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뉴욕 배슬,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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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뉴욕 배슬,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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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자스탄은 고대 왕국의 흔적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9세기에 지어진 계단식 우물. 찬드 바오리(왕의 계단. 힌디어)는 아직도 사람들의 순례코스로 꼽히는 도시의 명물이다. 하샤드 마타사원 반대편의 이 우물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고대 건축구조물중 하나다. 물이 부족한 인도에서 인공적으로 땅을 파고 수자원을 채운 뒤 계단을 배치해 하면으로의 접근을 고안한 과학적 방법은 아주 미래 지향적이었다. 인류사에서 보기 드문 문명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영상미학의 거장 타셈 싱 감독이 만든 영화 '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잊혀져가던 찬드 바오리를 화려한 스크린에 재탄생시켰다. 타지마할과 파스텔 톤 물감 같은 나미비아 사막, 피지의 나비 섬 등이 교차하는 숨 막히는 모험 영화다. 어린이들이 열광한 필름이지만 개봉당시 오히려 어른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원주민 필부의 미인 아내가 총독의 수청을 거절하면서 빚어지는 복수극에 5명의 용사들이 참여해 못된 권력자 오디어스를 혼내주는 줄거리다.

라자스탄의 메랑가르 파란색 성채가 지나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인도 조르푸르 죽음의 계단이 화면 가득 이어진다. 찬드 바오리 물 계단은 당시 위정자들이 수심을 재서 세금을 매기려고 만든 구조물이다. 그 시대에 건물 13층 지하 깊이의 물웅덩이를 특수공법으로 만들었다니 놀랄 일이다. 석가모니 성지 자이푸르 근처의 이 거대한 우물은 천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 영속적으로 사용되는 중이다.
 

▲인도 라자스탄 찬드 바오리 우물
▲인도 라자스탄 찬드 바오리 우물

찬드 바오리가 뉴욕 부두에 재탄생되었다. 영국의 건축디자이너 토마스 해더윅(Thomas Heatherwick.1970-)의 손길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 이 시대 '살아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의 영적인 감정이 가득 채워진 '배슬(Vessel)'은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른 세계의 구조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텅 빈 건물인가 싶은데 밖으로 이어지는 산책계단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기막힌 오버랩이다. 상승과 하강의 방정식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처음 기획자는 반짝이는 별 느낌의 디자인 건축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더윅은 자신의 머릿속에 잠겨있던 라자스탄의 계단식 우물을 허드슨 부두에 재현시켰다. 배슬(배)에는 실제 15층 높이에 80개 전망 착륙지가 만들어졌다. 벌집모양의 개방형 건물은 사람들이 직접 몸으로 참가하고 경험하는 공간의 세계를 연결시켜 각자의 '환타지' 를 자극해준다.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 같지만 모두 펼쳐 놓는다면 1.6킬로미터의 엄청난 길이 뭉쳐진 것이다. 높이 46미터 유리난간이 오픈 계단으로 연결된 솔방울 모양의 공공건축물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나선형 구조물에는 2500개의 계단이 자리잡고 있다. 밖에서 보면 묘한 고철 덩어리 같은데 내부에서 경험하는 사람은 나만의 여행길을 찾아 계단을 오르고 포인트마다 바깥세상을 관찰할 수 있는 독특한 시각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허드슨 강 조망과 맨해튼의 고층빌딩들이 한눈에 보였다.
 

▲뉴욕 허드슨강 부두의 배슬 앞에서
▲뉴욕 허드슨강 부두의 배슬 앞에서

황량하고 무질서했던 허드슨 강 부두는 '배슬'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같은 세계에 살면서 이런 기막힌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상상력에 경외감마저 든다. 앞쪽과 뒤쪽을 오가며 한나절을 보내고도 아쉬워 맞은편 그리스 식당에 앉아 와인 한잔을 시켜놓고 외관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남들이 보면 약간 이상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뉴욕의 복잡한 맨해튼이 시작되는 휘트니 미술관에서 공중 산책로를 따라 이곳까지 걸어왔다. 뉴욕시가 옛 철길을 공원으로 변모시킨 '에코가든' 이다.

