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코리안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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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코리안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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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박영석 대장이 이끈 에베레스트 코리안 루트 개척에 동행한 구자준 회장(右)이 베이스캠프에서 박 대장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LIG손해보험 제공]



 

2009년 5월20일.

아무도 오르지 못하리라던 금기를 깨고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통해 정상에 오르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20여 년 동안 4명을 산에다 묻고 5번째 도전 만에 이뤄낸 대 기록이다. 직각이나 다름없는 경사 70도 이상의 직벽. 도전자체가 무모하다하여 히말라야 원주민조차도 신의 뜻이 없이는 오를 수 없다고 여겼던 남서쪽의 수직 바위벽을 타고 지구 최고봉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악마의 벽으로 알려져 있는 남서벽은 지난 20년동안 전 세계에서 5천여명이 도전장을 냈지만 아무에게도 정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신루트" 개척은 그래서 세계 등반역사의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날 정상의 두 사람은 태극기를 흔들며 감회에 젖었다. 그러나 박영석 대장은 그렇게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이 순간을 위해 발아래 계곡으로 사라져간 후배산악인들의 목숨과 바꾼 목표였기에 너무나 비장하고 괴로웠다는 것이 후일 그의 고백이다.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후 초오유, 안나프르나, 다올라가리, 시샤팡마중앙봉, 아가파르밧, 마나슬루 등 8천 미터 이상 14좌 정복. 

 

93년 이후 북미 매킨리,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남극의 빈슨매시드, 아콩카구아등 7대륙 최고봉 정복 기록. 

 

2005년 히말라야 최고봉과 남극점 북극점을 모두 정복해 인류최초로 산악인 그랜드슬램 달성. 

 

올해 46살 산악인 박영석이 세워낸 대기록들이다. 지구상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진 이후 그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 개척에 도전했다. 하지만 일찍이 91년과 93년 두 차례 도전은 모두 실패했다. 오랜세월 준비와 준비를 거듭해 지난 2007년 세 번 째 도전 에 나섰지만 그는 이때 산악인 생활 중 가장 아픈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해발 8천 미터까지 진출하고도 눈사태로 차세대 주자인 오희준, 이현조 대원을 잃는 악몽을 맞은 것이다. 네팔 현지에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지만 몸도 마음도 지쳤고 등반을 하기에는 고령인 40대 중반을 지나는 동안 모든 것이 예전같지 않았다. LIG 손해보험 구자준 회장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다시 힘을 내 지난해 9월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네번째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또 실패. 악천후에 가로막혀 정상 150미터 전 지점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통한의 후퇴를 결정해야 했다. 

 

생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나선 지난 5월의 5번째 도전. 역시 구자준 회장과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의 후원으로 준비를 마치고 장도에 올랐다. 수직바위절벽만 2천700미터에 이르는 히말라야 최난코스 남서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자신의 등반인생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새기고 또 새겼다. 마침내 인간에게 정복을 허용하지 않았던 악마의 남서벽은 박영석에게 길을 내주고 말았다. 한국인이 개척한 최초의 길, 코리안 루트가 탄생한 것이다.

 

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후 후유증으로 기억력이 떨어져 박영석은 손에 든 물건을 다 잃어버리고 다닌다. 휴대폰은 100대 정도. 우산 지갑 카메라 심지어는 어머니가 은행입금 하라고 들려준 현금 4천만 원을 어디다 두고 내렸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단다. 그러면서 그는 왜 산에 오르고 코리안 신루트 개척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저질렀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 또한 나 자신이었습니다. 나는 내 한계를 넘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도전 했습니다." 지난주 서울시내 한 호텔에 마련된 환영식장에서 박영석은 도전의 이유를 말한 뒤 눈물을 글썽였다. 

 

지구 최고봉 14좌 정복정도의 기록으로도 편안한 삶이 보장됐을 테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준비하고 가다듬고 창조를 위해 자신을 불살랐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다. 어린시절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100번 이상 읽고 오로지 동국대 산악반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감행했다. 열정과 근성으로 뭉쳐진 그의 도전은 끝내 등반역사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내고야 말았다. 사람들은 적당히 안주하지 않은 그의 아름다운 도전에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 편하고 이기적인 삶만을 추구해가고 있지는 않은지 박영석을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고민하고 만들어서 창조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한국의 성장엔진이 멈춰 설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행동 없이 비판만 하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박영석의 메시지는 다시 열정을 일깨워 준다.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사람이 주인이다.(14좌 정복 후 소감)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2003년 북극점 정복) 

 

땅 덩어리가 작다고 생각의 크기도 작은 것은 아니다. 땅 덩어리가 작으면 생각의 크기로 맞서라.(2005년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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