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모차르트 음악은 여행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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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모차르트 음악은 여행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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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알프스 산을 넘는 길은 고된 여정이었다. 울퉁불퉁한 고개를 오르고 험준한 고봉사이로 계곡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1763년 7살 모차르트는 건강한 마부 세바스찬의 마차를 타고 아버지 레오폴트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떠났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가 76개나 숨어있는 비경 잘츠감머구트를 지나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며칠이 걸렸다. 마차는 힘에 겨운 듯 흔들거렸고 볼프강 호수를 지나 만년설로 뒤덮인 험준한 산길은 끝이 없는 곡선 이었다.

35살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650편의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 이태리 오페라와 칸타타, 오라토리오, 피아노 소품들, 피가로의 결혼과 독일의 징슈필(민속극)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천재성을 유감없이 내보였다. 음악사의 독보적 거인으로 추앙받는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무엇이었을까. 해마다 이곳 오스트리아를 찾는 여행객들의 수수께끼 주제다.

어린 모차르트가 지나간 그 길을 250년의 시차 속에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비엔나에서 하루를 묵고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 잘츠부르크 호수가 기슭에 자리한 콘도에서 알프스의 밤을 보낸 뒤 떠난 길이다.

그 옛날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비포장 고갯길이었을 도로는 포장길로 말끔히 단장되었고 하루를 돌아가야 했던 호수 길은 직선 터널로 이어졌다. 덜커덩 거리던 마차가 자동차로 바뀌었을 뿐 자연은 세월을 거슬러가며 그대로의 모습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모차르트 어머니의 고향 상트길겐을 거쳐 들어가는 할슈타트 호반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세상에 이런 경치가 있었나 싶다. 굽이굽이 알프스의 비경을 속살처럼 간직하고 있는 신의 세계인 듯하다. 산과 물이 어울리며 빚어내는 자연의 조화는 나의 부족한 언어로 묘사가 힘든 절경이었다.

▲잘츠감머굿 호수풍경
▲잘츠감머굿 호수풍경

이렇게 국경선을 넘은 철부지 음악가는 당시 유럽의 대도시였던 파리와 밀라노, 로마, 취리히, 피렌체 등 60여 곳을 돌아다녔다. 가족이 함께한 궁정연주여행이 길면 3년이 넘을 때도 있었다. 음악 평론가들은 모차르트가 알프스의 브렌네르 페스를 지나 독일과 이태리로 떠난 것을 로마사에서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간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여행은 그를 성숙시켰고 주변국들의 언어를 익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풍부한 방랑의 자산이 음악의 큰 자양분이 되어 인류사에 불멸의 명곡들을 남겼다.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약 30여 년 동안 천상의 선율을 오선지에 척척 옮겨 적고는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간 천재라는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렇게 적었다.

"모차르트를 천재로 여기는 것은 본질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의 모든 기교를 배우고 그것을 끓임 없이 연습해 음악기법으로 청중을 짜증스럽게 하지 않았으며 음표 하나도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반복해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 맞춰 모차르트 루트를 따라가는 코스는 그래서 지금 가장 인기가 높다. 잘 보존된 모차르트 생가 게버츠 하우스와 몇 번의 이사 끝에 골랐다는 미라벨 궁전 앞 두 번째 집까지 한나절을 쉬지 않고 돌아보았다.

▲모차르트 생가 게버츠하우스
▲모차르트 생가 게버츠하우스

이곳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모차르트의 성공이 부친 레오폴트의 전략 때문이었다고 한다. 부친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야심 많은 계몽주의 음악가였다. 레오폴트는 아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모차르트에게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그를 철저히 가르쳤다. 레오폴트의 전략은 바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다양한 여행이었다.

모차르트는 35년 1개월(1756.1-1791.12)을 살았는데 그 가운데 10년도 더 되는 3720일을 유럽 10개국 204개 도시로 여행했다. 1769년 12월부터 1773년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의 도시 51곳을 여행했다. 교통수단이나 그 시대의 상황으로는 불가사의한 여정이다. 모차르트가 당시 유럽에서 가보지 않은 국가는 예카테리나 2세가 다스리던 러시아와 에스파냐 정도였다.