엄청난 관심 속에 오픈된 배슬(2019)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던 방문자가 몇 년 동안 여러 명 투신하는 바람에 잠깐 폐쇄되었다. 그 기간 동안 보안요원을 늘리고 2인1조 입장을 전제로 다시 관람객들에게 오픈(2023) 되었다.
 

▲탑에서 내려다 본 배슬의 내부 전경
▲탑에서 내려다 본 배슬의 내부 전경

배슬을 지나 조금 더 가면 토머스 해드윅의 역작을 또 만날 수 있다. 132개의 하이힐 모양 콘크리트 유닛이 받치고 있는 허드슨 강의 인공섬 '리틀 아일랜드' 다. 쓸모없이 방치되었던 황량한 부두는 이제 시선을 모으는 매력적인 야외 정원으로 바뀌었다. 내부 사이사이에 배치된 공연장과 전망대 풍경은 마치 디즈니랜드의 환상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유행과 욕망의 심벌 하이힐을 소재로 해더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스토리 캐슬' 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허드슨 강 인공 섬 리틀 아일랜드
▲허드슨 강 인공 섬 리틀 아일랜드

토마스 해더윅은 현대 건축에 그의 기본 철학을 담고 있다. 모든 건물은 외부의 고객과 내부의 고객을 함께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 안의 고객은 많아야 몇 천 명인데 반해 건물을 보고 지나가는 외부 고객은 무수하다. 그들에게도 건물은 감성적인 만족을 줘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도시공간은 지주나 건물관계자의 편협한 소유물이 아니라 도시전체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그의 작품 세계는 항상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각을 자극한다. 네모 반 듯 반듯한 형태의 식상한 전통건물 형태를 일단 거부한다. 오랜 세월 이어온 정형화의 고정성을 통렬하게 깨 버리는 후련함이 있다. 여기에 초 현실 감각의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캠퍼스 건물이 대표적이다.

둥근 튜터리얼 룸 구성의 복합체 56개를 12개의 타워에 배치했다. 바닥에서 지상으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넓어지는 마술적 미학을 접목시킨 공법이다. 건물과 조각의 교집합체 같다. 난양공대 튜터리얼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캠퍼스로 유명세를 탔고 이제는 꼭 돌아봐야 할 건축가들의 필수 견학코스가 되었다.
 

▲해더윅이 설계한 싱가포르 난양공대 건물들
▲해더윅이 설계한 싱가포르 난양공대 건물들

해더윅은 최고 작품은 역시 상하이 엑스포에서 선보였던 영국관 건물 디자인이었다. 25만개 씨앗을 담은 6만6천 여 개의 투명막대는 관람객들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건축계에서는 이른바 '씨앗 대성당' 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최근(2020) 설계한 해더윅의 '1000 Trees' 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몰려드는 핫 플레이스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상하이 예술지구 M50 옆 복합단지 공원과 연결된 예술지구다. 1000개의 기둥이 나무를 담은 화분 모양이다. 이것들은 복합단지 지지대 역할을 해준다. 건물과 주변 자연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아이디어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디자인 건축이다. 도쿄 구도심 미나토구의 '아자부 다이힐스' 도 그의 손길로 완공되었다.

현대 건축은 역시 심플함과 클린라인이 화두다.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 정신이 깔끔한 외관(Cline line)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미래 상상형 디자인 건축이 탄생하는 비밀의 통로다. 역사속의 도시들은 평균 40년을 주기로 무수한 건물들을 짓고 부수는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감성이 느껴지는 건물은 결국 휴먼터치를 기본으로 얼마나 지속가능할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야생의 본능을 갈망한다. 그곳에서만 인간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인자는 감성의 눈이다. 토마스 해더윅은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감성의 방향에 상상의 세계를 혼합해내는 선구자적 시각을 가졌다. 이 같은 태도는 역사 속으로 낡고 스러져가는 수많은 도시들의 숙제이기도 하다. 기능성과 멋을 함께 창출해내야 하는 인류전체의 시각과 맡 닿아 있다.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별명의 그가 특별히 우리 한옥에 대한 관심이 많다니 반가운 일이다. "오래된 것에는 혼이 들어 있다. 모든 것이 새것이면 개성도 혼도 없다. 도시의 오래된 부분을 허물지 않고 용도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울 방문 때 한옥에서 하룻밤 지낸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토마스 해더윅, 그의 건축 관은 이제 도시재개발의 보편적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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