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제는 수십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사람들은 말로만 동의를 하거나 실제 실행에 옮기더라도 생활의 극히 일부에만 반영하는 소극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기상이변을 접하면서 지구환경 보호의 필요성이 피부로 체감되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공상 과학 소설이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내 눈앞에서 직접 벌어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텍사스에 눈이 내리고 사우디에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관심이 없거나 소극적인 사람들도 이제 작은 것 하나부터 환경보호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상의 인물인 나환경씨의 삶을 살펴보자. 나씨는 평소에 환경에 관심이 많다. 자동차도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를 타고 비닐봉투를 사용하는 상점은 절대 이용하지 않고 반드시 종이봉투를 사용하는 상점만 이용한다. 커피숍을 갈 때 항상 개인 텀블러를 챙겨간다. 나씨의 가방에는 같이 가는 동반인을 고려하여 텀블러를 항상 2~3개 휴대할 정도이다.
나씨는 본인의 작은 실천이 지구환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나환경씨의 소망을 무참히 짓밟는 연구 결과가 도출되고 있다. 이른바 전과정 평가(LCA- A Life Cycle Analysis)라는 이론인데, 제품의 사용단계 뿐 아니라 생산, 폐기까지 고려하여 환경에 대한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느 단계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환경에 대한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에 쓰레기를 주으러 가는 봉사활동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쓰레기를 주으러 가는 활동 자체는 친환경적이다. 그러나 그 산에 왕복을 하기 위하여 노후 경유차를 타고 갔다면? 그 노후 경유차가 배출하는 환경적 영향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산 결과에 따라서 산에 쓰레기를 주으러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낮잠을 자는게 더 친환경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환경씨의 생활을 다시 살펴보자. 전기차를 타는 행위는 일견 친환경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배기가스의 측면만 분석한 것이다. 전기차가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더 많은 타이어 분진을 발생시킨다. 브레이크 작동 시 발전을 하기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 분진도 더 많다. 내연기관 자동차에도 배터리는 있지만 그보다 더 막대한 배터리 폐기 문제가 발생한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어떤 부분까지 고려할 것인가에 따라 친환경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기준도 달라지는 것이다.
종이봉투와 비닐봉투는 보다 더 자세한 연구 결과가 있다. 1500장 생산을 기준으로 비닐 봉투는 58갤런, 종이봉투는 1503갤런은 물을 사용한다. 폐기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비닐봉투가 71% 더 저렴하다고 한다. 재활용을 할 경우 비닐봉투는 17BTU, 종이봉투는 1,444BTU의 에너지를 사용한다.(1 BTU는 1파운드의 물을 화씨 1도 올리는데 필요한 에너지 양이다) 생산, 폐기, 재활용 모든 면에서 비닐봉투가 종이봉투보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한다.
온실가스측면을 살펴보면 매립 하였을 경우 비닐은 썩지 않으므로 온실가스를 발생하지 않지만 종이는 썩으면서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종이를 만들기위해 베어진 나무까지 생각한다면 온실가스의 주범은 비닐이 아닌 종이 봉투인 것이다. 재사용성 측면에서도 비닐봉투가 종이봉투보다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다. 즉 환경오염 정도가 같다고 가정하더라도 비닐이 더 많이 사용 가능하므로 비닐봉투가 더 친환경적인 것이다. 종이봉투가 비닐보다 우월한 점을 해양오염지표 하나뿐이다. 텀블러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이산화탄소를 고려할 때 100번은 사용해야 종이컵 대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과연 나환경씨는 본인이 구입한 모든 텀블러를 100번이상 사용 하였을까? 친환경적으로만 보이던 나환경씨의 행동은 내연기관차를 타고 비닐봉투를 애용하며 텀블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