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의 금융산책] 태영건설은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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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의 금융산책] 태영건설은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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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김지훈 기자 | 1997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날씨도 날씨지만 집안 공기에 한기가 서려 있었고 부모님의 어두운 얼굴에선 온기가 사라졌었다. 그해 11월 21일은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 불리던 외환위기(IMF)가 찾아왔었고, 날이 갈수록 웃음으로 가득했던 집은 근심으로 앓는 소리만 커질 뿐이었다. 소년은 봄이 찾아오면 집도 사회도 온기가 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전 교복을 맞춰야 하는데 메이커를 사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철없는 생각도 사치처럼 느껴진 시기였다. 친구들과 수소문해 싼 교복점을 찾아다녔다. 같은 시각 누구는 졸업하는 형들의 교복을 물려받기 위해 분주했다. 마을엔 흉흉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00집 아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데"라며 퉁명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힘든 시기였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음의 상처는 상흔이 됐다.

찝찝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이다. 시공 능력 평가 16위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다. 금융기관에 빌렸던 3조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1997년의 기억을 다시 소환했다. '한보 사태'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온 국민을 보릿고개로 이끌었던 'IMF 시절' 그해 1월 한보가 쏘아 올린 한 발의 불꽃은 사방으로 퍼지며 도화선에 옮겨붙었다. 한보의 부도는 금융권에 자금 경색 현상을 초래했고 줄 부도 사태로 이어졌다.

"태영건설은 시작이지 않을까"라는 나쁜 생각을 지우고 싶지만 불안감은 떨칠 수 없다.

PF대출은 개인 신용이나 담보물을 평가해 돈을 빌려주는 형태가 아니다. 프로젝트의 경제성과 사업성, 수익성, 리스크 등을 감안해 대출을 내주는데 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부동산개발 사업 등에 많이 이뤄진다. 한국은 최근 2~3년간 부동산 시장이 부흥기를 맞았고, 자연스럽게 관련된 사업에 돈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캐피탈과 저축은행 등 금융사들은 사업성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 프로젝트에 투자한 원금뿐만 아니라 이자 및 수익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다 보니 쉽게 말해 '짭짤했다' 하지만 담보가 없는 만큼 높은 리스크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건설 자재비는 천정부지로 상승했고 미분양이 증가하는 등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건설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 건설사들이 부도를 맞으면 금융사들 역시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만약 태영건설이 부도처리가 된다면 후폭풍은 거셀 것이다. PF대출을 실행했던 금융사는 물론 하청업체들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 있다.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두려운 것은 연쇄작용이다. PF대출 연체율은 상승하고 있고 건설업계 유동성은 메말랐다. 관련 시장은 이미 위축됐으며, 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 암울하다. 그해 겨울처럼 유난히 올해의 겨울도 춥게 느껴지는 이유다.    

불행 중 다행일까 과거의 경험은 교훈으로 남았는지 금융당국은 리스크 확대를 진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와 은행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상황은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옥석 가리기가 절실할 때다.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부실 프로젝트는 과감히 내쳐야 할 것이다. 관련 업계는 금리 인하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고 미국발 긍정적인 신호도 있으니 현재의 위기를 잘 이겨내면 또 온기가 도는 시기가 올 것이다. 어떻게든 태영건설의 부도만큼은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건설사의 부도는 서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소년이 겪었던 'IMF 시절'처럼 기업‧은행이 무너져 국민이 움츠러드는 모습을 다신 보기 싫다.

사태 수습이 잘 돼 어느 때보다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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