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일본천황과 베토벤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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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일본천황과 베토벤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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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는 일본의 술 회사다. 토리이 신지로가 창업(1899)'토리이 상회'가 시작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맥주, 위스키, , 커피, 와인, 보드카 등 유명 브랜드를 거의 다 갖고 있다. 산토리의 히비키나 야마자키, 하쿠슈는 인기 위스키다. 창업가문은 이익추구에만 몰두하지 않고 '산토리 뮤직홀' 을 건립해 기업의 사회 환원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국민들에게 술 먹여 성공한 회사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일까. 도쿄 미나토구 롯폰기의 산토리 홀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연장이다. 이곳의 클래식 공연은 시민들에게 이미 정평이 나있다.

뮤직홀 오픈 시간을 앞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문난 '오픈 세리머니' 를 보기 위해서다. 산토리 홀 정문 위 벽이 열리며 '오르골(음악연주상자)' 사운드가 광장으로 울려 퍼졌다. 오르골 철제 인형들이 원형으로 돌아가며 화음을 내보내고 있었다. 옆 건물(아사히 TV 드라마 센터)까지 한 지붕으로 연결된 대형광장에서 흩어져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과 귀가 오르골로 집중되었다. 음악회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산토리 홀 앞에서 오르골을 바라보는 시민들과 필자.
▲산토리 홀 앞에서 오르골을 바라보는 시민들과 필자.

산토리 홀의 오르골 전통은 하나의 의식처럼 진행된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비싼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복잡하고 어려운 클래식 연주가 구미에 맞지 않는 시민들도 함께 동참해 즐기는 시간이다. 오늘의 연주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이다.

피아니스트는 일본의 국민스타 고야마 미치에. 쇼팽 콩쿠르 출신으로 오랜 시간 꾸준한 연주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휘자는 사자머리로 잘 알려진 고바야시 겐이치로다. 프라하 지휘자 콘테스트(1976)에서 이미 존재를 알린 노장으로 일본을 빛낸 스타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약간은 지루한 1부 협주곡이 끝나고 2부가 진행되기 직전 뮤직홀이 갑자기 술렁였다.

청중들의 시선은 일제히 2층을 향했다. 안내인 한명과 조용히 객석으로 들어오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놀랍게도 아키히토 일본천황(이제는 상왕)과 황후 미치코 여사가 함께 입장하는 중이었다. 일본 청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키히토 천황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봐왔던 대로 익숙한 미소와 온화한 제스처로 한참동안 인사를 건넸다.

 

▲연주회에서 인사를 건네는 아키히토 전 천황내외
▲연주회에서 인사를 건네는 아키히토 전 천황내외

피아니스트 고야마는 연주전 무대에서 청중들보다 먼저 아키히토를 향해 정중한 예의를 표했다. 음악회의 하이라이트 '황제'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미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할 무렵 베토벤이 작곡한 작품이다. 오스트리아가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고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프랑스의 포격과 육상전투가 치열해져 베토벤은 비엔나 근교의 동생 집으로 피난해 수개월 동안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만들어진 '황제'는 베토벤이 후원자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곡이다.

프랑스의 지성 로맹 롤랑(1915. 노벨문학상 수상)'걸작의 숲'으로 찬사를 보낸 '황제' 는 장엄함과 화려한 아름다움을 겸비한 클래식 최고의 곡이다. 오케스트라의 짧고 강렬한 울림을 받아 빠른 속도의 피아노가 반복되는 형식이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며 멜로디를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여성 피아니스트 고야마의 가냘픈 손목에서 품어져 나오는 역동적 기교는 일품이었다.

'천황' 부부 앞에서 다른 곡도 아니고 베토벤의 '황제'를 연주하는 광경이 나에게는 묘한 감정을 일렁이게 했다. 여기에다 음악회의 제목이 '以心傳心(이심전심)' 이라니, 외면하기 힘든 서사다. 천황을 위한 연주였는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연주에 천황이 관람을 왔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 마음을 나누는 왕실의 '이심전심' 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황제 연주가 끝나고 박수를 받는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황제 연주가 끝나고 박수를 받는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아키히토는 현재 천황 나루히토의 아버지다. 죽어야 승계가 이어지는 왕가의 전통을 깨고 생전에 천황 직을 물려줬다. 몇 년 전(2019) 상왕으로 물러앉고 아들 나루히토가 천황에 즉위했다. 이는 대사건이었다. '쇼와(昭和)' 시대에서 '헤이세이(平成)' 를 거쳐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키히토의 결단은 일본국민들에게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 동아시아 왕조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지금은 여유 있게 산책과 음악 감상을 즐긴다고 한다. 그는 특히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재임 중 "나의 몸에는 한반도의 피가 흐른다" 며 조상이 백제의 후손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왕실 최초의 커밍아웃 발언으로 논란도 많았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방문도 추진되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친 서민적 풍모 역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퍼스낼리티다.

황후 미치코 여사는 민간인 최초로 황실사람이 된 주인공이다. 서거(1989)한 히로히토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한 사연은 일본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러브스토리다. 테니스 코트에서 자주 만나 친해진 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이었다. 아키히토는 왕실의 법도보다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역대 천황 중에서 가장 친숙한 이미지를 느낀다는 일본인들의 반응은 우연이 아니었다. 군국주의 전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던 아버지 히로히토의 어두운 과거를 아키히토가 상당부분 희석시킨 측면도 크다.

 

▲고야마의 연주회를 알리는 산토리 홀 포스터
▲고야마의 연주회를 알리는 산토리 홀 포스터

앵콜곡 두 번째 연주 '대니 보이'는 특별했다. 대니 보이는 아일랜드의 감자기근으로 100만 명이 굶어죽은 뒤 아메리카로 정처 없이 떠나는 이민자들의 망향가였다. 아일랜드 항구도시 런던데리 부두에서 떠나는 자와 남는 자들이 함께 부른 슬픈 노래였다. 피아노 독주에 이어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저음 연주는 지금까지 들어본 '대니 보이' 가운데 으뜸이었다. 눈자위가 축축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국가리더의 대중적 친밀도는 귀중한 자산이다. 천황은 일본을 단합시키는 상징으로서 엄청난 존재감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관습에 따라 실권은 행사하지 않지만 일본인들의 존경심과 흠모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이를 적절히 이용하는 현명함이 일본 현대사 곳곳에서 돋보인다.

역사적 감정을 접고 정치학 측면에서만 본다면 일본 황실과 대중의 관계는 부러운 부분이다. 그러한 관계가 한때 잘못된 군국주의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미래의 눈으로 기대하자면 이러한 에너지는 한일관계에 좋은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 일본의 국제사회 공헌에도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

아키히토 천황(현재는 상왕) 내외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 산토리 홀의 공연은 오래 기억될 듯 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거문제로 일본관객들과 똑같이 박수를 보내기는 부담스러웠지만 메이지유신이후 일본왕실과 연결된 근대사는 일본인들의 자긍심으로 남아있다. 그들이 '천황(天皇)' 이라는데 우리가 굳이 '일왕(日王)' 으로 낮춰 부르는 것도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우리가 먼저 대등한 관계에서 인정하고 일본을 바라봐야 이 감정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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