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메콩델타 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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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메콩델타 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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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델타는 옥토다. 9개의 강줄기가 모여져 마침내 바다를 만나는 곳이다. 구룡강삼각주(九龍江三角洲), 메콩델타의 한자식 표기다. 비엣(Viet)언어로 '동방송끄우롱' 이다. 섭씨 35도의 강렬한 햇빛이 내려 꽂이는 오후시간 메콩강의 장대한 수평선은 경이로웠다. 강은 역사를 남기고 아쉬움으로 사라진다. 인간세상의 온갖 일들을 다 알고 있지만 그냥 침묵하며 지나간다. 시간에 실려 신화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메콩델타에는 베트남 1억 인구가운데 3천 만 명이 모여 산다. 세계 3대 쌀 수출국의 60퍼센트를 생산해낸다. 퇴적물이 쌓이는 비옥한 땅은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풍요를 만들었다. 티벳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중국 칭하이성과 윈난을 지나고 라오스와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4천 킬로미터 장정 끝에 이곳에 도착한다. 내가 지금 만나는 물줄기는 아주 오래전에 티벳을 떠난 그 물줄기였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강줄기가 성스러운 축제의 마당으로 보였다.

나는 강을 좋아한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강을 보았다. 메콩의 매력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탁류라는 점이다. 실제로 20미터 정도의 수심이 이어지지만 수면위에서는 아무런 짐작도 할 수가 없다. 그 속을 모르니 신비가 베어난다. 물리적으로 흐려서 속살을 볼 수가 없다. 유속이 느린 점도 마음에 든다. 상류의 폭포나 세찬 줄기들을 모두 지나온 뒤의 평화로운 정진이다. 델타에 이른 강은 되도록 넓게 퍼지면서 광활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강과 만나는 마을은 풍요롭다. 사람들과 공존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성시킨다. 물과 사람이 이뤄내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다.
 

▲메콩델타의 수상시장. 주민들의 터전이다
▲메콩델타의 수상시장. 주민들의 터전이다

체코, 오스트리아를 돌면서 보았던 다뉴브나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만난 미시시피, 이집트에서 경험했던 나일 델타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풍요한 삼각주에서 이뤄지는 역사의 스토리들이 더 다양하고 탄탄하다. 서기 1세기부터 이 지역은 크메르 왕국의 땅이었다. 아직도 '저지 캄보디아'로 통한다. 홍수 때는 물에 잠기기도 하지만 건기에 3모작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삼각주다. 16세기 응우엔 왕국의 세력으로 사이공이 건설되었고 베트남 영토가 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월남(비엣남) 땅이 된 것이다. 캄보디아 크메르인들과 갈등이 남아있는 것은 당연하다.

델타에서 이뤄낸 찬란한 청동기 문화는 유럽학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식민지 개척시절 프랑스는 해군을 보내(1866년) 이 지역을 탐사했다. 2차 대전까지 그들은 현지의 풍요를 차지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식민종주국 프랑스를 몰아냈다. 이어진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이겼다. 민족주의 지도자 호치민을 중심으로 통일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결과다. 제국주의자들을 패배시킨 베트남인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이어지는 눈부신 경제성장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는 베트남 전에 31만 명을 파병했다. 아픈 기억이다.

메콩델타 유역은 베트남 최대 곡창지대다. 벼농사와 후추, 커피, 각종 열대과일의 창고다. 델타 13개 지역의 성 가운데서도 중앙정부 5대 직할시인 껀터 일대의 장대한 자연풍광은 일품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맹글로브 숲은 4백종이 넘는 동물들의 낙원이다. 100여종의 민물고기는 수상 주민들의 귀중한 식량이다. 유네스코가 천연자연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이유다. 호치민에서 가까운 미카를 시작으로 메콩델타 크루즈는 시작된다. 메콩을 향한 오랜 기다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시간이다.

 

▲메콩델타 미카 유역에서
▲메콩델타 미카 유역에서

수상 주민들은 정처가 없다. 흘러가면서 살아남는 본능을 지녔다. 기록문화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이어왔지만 흔적은 많지 않다. 들판에서 지내는 유목민의 모든 것이 바람 따라 사라지듯 그들은 물 따라 흘러내리는 세상을 살았다. 젖은 일상에서 기록을 남기고 정주 장소를 찾기는 어렵다. 중심도 없고 줄기도 없는 수평선 같은 삶이다. 그래서 평등의 의미로도 통한다. 연꽃이나 부레옥잠은 성스러운 꽃이다. 물위에서 꽃피우고 사는 사람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흐르는 것의 본질을 이어받은 생명들이다.

