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썸머타임' 재즈에 실려, 뉴올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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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썸머타임' 재즈에 실려, 뉴올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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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이이거나 사탕수수 재배 농장이거나 상관없이 태양은 골고루 대지에 작열하였을 것이다. 북아메리카 대륙 남부의 여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땅이다. 끝없는 밀밭이거나 옥수수가 널린 평원이거나 쌀을 거두는 대지에서 흑인들의 삶은 한없이 고달프고 애처로웠다. 이유 없이 끌려와 인간이하의 조건에서 인권을 거세당했던 그들의 슬픈 노예역사는 오늘날 전 인류가 아픈 기억으로 공유하고 있다. 가혹한 착취 속에서도 풍요와 미래를 꿈꿨을 안타까운 시간들이 가깝게 만져지는 느낌이다.

뉴올리언스의 지평선은 끝이 없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종점에서 나의 시선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경계를 가늠할 수 없는 그곳이 다시 새로운 시작인 듯 하다. 오른쪽으로 미시시피주와 앨라배마, 왼쪽으로 텍사스, 위쪽으로 아칸소와 오클라호마, 남쪽은 멕시코 만 광활한 바다가 펼쳐지는 미국 최 남부의 항구도시다.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미시시피 강(3767km. 세계 4대 강)은 하절기마다 엄청난 토사를 싣고 내려와 뉴올리언스 일대를 옥토로 만들어 주었다. 이곳을 '델타' 라고 부르는 이유다. 삼각주 모양의 로고로 유명한 델타 항공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되었다. 물은 모든 것을 평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멕시코만의 악명 높은 허리케인은 수시로 이 평원을 덮쳤다. 카트리나는 이 땅을 재난으로 휩쓸었다.

뉴올리언스 풍경
▲뉴올리언스 풍경

귀에는 쉬지 않고 재즈가 흘렀다. 재즈는 감정을 잔잔하게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다시 차분하게 마음을 다독이는 맛도 있다.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지명만 들어도 설레였던 젊은 날을 지나 드디어 재즈의 고향에 당도했으니 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 나는 재즈를 집요하게 듣겠다는 다짐을 했다.

'썸머타임'은 들을 때마다 새롭고 다시 입맛이 돋는 인생의 밥 같은 노래다. 두툼하다 못해 걸쭉한 '마할리아 잭슨(1911-1972)' 의 목소리는 세파에 지친 나의 영혼을 항상 보듬어주는 포근한 솜이불이었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뉴올리언스를 그리워하도록 만들었다. 버킷리스트에 담아놓고도 꺼내지 못한 긴 기다림 끝의 만남이다. '썸머타임' 에 왔고 이글거리는 '썸머타임' 에 불후의 재즈 '썸머타임' 을 듣는 중이다.

"여름이 되니 살기가 수월해지는구나.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르고 목화는 키가 커간다.

아가야 울지 마라.

내일 아침이면 너도 노래하며 일어 날거야.

그러면 너는 날개를 펴고 하늘을 차지할거야.

아침까지는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한다.

아빠 엄마가 네 곁에 있으니까. 잘 자거라"

조지 거쉬인(1898-1937)은 클래식재즈와 심포니를 결합시킨 현대 재즈의 선구자다. 그가 만든 오페라 '포기와 베스' 1. 어부의 아내 클라라가 아기를 재우며 부르는 노래다. 삶은 고단하지만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은 먹을 것도 많고 지내기도 조금 편해진다. 흑인 노예들은 빼앗긴 일상 속에서도 물고기가 튀어 오르고 목화가 익어가는 여름날 오후의 평화를 흥얼거렸다.

▲마할리아 잭슨 생전의 모습
▲마할리아 잭슨 생전의 모습

마할리아 잭슨은 흑인 노예의 손녀딸이다. 가난과 학대로 정규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가정부, 세탁부, 식당보조, 청소부 등을 거치면서도 주말 성가대는 유일한 행복이었다. 어느 날 장례식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은 레코드회사 임원의 추천으로 가수가 되어 가스펠의 전설로 남았다. 당연히 악보를 읽지 못했다. 하지만 들을수록 가슴이 저려오고 부드러움이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목소리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썸머타임' 중에서 나는 마할리아 잭슨의 노래를 압권으로 꼽는다. 무쇠 솥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음성과 실타래를 풀어내는 듯한 소리 결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영혼의 정수가 담긴 성량에 밀프레드 폴스의 피아노 반주가 앙상블을 이루는 '썸머타임' 은 운명 같은 노래다. 생전의 그녀는 위대한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 의 인권운동 현장에 서기도 했다.

프렌치 쿼터와 잭슨 스퀘어는 뉴올리언스의 상징이다. 햇빛이 꺾이는 오후를 틈타 거동했다. 버번 스트리트에서는 이미 작은 거리공연들이 시작되었다.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토롱이 무명시절 거쳐 간 이후 '프리저베이션 홀' 은 남부 재즈의 성소 대접을 받는다. 허름한 공연장, 40여명이 어깨를 부딪히며 앉아 부채질을 했다. 낡은 나무 덧문안쪽으로 기와지붕 풍의 스페인 하우스다. 내부의 벽에는 지나간 시절의 흑인 재즈가수들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100년이 넘었으니 사진이 없던 시절의 유산들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어른거렸다. 삐그덕 거리는 마루바닥은 뉴욕이나 도쿄 뒷골목 재즈바와 똑 같았다.

