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응의 펜촉] 중소기업 울리는 기술도용, 실질적인 대책 마련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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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응의 펜촉] 중소기업 울리는 기술도용, 실질적인 대책 마련 절실
  • 박준응 기자 pje@cstimes.com
  • 기사출고 2023년 06월 21일 0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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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박준응 기자 |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이 부당하게 탈취하거나 도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피해 기업들의 시름이 깊다. 최근 중소기업벤처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이 아예 기술유용에 나설 엄두도 못 내도록 엄단하는 동시에 거래 초기단계에서부터 기술유용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촘촘한 법망을 구축하는 등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2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중소기업 기술침해 피해 건수는 280여건, 피해액은 2827억원에 달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도용하는 사례 대부분은 원·하청 관계로 거래가 형성되거나 기술 개발 지원과 사업화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협력이 논의되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갑을관계가 명확한 상태에서 발생한다. 작정하고 기술을 베끼려 드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또한 기술을 탈취당한 뒤 소송에 나서도 기술유용을 입증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오랜 기간을 기다려 어렵사리 기술유용을 인정받고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이끌어내더라도 과징금 규모는 피해 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소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 기업이 실질적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피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현행법상 법원이 행정기관의 기록 송부 의무를 강제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피해를 입증해도 정확한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피해를 입은 기업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결과적으로 기술을 뺏긴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존폐위기에 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소정의 손해배상만 해주면 그만이다. 오히려 다소 잡음이 있더라도 기술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면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길 수 있다.

올 초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도용을 당한 한 중소기업이 공정위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이끌어냈지만, 피해기업은 기술도 뺏기고 거래처도 잃었는데 가해기업에 부과된 과징금은 고작 1억원에 불과했다. 공정위 결론이 나는 데만 3년이 넘게 걸려 피해기업의 경영상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 사이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해 피해를 회복할 길도 사라졌다.

해당 기업의 대표는 "민사에서는 패소했는데, 공정위는 결과적으로 우리 손을 들어줘 심경이 복잡하다"며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처벌받게 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그저 막막할 뿐"이라고 토로하곤, 한참 동안 한숨만 내쉬었다.

이처럼 억울한 피해가 확산하자 정부도 최근 제도 개선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8일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예방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를 피해액의 3배에서 5배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 기술보호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실효성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확대된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나 처벌 수준이 대기업 입장에서는 여전히 큰 리스크라고 보기 어렵고, 기술침해 예방을 위한 대책도 전문가 컨설팅 제공이나 모니터링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선 이미 각종 세미나와 간담회 등을 통해 현실과 맞닿아 있는 대안들을 다수 내놓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를 대기업도 존폐 위기에 몰릴 수 있을 정도로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벌금 외 징역형 처분이 가능하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 여건상 일단 기술을 탈취 또는 도용당하면 피해 기업이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비밀유지계약서(DNA) 작성을 의무화하는 등 사전 예방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정위 등 정부 측으로부터 피해 기업이 증거자료를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정부도 이 같은 목소리를 잘 듣고 있을 것이다. 제도 개선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특히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업계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듣는 것에서 그쳐선 안 된다. 억울한 피해를 보는 기업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이를 향후 제도 개선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개선된 제도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살피는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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