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가우디의 미친 꿈이 현실로. 바르셀로나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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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가우디의 미친 꿈이 현실로. 바르셀로나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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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박차고 올라간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성당)는 그 끝을 한 눈에 담기가 어려웠다. 염소들이 놀던 풀밭을 매입해 시작된 이 엄청난 대역사는 첫 삽을 뜬지 1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미완성이다. 19세기에 시작된 공사가 지금 우리의 시대 21세기에나 마무리될 모양이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우뚝 솟아오른 건물은 이베리아 반도의 명품을 넘어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재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1852-1926)는 어떤 영감을 받아 기념비적인 대장정을 구상했을까. 스페인 내전과 장구한 세월의 굴곡을 헤치면서 달려온 현장은 외벽 조각과 매인 출입문까지 완성되어 종점을 향하고 있었다. 한쪽은 아직 공사장인데 한쪽은 이미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매년 50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일대는 활기로 가득했다. 가우디의 도시인지, 카탈루냐의 중심지인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인지, 행복한 혼란의 연속이다.

완공 전 이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유일한 건축이다. 가우디의 작품세계는 석회암으로 뒤덮인 바르셀로나 근교 '몬세라토' 의 암석 형상들이 시작이었다. 고향마을의 기암괴석을 재현한 '카사밀라' 옥상은 가우디스타일을 이해하는 첫 번째 순례코스다. 카사밀라 는 바르셀로나의 부잣집 밀라 부부의 주택으로 지어졌다. 옥상에는 외계인 모습의 가우디 조각들이 정연한 모습으로 들어서 또 다른 세계와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카사밀라 옥상의 조각들
▲카사밀라 옥상의 조각들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들과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육중한 갑옷에 양어깨에는 두툼한 심지가 넉넉히 들어간 철 투구 복장이다. 용맹무사이거나 중세 십자군 전쟁에 나섰던 전사들의 모습이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조각상 물체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맞으며 나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카탈루냐의 신화들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가우디 세계와의 첫 대면이었다.

영화 '스타워즈' 에 등장했던 외계인이 카사밀라에 가득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바르셀로나에서 무생물 주인공을 캐스팅했던 셈이다. 미래의 우주인 병사를 스크린에 채용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관객들은 우주에서 다가오는 외계인 형상으로 가우디조각을 기억했다. 카탈루냐 산봉우리 형상을 닮은 투구 기사들. 가보지 못한 다른 세계에는 어떤 존재들이 있을까. 의문을 갖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호기심이다.

가우디 걸작들이 인류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노스탤지어가 시작이었다. 몬세라토 석회암산 전면의 거대 암반은 그에게 건축적 영감을 불어 넣었다. 파낸 듯한 다양한 동굴모습, 풍화된 석회암 구멍의 창문모양 요새 등은 예술의 모티브가 되기에 충분했다. 도시를 지키는 카사밀라 옥상의 인문 조각 군단, 가우디의 이 같은 시도는 바르셀로나 진보 도시계획의 출발이었다.

 

▲몬세라토 마을의 석회암 봉우리를 닮은 기사들
▲몬세라토 마을의 석회암 봉우리를 닮은 기사들

가우디의 평생 후원자였던 에우세비 구엘은 국제적인 방직산업으로 거대한 부를 축척한 바르셀로나 백작이었다.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가문을 빛내고 싶었던 구엘은 가우디를 패밀리 건축사로 초빙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엘공원' 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스페인과 바로셀로나를 빛내고 있다. 이상적인 전원도시 '콜로니얼 구엘'은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장소다.

1883년 구엘은 무제한 설계기간과 예산을 조건으로 가우디에게 성당 공사를 맡겼다. 10년 후 2개의 본당과 2개의 첨탑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설계도가 준비되었고 착공이 이뤄졌다. 하지만 1914년 구엘 백작은 고인이 되었다. 지하 예배당만 조성된 미완성으로 남았다. 가우디가 어린 시절 내재시켰던 기하학적 자연분석형상은 초기 구엘 건축에도 그대로 도입되었다. 구엘이 떠나고 난 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da Familia)' 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구엘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콜로니얼 구엘' 의 입구
▲구엘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콜로니얼 구엘' 의 입구

대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원시의 빛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기울어진 기둥과 나뭇가지 형 천장 구조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나를 신비의 세계로 안내했다. 현대문명에서 탈출해 신의 정글로 진입한 느낌이랄까. 실내 전체가 숲속인 듯, 신화 속 동물들의 놀이터인 듯 황홀했다. 갖가지 모형실험으로 얻어진 입체와 기하학적 천장설계, 기둥의 경사도는 혁신적 구조와 새로운 시공기술에 미학적인 공간감까지 합쳐져 신묘함을 더해줬다.