해는 어느덧 늦은 오후로 치닫고 있는데 사람들 틈에 낯익은 태극기가 보였다. 이게 웬일인가. 담요와 페트 물병, 텐트 등 개나리 봇짐이 다닥다닥 실려 있는 자전거를 타고 한 젊은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한국인인가 싶어 저쪽에서부터 다가왔노라고.

▲자전거 투어 중인 한국 대학생과
▲자전거 투어 중인 한국 대학생과

대학 3학년을 휴학하고 벌써 43일째 유럽 자전거 여행 중이라니 나 자신이 젊은 날 가져보지 못했던 기개를 그는 다 짊어지고 대륙을 누비고 있었다.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이태리,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들어왔단다. 앞으로 한 달 더 여정을 이어갈 계획임을 신나게 쏟아냈다. 잠은 2유로 텐트촌에서 식사는 최대한 간단한 빵으로 때우면서 견딘 얼굴치고는 생기와 기쁨이 넘쳐난다. 한국에서 온 미래의 모차르트를 만난 기분이었다. 부러운 청년시절이다.

어디 모차르트와 K 청년 뿐이겠는가.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으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으로 당시 유럽의 지배층을 흥분시켰다. 원효는 참회의 여행길에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해탈했으며 혜초는 서역 땅 천축국 을 돌아보고 불후의 명작 '왕오천축국전' 을 남겼다. 걸어서 한 달 만에 북경에 도착한 박지원은 열하일기로 조선사회를 일깨웠다. 영국왕실은 이집트를 개척한 뒤 일 년에 한번 씩 어린 왕자들을 모두 데리고 그 험난한 사막여행을 감행했다. 사람들은 늘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다. 그것만이 현재를 뛰어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 키우는 사람치고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없을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보는 것이 많으면 지식이 쌓이고 성찰의 밑거름이 된다. 넓은 시야는 지금 같은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다. 그 보물들을 아이들 가슴속에 심어준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다.

▲ 비엔나 음악가 묘지. 모차르트 묘비
▲ 비엔나 음악가 묘지. 모차르트 묘비

여행의 자양분을 음악으로 흠뻑 담아낸 모차르트는 비엔나 교외에 잠들어 있었다. 그의 큰아들 카를 토마스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남으로서 모차르트 가문을 소멸했다. 1762년 아버지 레오폴트가 여동생 난네를을 함께 데리고 연주여행을 떠난 지 96년만의 일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음악의 여신상에 안겨 한 시대의 예술가는 그렇게 영면하고 있었다.

공원처럼 잘 꾸며진 비엔나 '음악가의 묘지(중앙공동묘지)' 를 돌아보는 동안 줄곧 이 천재의 음악을 들었다. 그가 남긴 명곡 '피가로의 결혼'과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일정에 지치고 쓸쓸한 나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비엔나 외곽의 수많은 묘지에는 비엔나 인구보다 더 많은 숫자가 묻혀있다니 흥미롭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브람스 등 4인의 대가들이 반원 형태로 배치되어 모차르트 묘비를 둘러싸고 사후세계를 함께 하고 있었다. 모차르트 시신은 찾지 못하고 이곳에 묘비만을 세웠다. 화강암 위에 헌화된 꽃들이 놓고 간 순서대로 말라가고 있었다.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의 차이는 결국 시간일 뿐이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단지 정해진 시간표대로 떠나고 남는 것의 연속 아닐까.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와는 상관없이 그들만의 질서대로 움직이고 사라지고 다시 시작되는 윤회의 물레방아처럼 말이다.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눈이 쌓여 있다는 것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

굳이 못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가리라는 것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이 오리라는 것"

(슬퍼할 수 없는 것. 이성복 시)

모차르트 묘비 앞에 꽃 한 송이를 놓고 고개를 숙인 뒤 돌아 나왔다. 이번 여행의 다음 목적지 체코의 프라하로 달리는 버스에서 국경을 지나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여기 있고, 단지 사라져 가는 것은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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