖으로 길게 나와 있는 휴대폰은 군 통신병 장비 그대로였다. 여기다가 30분을 못 버티는 배터리 때문에 가래떡만한 예비 팩을 두어 개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했다. 그래도 유행의 첨단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내렸을 때 휴대전화는 이미 우주인의 소지품이었다. 전 세계로 중계되는 화면을 보면서 지구인들은 암스트롱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전화를 설마 개인이 가까운 장래에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15년 후 모토로라는 이 우주기술을 실용화한 휴대폰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그 무렵 경제부 기자로 옮겨 시카고의 모토로라 본사 취재출장을 갔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무선통신 장비들이 가득한 전시관을 둘러보고 곧 바로 기가 죽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런 첨단 정보통신회사 하나 가져보나 하는 부러움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그 전설의 모토로라가 지난해 구글에 인수되었다. 80년까지만 해도 애플이나 삼성을 능가하는 글로벌 혁신기업이었는데 세상의 변화가 격하다. 1983년 세계 최초로 휴대폰 판매를 시작했고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통신시장의 최 강자였다. 애플과 노키아의 첨단폰이 기세를 올릴 때도 종잇장처럼 얇은 휴대폰 레이저를 개발해 1억대 이상 팔았다. 팬텍의 모토로라 휴대폰 OEM 생산은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모토로라는 스마트폰의 물결에 급격히 밀려났다. 부활의 몸부림을 쳤지만 더는 버티지 못했다.

13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코닥의 몰락은 경영학 교과서의 연구사례다. 필름과 카메라 시장의 80%를 석권했던 가장 미국적인 기업이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코닥을 디지털 시대가 한칼에 침몰시켰다. 필름이 없어지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극심한 적자에 시달리던 코닥은 지난 연말 문을 닫았다. 안토니오 페레즈 '이스트먼 코닥' 최고 경영자는 파산보호 신청을 선언하고 혹독한 감원작업을 진행 중이다. 필름세상이 가고 있다는 것을 필름회사인 코닥만 몰랐다.

워크맨으로 첨단을 달리던 소니, 스웨덴의 자동차 업체 사브, 핀란드의 전설적 통신회사 노키아, 게임시장의 최강자 닌텐도, 인터넷 시대의 리더기업 야후. 모두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유럽시장에서 미쓰비시가 철수했다. 30년 전 현대차에 엔진을 주고 기술을 가르쳤던 스승회사가 제자 회사에 밀려 눈물의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파나소닉, 샤프, NEC 등 일본의 4대 전자 메이저 업체는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다. 지난해 순 손실만 20조원이다. 시대를 이끌던 대표기업들이 소문도 없이 망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일본의 '닛케이 비즈니스'가 과거 100년간 일본 100대 기업의 흥망을 연구했다. 이 보고서는 기업의 평균 수명을 30년으로 정리했다. 맥켄지 컨설팅 연구에서도 수명 30년을 넘기는 회사는 비교적 장수기업으로 분류한다. 미국이 대기업 2000개를 샘플로 수명을 조사한 보고서에서도 기업의 평균수명이 고작 10년 정도였다. 1910년 미국 자동차 회사는 200개가 넘었다. 1960년에는 4개로 줄었고 현재는 3개가 허덕이는 중이다.

우리기업은 어떤가. 지난 20년 사이에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다. 재벌급 대기업과 대형은행, 금융회사, 중견그룹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기억에서 없어진 사례는 접어두고 최근 몇 년 사이에만도 50여개의 건설회사가 문을 닫았다. 20개의 저축은행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아직도 구조조정 중이다. 한국기업의 생존주기는 선진국의 평균수명을 크게 밑돌고 있다. 수명은 갈수록 더 짧아 질 것이다.

트렌드를 읽어내지 못하면 기업은 몰락이다. 환경에 따라 변해야 살아남는 생물처럼 말이다. 부동산 경기, 수출시장, 요동치는 원자재 가격, 해외 금융상황은 수시로 직격탄을 날린다. 잘 피하고 맞받아 쳐야 살아 남는다. 특히 치열해진 제품경쟁은 기업수명을 빠르게 단축시켜 가고 있다. 자동차는 1년에서 6개월로, 휴대폰은 3개월에서 1개월로, 식품은 일주일단위로 모델이 바뀐다. 1년 내 사라지는 제품, 3년 내 없어지는 회사, 10년 내 기업리스트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왔다.

글로벌 기업 두어 개 세상에 내놓고 우리는 너무 성공무드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삼성전자, 현대차를 대신할 기적을 만들어 대를 이어가야 하는데 숨이 차다. 미국과 일본이 누렸던 최고 전성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올라가보기도 전에 벌써 동력이 꺼져가고 있다. 배낭을 팽개치고 더는 못 가겠다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먹을 것을 달라고 야단들이다. 출발선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이제 기억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세상이 너무나 변했다. 성장도 국제시장도 국민들의 자세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실종된 정치 리더십에 극심한 포퓰리즘, 상하좌우로 갈라진 패싸움이 모두를 우울하게 한다. 뭉쳐서 강해져야 하는 마당에 오히려 뿔뿔이 흩어지는 중이다. 상대가 망가지면 내 몫이 얼마인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부패와 비능률이 온존하는 가운데 이룰 수 없는 말들만 허공에 가득하다. 일본과 유럽의 내리막길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외쳐봐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해답은 내놓지 않고 서로 눈만 부릅뜬 채 분노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기업도 사람도 권력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머리를 싸매고 몸부림쳐야 생존이 보일까 말까 한 판에 그저 그렇게 안주하고 있는 것 나눠서 털어버리자고 하면 한국의 성공신화는 남미나 유럽국가들의 아류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도 한때 성공할 뻔 했었다는 추억은 남겠지만 그러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모두가 조금씩만 정신차리면 이뤄낼 수 있는 꿈을 지금 여기서 떠내려 보내기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모토로라의 추억이 되지 않으려면 생존 게임은 지금부터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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