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솔지의 잇사이트] 먹거리 가격 인하 러시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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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솔지의 잇사이트] 먹거리 가격 인하 러시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 안솔지 기자 digeut@cstimes.com
  • 기사출고 2023년 07월 06일 0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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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안솔지 기자 | 라면업계를 시작으로 한 가격 인하 움직임이 제과, 제빵 등 식품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에 출연해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보다 50% 안팎 내려간 점을 감안해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갑작스러운 추 부총리의 '저격'에 라면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발언을 방송으로 처음 접했고 정부로부터 어떠한 공문도 받은 바 없다"며 "밀 가격이 내려도 원가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가격을 내리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자 정부는 제분업체들을 불러 모아 밀가루 가격 안정에 힘을 보탤 것을 주문했다.  

결국 라면업계는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에 못 이겨 13년 만에 처음으로 라면값 인하에 나섰다. 농심은 이달부터 신라면 가격을 4.5% 내리기로 했고, 이를 시작으로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주요 4사 모두 라면값을 내렸다.

이들이 '백기'를 들자 눈치를 보던 제과·제빵업체들도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SPC, 롯데웰푸드, 해태 등이 가격 인하에 나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추 부총리의 발언 이후 단 10일 만에 이뤄졌다. 자유시장경제를 그토록 강조하던 이번 정부의 기조와는 정반대의 행보다. 물론 정부는 물가 안정의 '컨트롤 타워'로, 고물가에 시달리는 국민을 위해 시장 안정을 위해 조치할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에 있다. 추 부총리는 라면업계를 콕 집어 저격했다. 기업들이 어려운 기색을 내비치자 즉각 제분업체까지 불러들여 압박을 가했다. 이를 통해 이뤄진 반강제적인 가격 인하가 고물가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신라면 가격을 인하하기로 한 농심 외에는 각 사의 주요 제품들 대부분이 빠져 '보여주기식 인하'라는 소비자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제품 가격이 오를 때와 달리 인하율이 크지 않아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격 인하 러시가 이어지고 있지만 기업이나 소비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부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가격 내리기에 동참했지만, 이러한 기업들의 행보가 언제까지고 계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번에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가격을 내린 만큼 이를 복구하려 나설 것이다. 추후 가격 인상 폭이 더욱 커질 수도 있고,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 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비슷하게 가격통제에 나섰다 실패한 사례도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52개 생필품으로 구성된 'MB물가지수' 품목을 만들어 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MB물가지수 품목의 평균 물가 상승률은 19.1%로 일반 소비자물가 상승률 10.7%보다 약 2배가 폭등한 것이다. 특정 품목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핀셋 대책'이 실질적인 가격 안정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인위적인 개입으로 이뤄낸 식품가의 가격 인하 행렬을 보며 자화자찬하는 동안 서민들의 시름을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특정 먹거리 몇 개 가격이 내렸다고 물가가 잡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격을 내리라'며 기업 옥죄기식의 단편적인 가격정책은 더 이상 안 된다. 이제는 서민 경제 전반을 들여다보며 보다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물가 안정 대책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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