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칼레의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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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칼레의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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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에서 백년전쟁(1337~1453)은 프랑스의 왕위계승 문제가 발단이 되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격파한 뒤 여세를 몰아 도버해협에 위치한 도시 칼레로 진격했다.

영국에서 바다건너 가장 가까운 프랑스의 칼레는 식량보급로가 끊기고 포위된 채 무려 11개월을 버텼다. 작은 성이라서 며칠이면 상황이 끝날 줄 알았는데 1년 가까이 꿈쩍도 않고 완강히 저항했던 것이다. 에드워드 3세의 심기는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식량이 바닥나고 전염병까지 나돌아 더 이상 저항을 포기한 채 칼레는 마침내 항복의사(1347)를 전달했다. 적군의 왕 앞에 선 항복 사절단은 제발 주민들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완강한 저항에 분노한 에드워드 3세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주민들을 몰살하려 했다. 이때 한 신하가 나서서 말하였다.

"폐하, 통촉하시옵소서. 우리가 이제 프랑스 본토에 발을 디뎠고 앞으로 함락시켜야 할 수많은 도시와 성들이 있는데 항복을 청해온 칼레시민들을 몰살했다는 소문이 나면 나머지 성들은 죽을 각오로 저항 할 것입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셔야 합니다"

듣고 보니 신하의 말이 일리가 있어서 왕은 생각을 바꿔 한 가지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그렇다면 칼레의 지체 높은 시민 6명이 맨발에 속옷만 걸치고 목에 밧줄을 감은 채 성 밖으 로 걸어 나와 성문 열쇠를 바쳐라. 이들 6명을 교수형 시키는 대신 칼레의 시민들은 모두 살 려 주겠다"

시민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숙의를 거듭하면서 우울한 시간이 지속 되었다. 누가 죽음으로 가는 길에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인간의 용렬함과 나약함에 서로는 시선을 피한 채 피를 말리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교수형을 당할 6명중 하나가 되겠소".

놀란 시민들이 돌아보니 그 사람은 칼레 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 였다. 그의 뒤를 이어 시장, 법률가, 학자 등 7명이 동참했다. 그런데 이들은 왕의 요구대로 6명을 정하고 누구 한 명을 빼야 할지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제비뽑기를 제안했으나 최초 지원자인 생피에르가 반대했다. 그는 다음날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했다. 다음날 아침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생피에르였다. 군중들이 허탈감에 빠졌을 때 급보가 전해졌다. 생피에르가 집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남겨진 6명의 시민대표는 칼레성에서 에드워드 3세의 진지로 향했다. 성문 안에 모인 사람들은 통곡을 하면서 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눈물 속에 사라져 가는 6명의 모습에 시민들은 극도의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영국왕은 이들의 처형을 명령했다.

이때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임신 중이었던 왕비 필리파 에노가 장차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 그들을 살려달라고 설득했고 왕은 결국 이들을 죽이지 않았다. 동시대 사람 장 프르와시르(프랑스 작가. 1337~1404)는 사건의 전 과정을 연대기에 기록했다.

▲칼레의 시민 청동상 뒷모습, 파리 로댕 미술관
▲칼레의 시민 청동상 뒷모습, 파리 로댕 미술관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1884년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은 칼레 시로부터 이들 위대한 6인의 모습을 형상화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프랑스는 당시 프러시아와의 전쟁패배(1871)로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었다.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기를 살리기 위해 여러 도시에 그곳 출신 명사들의 기념동상을 만들던 시기였다. 스토리는 로댕을 감동시켰다.

위대한 조각가 로댕은 10년의 세월을 작품에 바쳤다. 1895년 완성된 청동상이 칼레 시청 앞에 설치되었다. 죽음을 향해 적진으로 떠나는 6인의 모습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극작가 게오르그 카이저 는 로댕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희곡 '칼레의 시민'을 썼다.

이후 6명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vlige)' 의 상징으로 역사를 관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영국 도버에서 프랑스 노르망디 서쪽의 작은 항구 칼레까지의 바닷길은 아픈 역사를 뒤로 한 채 해저터널(50.5킬로미터)로 연결(1994)되어 유럽의 명물이 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만난 칼레의 시민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만난 칼레의 시민

10년 전 나는 미국 출장길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렀다. 때마침 '신의 손'으로 알려진 로댕의 작품전이 한창이었다. 아시아 전시관과 한국관을 돌아본 뒤 오랫동안 가슴에 둬 왔던 조각상 '칼레의 시민' 앞에 섰다.