델타 상류에서 큰 배를 타고 건너 내린 미카의 남쪽은 과일의 천국이었다. 머리 크기 만 한 잭 프룻과 파파야, 옐로우 코코넛, 망고스틴 등은 남국의 정취가 가득했다. 마을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가까이서 돌아보고 그 들의 애잔한 노래도 들었다. 까이랑 수상시장은 이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퐁디엔, 속장, 응아남 시장도 나란히 유명세를 타고 있다. 빈롱, 벤쩨 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작은 수로를 지나기 위해 소형 나룻배를 탔다. 협수를 가로지르는 투앵더(베트남의 전통 배)는 주민들의 친구다. 나무를 깎아 만든 4인용 작은 배는 가늘고 긴 카누 같았다.대나무 삿갓 '농' 을 쓰고 거칠어진 손발로 익숙하게 젓는 노의 힘은 놀라웠다. 뱃머리에서 오른쪽 노를 젓는 남편과 후미에서 왼쪽 노를 젓는 아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좁은 쪽배에 앉아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작은 물길에 수많은 배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비켜가는 풍경은 예술에 가까웠다. 무질서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그들만의 질서는 색다른 고요다. 수로는 해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나룻배 부부들의 일터다.

 

▲델타의 작은 물줄기 방웬을 지나는 나룻배 투앵더
▲델타의 작은 물줄기 방웬을 지나는 나룻배 투앵더

투앵더는 물 코코넛이 울창한 흙탕물 수로를 재빠르게 미끄러져 나아갔다. 수많은 세월동안 물살에 씻겨 나간 코코넛의 억센 그루터기들이 뭍의 흙들을 보듬어 안고 큰 강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하상의 수초를 헤치고 도약하는 팽팽한 원형질의 본능들, 끝없이 흐르고 포개지는 이름 없는 물결들의 중첩, 풍요에서 공생으로 이어지는 순간들이다. 방웬 수로는 점점 뒤로 멀어져 갔다.

마침내 남중국해 바다를 향하는 메콩본류에 조인했다. 유장한 흐름을 마주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올라온 기분이었다. 대형 화물선과 중규모 어선들, 과일이나 채소를 파는 작은 배까지 수많은 형태의 흐름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상류에서 내려온 수상식물과 동시대의 쓰레기까지 같이 흐르는 중이다.

건너편 강변에는 작은 마을들이 어렴풋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스 감독 테오 앙겔로플로스가 만든 영화 '안개속의 풍경' 같았다. 시선은 강으로 향하면서 생각은 멀리 떠난 아빠를 찾아 기차를 타는 필름속의 두 남매 화면이 자꾸 시야를 덮었다. 나도 그 아이들의 말대로 낙엽처럼 떠내려가며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수평선 너머로 지나가는 메콩델타의 마을들.
▲수평선 너머로 지나가는 메콩델타의 마을들.

이곳에서 베트남 수도 하노이까지는 1800킬로미터의 거리다. 동질성을 느끼며 살기 쉽지 않은 간격이다. 평생 북쪽을 가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다.

메콩의 강들은 모여서 대화를 한다. 사이공강과 동나이강은 본류로 나가기 전에 호치민시 일대와 만나고 캄보디아에서는 바싹강으로 유역을 따뜻하게 적신다. 큰 줄기들은 자신의 속도로 바쁘게 흐른다. 종점을 향해 쉬지 않는다. 더 나은 시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흐르는 인생처럼 말이다. 강은 역사의 상처를 덮어주는 약이다. 시간에 기대어 함께 흐르는 강의 보폭은 아픈 기억을 모두 용서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울이다.

메콩델타를 돌아 호치민으로 올라오니 이미 어둠이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사이공강변은 발전된 도시의 불빛으로 찬란했다. 새벽과 밤 시간 틈날 때 마다 나는 발코니에 서서 시각을 고정시켜 강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떠내려가는 것인지 멈춰 서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움직이되 움직이지 않는 강. 오래 바라볼수록 멈춰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부레옥잠의 느린 유영만이 강의 방향을 짐작케 할뿐이다. 수면에서 태어나고 마침내 수면에서 피어난 꽃들이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중이다. 한참을 바라보아야 가능한 일이다.

흐르는 강은 깨달음이다. 노을도 지고 생명도 지는 넓은 평화다. 강물은 고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 주인공처럼 지난한 여행을 통해 목적지를 향하는 장대한 서사시다. 처음 한 가닥 물줄기가 지류와 손잡고 본류로 몰려나와 대지를 품어내면 흐름은 마침내 하늘마저 담아내 움직인다. 이 강에 이르기까지 오랜 상처와 고독이 쌓였을 것이다. 부질없는 공허들이 모두 흐름으로 사라져가는 중이다.

바다에 이르고야 마는 흐린 강물은 내내 나의 친구였다. 인간이 사는 땅을 촉촉하게 감싸는 수평선은 감정과 욕망을 덜어낸 묵묵한 모습으로 늘 그 자리를 지나고 있었다. 전쟁과 죽음의 강을 지나 이제는 희망의 강으로 연결되는 메콩델타, 그곳에는 흙빛으로 타오르는 위대한 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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