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버팔로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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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버팔로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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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제주도와 버팔로 무리

  

 

제주도를 둘러싼 블랙코미디가 점입가경이다. 볼거리 많은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다는 기대감에 미친 듯이 전화기를 눌러댄 지 몇 달 후 들리는 이야기가 수상하다. 전화투표로 선정방식을 정해놓고 1인당 무제한 중복 전화를 허용한 것부터가 우선 찜찜했지만 이를 믿고 제주도 공무원들은 하루 무려 500통화까지 목표를 정해 손가락이 닳도록 번호를 찍어댔다. 국민은행과 KT 등이 나서 50억 원어치의 전화투표를 기탁했다. 막판에는 나 같은 민초들도 이유 없는 애국심이 발동해 하루 몇 번씩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전화비만 줄잡아 300억 원. 

그런데 결과는 전화투표 숫자 발표도 없고 순위도 없고 몰디브와 베트남 어디어디 7군데 가운데 제주도만 잠정 선정됐으니 그리 알라는 식의 이상한 발표가 전부다. 공신력은커녕 무슨 영문인지라도 알고 싶은 제주도 사람들은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당연히 국제 전화비를 가로채기 위한 고도의 '전화 피싱'이거나 '이벤트 마케팅'에 당했다는 소문이 날 수 밖에. 의문이 꼬리를 물자 국내 한 공영방송 추적팀이 이벤트를 주관한 뉴세븐원더스라는 재단의 스위스 본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등재된 주소지는 웨버 이사장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사설 박물관이었고 독일 뮌헨에 있다는 또 다른 사무실은 도무지 소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니 이게 무슨 소린지. 내막을 알아보니 사무실 전화는 영국에, 우편물 사서함 주소는 스위스에, 홈페이지 서버는 독일에 있었다니 재단의 실체가 의문 투성이다. 현지인들도 이 재단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지난주 급히 방한한 버나드 웨버 이사장이라는 사람은 전화투표 결과공개를 검토하겠다, 전화비내역은 KT와의 비밀사항이라 밝힐 수 없다, 요즘 세상에 주소지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등 횡설수설만 덧칠했다. 오히려 관광공사가 국내 언론들의 지나친 들추기를 말리고 다독거리는 분위기니 이게 더 의아스럽다. 몰디브는 돈을 더 내라는 요구에 이미 빠져버렸고 인도네시아는 우리처럼 시비가 진행 중이다. 정부와 국회까지 나서 내놓고 올인 했던 한국이 싱겁게 됐다.

세상 모든 일은 상식에서 출발한다. 상식의 흐름이 이상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비상식이 존재한다. 눈에 다 보이는 수많은 비상식을 넘어 상식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 스위스에 본부가 있고 유엔도 지원한다는 그럴싸한 이름의 재단에, 손님을 더 모으고 싶은 제주도의 절박함이 버무려져 비상식이 상식처럼 포장된 느낌이다. 대상 국가들을 보니 대부분 개도국들이다. 명색이 OECD 선진국이라고 어깨에 힘주고 자만하기 전에 이러한 비상식을 가려낼 수 있는 상식의 내공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전화투표로 사용된 회선을 찾아보니 카리브해 무슨 도서국가 '세인트 키츠 앤 네버스' 와 아프리카 섬나라 '상투메 프린시페'로 나온다. 한번 들어보기나 했던 나라들인지 헷갈린다. 값싸고 가까운 회선 다 제쳐두고 굳이 요금이 비싼 오지 회선을 끌어다 쓴 이유는 뭘까. 초등학생도 알만한 수수료 챙기기가 정답은 아닐까. IT강국에 텔레콤 시장에서 세계 리더임을 자부하는 우리가 이 정도의 비상식을 한번이라도 짚어보지 않았다면 이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창피한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재단이 밝힐수 없다는 전화비의 비밀속에 KT의 장삿속까지 싸잡아 의심해 볼만한 대목이다.

대동강물을 마음대로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시리즈가 한국판에 이어 스위스 판으로 등장한 셈이다. 일찍이 유학 길에 올라 미 휴즈 항공 위성개발 매니저와 링컨대 부총장을 지낸 홍병식 박사의 이야기가 생각 난다

아메리카 들소인 버팔로가 무리를 지어서 미국의 초원을 달리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만한 장관이다. 동물의 왕국 단골 화면이기도 하니 버팔로를 떠올리면 그 장면이 연상될 정도다.

그런 구경거리는 누구에게나 인상적이고 그래서 당연히 보고 싶어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버팔로 무리는 토네이도와 같이 불규칙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그들이 나타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 청년이 신문에 광고를 냈다. 자신의 버팔로 연구 자료를 소개하면서 어느 날,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가면 버팔로 무리가 지나갈 것이라는 정보가 담긴 초청장을 1달러에 팔겠다고 알렸다. 만약 자신의 예측이 틀리면 2달러를 되돌려 준다는 광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1달러에 초청장을 샀다. 그리고 그 시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버팔로 무리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 청년은 약속대로 참석한 사람들에게 2달러씩을 돌려줬다. 그런데 이 청년은 버팔로 이벤트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손해보지 않고 오히려 큰돈을 벌었을까.

이 이야기의 진실은 이렇다. 버팔로가 지나간다는 장소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조그만 강을 건너야 했다. 그 강에는 다리가 없어서 5달러를 내고 뗏목을 타야 강을 건널 수 있었는데 이 청년의 진짜 직업은 그 뗏목을 부리는 뱃사공이었다.

이 대명천지에 제주도는 버팔로 떼에 취했나 뱃사공에 홀렸나. 한번 생각해보시라.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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