가장 먼저 죽음을 신청한 칼레의 부자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의 의연한 표정을 보았다. 죽음의 공포로 반쯤 풀린 그의 손을 어루만져 보았다. 항복했다는 굴욕감, 그럼에도 시민들의 목숨만은 건지게 되었다는 안도감, 하지만 가장 부자인 자기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자괴감 등이 절묘하게 표현돼 있었다.

조각상 주변을 몇 바퀴 더 돌다가 성문열쇠를 쥐고 있는 법률가 장 데르의 강직한 표정을 다시 보았다. 비록 성은 빼앗겼지만 정신만은 지키려는 단호함과 결연함이 절절했다. 그 옆으로 죽음을 자원하고도 공포에 떠는 앙드리외 당드레의 인간적인 모습은 가장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죽음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 그렇지만 극도의 공포를 무릅쓰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실천하려는 그 용기에 존경과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년이 지난 뒤 나는 도쿄에서 다시 '칼레의 시민'을 만났다. 로댕이 거푸집으로 만들어낸 12점 시리즈 중의 하나다. 칼레 시청 앞에 전시중인 1호 청동상에 이어 파리 로댕 박물관, 덴마크 코펜하겐 클립토 테크 미술관, 벨기에 왕실 미술관, 런던 국회의사당, 미국 스탠포드 대학, 한국 이건희 회장의 로댕갤러리 소장 등이 꼽히고 있다.

▲도쿄 현대미술관의 칼레의 시민
▲도쿄 현대미술관의 칼레의 시민

도쿄의 로댕 걸작들은 마츠카타 고지로(1865-1950)가 구입해 기증한 것이다. 가와사키 중공업 대표를 지낸 그는 메이지유신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지원으로 총리를 역임한 마츠카타 마사요시의 셋째 아들이다. 가와사키는 선박건조로 1차 세계대전에서 떼돈을 벌었다. 영국 근무기간 동안 고지로는 유럽전역의 미술품 수집상과 중개인들을 접촉하면서 천 여 점의 회화, 조각품을 사들였다. 인상파 화가 모네와는 개인적인 친분도 두텁게 쌓아뒀다. 사들인 물건들은 런던의 창고에 보관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 '마츠카타 컬렌션' 은 모두 압류되었다. 프랑스는 특히 로댕의 작품들을 돌려주지 못하도록 했다. 전후 문제를 처리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마츠카타 컬렉션' 작품들을 보내 달라고 간청했고 전승국들은 고민했다.

몇 년 뒤 프랑스 정부는 전시시설 건립을 전제로 기증반환을 약속했다. 양국 외교관계 복원을 상징하는 의미로 프랑스의 대 건축가 르 코르뷔제에게 설계가 맡겨졌다. 이렇게 지어진 우에노 현대미술관(1959)으로 그때까지 남아있던 370여점의 작품들이 옮겨졌다. 모네와 피카소, 미로 등의 대작 진품들은 다양성과 무게감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본 우에노 미술관이 서양 현대미술의 보물창고로 꼽히게 된 이유다. 현대미술사는 '마츠카타 컬렉션'을 의미 있는 한 페이지로 기록하고 있다.

▲칼레의 시민, 6인의  표정들
▲칼레의 시민, 6인의 표정들

늦가을 우에노 '칼레의 시민'은 형상들이 물결치는 바다 같았다. 청동 면과 면 사이의 굴곡들은 다양한 빛의 반사로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그 표정들이 생생하게 오버랩 되었다. 짧은 오후의 햇빛은 구름사이로 간간히 쏟아져 내려와 신비하게 조명해 주었다. '지옥문' 앞에서는 숨이 멎을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로댕의 최고 걸작이다. 높이(6.3 미터)와 넓이(4미터), 무게(7)로 압도되는 '지옥문'은 이웃해 있는 '칼레의 시민' 을 더욱 더 장중하게 빛내주고 있었다.

자만심과 특권의식에 매몰되어 낮은 곳을 외면하는 이들이 '칼레의 시민' 앞에 서서 그 의미를 가슴속에 한번 새겨보았으면 한다.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살아온 고위직들, 아들 딸 스펙 만들기에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하고, 자리싸움으로 날을 새는 이 시대의 리더들이 꼭 봐야 될 작품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높은 신분에 따르는 희생정신과 도덕성은 시공을 초월하는 세상의 화두다. 문명의 발전은 눈부시게 질주하는데 몸가짐과 지혜는 옛사람들만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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