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홈쇼핑의 '이상한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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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홈쇼핑의 '이상한 언어들'
  • 김한나 기자 hanna@cstimes.com
  • 기사출고 2012년 03월 12일 0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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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크한 느낌과 파워풀한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페이크퍼(Fake fur)를 소개해드립니다."      

최근, 무심코 TV를 틀어 놓고 주말 오후를 만끽하던 기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투가 들어왔다. 모 TV 홈쇼핑의 진행자가 '인조모피'를 설명하고 있었다.

저 한 문장 중 영어단어를 빼고 나면 조사들만 간신히 남아있을 정도로 영어 남발은 심각해 보였다. 특히 인조모피를 굳이 '페이크퍼'라고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색상을 소개하면서도 '빨강색'이라고 하면 될 것은 굳이 '핫한 레드컬러'라고 했고 '리미티드 한정 아이템'이라는 중언부언도 들려왔다.

리미티드(limited)나 한정(限定)이나 범위 혹은 수량 따위가 제한돼 있다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앞전'과 같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한 것이나 다름 없지만 진행자의 낯빛에 부끄러움은 없었다.

그때부터 기자는 유심히 방송을 지켜봤다. 그러나 웃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따뜻한 바람으로 건조시켜 주십니다", "한정수량이세요"라니. 그저 상품에 불과한 비데를 윗사람을 지칭하듯 '높여서' 표현하고 있던 것.               

높임말은 자고로 대화의 주체나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쓰는 언어표현이다. 상대를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이 담긴 하나의 '예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높임표현이 엉뚱하게 비데로 향해 있으니 실소가 터질 수 밖에.

지난 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TV홈쇼핑의 언어사용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CJ, 롯데, 현대, GS, 농수산 등 5개 홈쇼핑을 모니터링한 결과 홈쇼핑 대부분이 같은 뜻을 가진 한국어 어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사용을 남발하고 있었다. 잘못된 경어표현도 지적됐다.

보고서는 "홈쇼핑 진행자가 부자연스러운 외래어와 외국어,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용하고 있다"며 "외국어 남용은 잦은 외국어의 사용을 지식과 기품의 지표로 잘못 여기는 사회적 추세의 반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3월 현재 기자가 직접 시청해본 홈쇼핑에는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홈쇼핑은 상행위가 이뤄지는 방송이다. 소비자가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고 시현해보는 것이 아닌진행자의 안내만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그러나 홈쇼핑의 불필요한 외국어나 잘못된 경어사용이 상품의 이미지를 좋게 포장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배송된 상품의 질이나 사후 서비스 등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홈쇼핑은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에 힘쓰는 것이 본분이다. 건전한 상행위를 위한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컨슈머타임스 김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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