자연의 모습을 재현한 유기적 곡선과 형상, 동화 속 상상계의 부활 같은 풍경, 화려한 채색타일 등은 압도적이었다. 고딕과 바로크 신고전주의 등 서구세계의 모든 전통과 인도, 중국의 장식예술이 한꺼번에 녹아있었다. 이슬람과 유럽, 일본의 창호 격자 등 코스모폴리탄 건축을 지향한 흔적이 역력했다. 피라미드와 힌두사원, 동아시아 선사 등 자연주의 모더니즘, 오리엔탈리즘이 망라되었다. 해외 경험이 없었던 가우디는 모든 구상을 사진으로 응용해 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모습
▲바르셀로나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모습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은 공사를 지연시켰다. 자료는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어진 바르셀로나 폭동은 최고의 재앙이었다. 고리타분한 카톨릭 교리에 반발한 민중봉기의 후폭풍은 거셌다. 수녀들의 묘가 파헤쳐졌고 군중들은 시체를 끌고 다녔다. 1909년 사건 당시 40개 성당이 불타고 시가지는 아비규환이었다.

언덕에서 이를 바라본 가우디는 속죄의 성당을 짓기로 다짐하고 인생을 건 집요한 건축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말수가 적어졌고 친구도 고객도 돈도 없이 집집마다 후원 요청을 하면서 빈자의 성당을 지향했다. 류마티스를 앓아 내성적으로 변해갔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가우디의 집요함은 위대한 건축유산의 기초가 되었다. 1883년에 시작되어 지금도 이어지는 성당공사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엄청난 비용과 수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한 그야말로 인류의 대역사가 되었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일본인 조각가 소토 에츠로(Etsuro Soto. 1953- )는 1978년 이 공사에 합류했다. 그는 이미 백발노인이 되었다. 소토는 대성당의 '파사드' 작업을 총괄해왔다. 육중한 정문은 그의 손에 완성되어 지난해 설치되었다. 3개의 대형 파사드는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신교도였지만 깊이 있는 정신을 담아내기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까지 작업에 몰두했다.

석고 틀을 만들어 이베리아 반도의 나뭇잎 형상을 정교하게 찍어냈다. 여기에 구리를 부어 7미터 높이의 대형 청동 파사드(Pacade) 를 완성시켰다. 전체가 숲속의 식물 군락 같은 문양이다. 필자가 수없이 방문하면서 봐왔던 일본의 자연주의 건축과도 상통하는 느낌이다.

예수 수난사를 표현해놓은 성당의 외벽 조각은 주제프 수비리치(카탈루냐 조각가)가 1986년부터 맡았다 입체조각 100여개를 만들어 벽에 붙이는 방식 이었다 자연주의와 배치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대성당 건축협의회는 이를 전격 수용했다.

 

▲청동으로 제작된 대성당의 파사드 정문
▲청동으로 제작된 대성당의 파사드 정문

호주 건축가 마크 버리는 컴퓨터로 가우디의 생각을 최대 한 복원했다. 항공기나 선박 설계자들이 함께 한 작업이었다. 스페인 내전으로 부서진 만 여 개의 석고파편들을 끈질기게 이어 붙여 최초의 가우디 성당 모형도를 그려냈다. 삼중 회전면이나 쌍곡선 원형의 가우디 방식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첨탑 연결 계단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인간이 가슴속에 그리는 유토피아다.

4개의 대형 첨탑이 중앙 탑을 감싸는 대성당 외벽은 전체가 한권의 성경책이었다. 138 미터 중앙첨탑에는 별모양의 거대한 불빛이 켜질 예정이다. 대형별은 성스럽고 찬란한 태양을 상징한다. 반대편 하늘에서 바라보아도 황홀한 믿음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스페인 내전으로 불타버린 초기 설계도를 복원해 예수 생애 조각으로 외벽을 재현하고 지중해의 동식물 모양을 바탕에 깔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그렸다.

 

▲창공을 향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
▲창공을 향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

이제 대성당은 완공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세계 건축계와 스페인 정부는 2026년을 목표로 정했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느리고 장대한 건축여정 막바지 성모 마리아 첨탑에 별모양 구조물이 올라가면 화룡점정이다. 가우디 사후 100년 만에 이 별의 찬란한 빛이 켜질 것이다.

황영조가 금메달을 딴 바로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코스, 몬주익 언덕에서 다시 전경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도시풍경을 모두 거느리고 홀로 솟아오른 성당의 위용은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의 신성한 모습이었다.

인간은 신보다 위대하다 신은 스토리를 남겼지만 인간은 그 실체에 도전하고 찬란한 유형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죄 많은 도시 바르셀로나의 반성과 영적 에너지 충전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인간의 신화창조였다. 가우디와 구엘 두 남자의 진실한 우정에 후세사람들이 이어달리기를 자처한 빛나는 공동 위업이다.

가우디는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전차에 치여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길가의 거지정도로 알고 신고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진 뒤였다. 바르셀로나 시민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말수 적은 가우디가 생전에 남긴 메모 한 줄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의 앞날을 예언한 것이었다.

"이 성당은 천천히 자라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닌 모든 것은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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