▲뉴올리언스 프리저베이션 홀
▲뉴올리언스 프리저베이션 홀

피아노, 베이스, 클라리넷, 트럼본, 섹소폰, 트럼펫, 드럼이 한 팀으로 감미롭거나 슬프거나 한이 맺힌 리듬들로 스윗칭 되는 무대다. 재즈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함이 인상적이었다. '로스트 마이 드림'. 어린 딸의 죽음 앞에 흐느끼는 아버지의 심정이 떨리는 성대를 타고 나오는 재즈곡. 오 걸(Oh girl. 내 딸아), 오 걸(Oh girl. 내 딸아), 백 투 미(back to me. 내게 돌아오려므나--). 안경 낀 가느다란 눈의 트럼본 싱어의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여섯 곡이 어떻게 연주되고 끝났는지 모를 잠깐 동안의 호사였다.

베이스의 두툼한 체격, 드럼은 언제나 모든 연주를 받아주는 마더랜드 같은 느낌. 각자의 인생과 인종들의 하모니. 이렇게 또 인생이 흐르는 밤이다. 합주와 개인연주, 다시 노래, 그리고 마지막에는 넘치는 리듬감으로 박수를 받는 무대. 시골 대학생 같은 외모의 피아니스트 마리 와타나베는 이곳에서 30년째 연주 중이란다. 나고야 출신으로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일본 재즈의 두께가 느껴진다.

즉흥이 살아있는 재즈는 자유로움이 힘이다. 재즈 박물관에서 만난 루이 암스토롱 외에도 엘라 피츠제럴드, 에바 케시디, 델리 리즈, 내가 좋아하는 줄리 런던, 쳇 베이커, 미모의 노라 존스, 빌리 홀리데이, 바버라 핸드릭스 등이 미국 재즈 전설의 주인공들이다.

▲재즈의 본거지 프렌치 쿼터에서 야외 공연은 그들의 일상이다
▲재즈의 본거지 프렌치 쿼터에서 야외 공연은 그들의 일상이다

마할리아 잭슨이 지루해지면 나는 요즘 네덜란드 재즈 싱어 카로 에머랄드(1981-)를 찾기도 한다. 그녀는 암스테르담의 밤을 달구는 흑장미로 이미 정상 반열에 올라있다. 포틀랜드의 재즈밴드 핑크 마티니와 여성 싱어 스톰 라지의 에너지 넘치는 재즈곡 "Amado Mio" 까지 들으면 급하게 와인 한잔이 목울대에 적셔져야 감정이 진화 된다.

뉴올리언스에서 낮 시간은 더위 때문에 호텔피신이 당연한 불문율이다. 창 밖 으로 미시시피강을 지나는 선박들이 보였고 졸다가 허기가 몰려올 때쯤 '베녜' 를 사다 먹었다. 이곳이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이주한 사람들이 먹던 프랑스식 도넛이다. 작은 네모 모양으로 튀긴 빵에 슈가 파우더를 듬뿍 쏟아 주면 맛은 하늘로 올라간다.

"천천히 먹어.

생의 첫 베녜는 다시 못 먹어.

세계 어디서도 이 맛은 못내"

소문난 영화 '아메리칸 쉐프'의 대사다. 프렌치 쿼터의 원조 베녜는 'Cafe De Monde' 가 일품이다. 하얀 슈가 파우더로 범벅된 베녜의 맛은 그야말로 "웰컴 투 뉴올리언스" . 오직 먹으려고 오는 이들도 많다. 프랑스 탐험가들이 처음부터 길들여 놓은 음식이다. 스페인이 점령했고 프랑스가 식민지로 가지고 있다가 미국에 팔아넘긴 땅이 루이지애나다. 허핑턴 포스트는 죽기 전에 먹어봐야 할 튀김음식으로 한국의 치킨과 일본 덴푸라 스페인 츄러스 그리고 루이지애나 베녜를 꼽았다. 색다른 치킨 파파이스도 뉴올리언스 음식이다.

▲뉴올리언스 재즈 박물관
▲뉴올리언스 재즈 박물관

모진 고난과 인생의 비애를 넘어선 노래 재즈는 우리의 남도 민요에 섞인 '()' 의 강렬함이 묻어있다. 아일랜드의 '대니보이' 나 포르투갈의 '파두' 와 비슷한 계통이다. 인생은 본래 슬프다. 남의 지배와 압제를 당하면 더욱 슬프다. 축축하고 습기로 가득 찬 인간의 의식 저 밑 바닥에 깔려있는 내면의 깊이가 문화로 포장되어 우리 앞에 마주했을 때 대개는 감동을 느낀다.

뉴올리언스의 세계적인 레스토랑 안토니오스의 2만병 와인창고는 나를 질리게 했다. 재즈 본거지 버번 스트리트의 평범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게 전부인데 안쪽은 30개가 넘는 호화 클럽 룸과 미국최대의 와인 스토리지, 식민지 시절 루이 왕정부터 다녀간 명사들의 기록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곳의 검보(뉴올리언스 스프)와 크리올(새우와 쌀밥을 소소에 버무린 혼혈들의 토속음식)은 일품이었다. 기대 이상의 별미였다. 아침에 먹은 130년 된 '마더스 하우스(할매집)' 보다 더 깊은 풍미가 가득했다.

밤의 뉴올리언스는 광란의 천국이었다. 거리에서, 클럽에서, 자동차에서 연주와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온통 축제의 도가니다. 이곳 사람들은 비정상인 듯, 비정상 아닌, 비정상 같은 정상의 상태라고나 할까.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세계각지에서 여름날의 뉴올리언스를 향하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썸머 월드 페스티벌' 현장이다.

지평선은 이미 어린 시절 내게 와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시절의 꿈길이 뻗어간 곳을 끝까지 가보고 상상한 것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 보는 게 아닐까.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세상에는 가봐야 할 낯선 땅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루이지애나의 재즈와 미시시피 강변의 풍경을 오래토록 잊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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