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우의 블랙박스] 한국형 레몬법, 누굴 위한 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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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의 블랙박스] 한국형 레몬법, 누굴 위한 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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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이찬우 기자.
컨슈머타임스 이찬우 기자.

컨슈머타임스=이찬우 기자 | 소비자를 위해 도입된 '레몬법'이 오히려 소비자의 교환·환불 요구를 무력화하는 기업의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다. 법이 적용되고 있는 현실을 살펴, 소비자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레몬법은 차량, 전자 제품에 결함이 있을 경우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 환불, 보상 등을 하도록 규정한 미국의 소비자 보호법이다.

2019년 도입된 한국형 레몬법은 신차 구매 후 1년 이내, 주행거리 2만㎞ 이내에 '동일한 중대 하자'가 2회 이상, 일반 하자가 3회 이상 재발할 경우 제조사에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최소 2번 이상의 동일한 결함을 겪고 이를 입증해야만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레몬법을 적용하려면 중대 하자 1회, 일반 하자 2회 수리 후 동일 하자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하자재발 통보서를 자동차 제작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위탁 운영하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가 조사에 나서며, 그 결과에 따라 중재 판정을 내린다.

이 과정을 모두 거쳐 교환·환불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자동차 교환·환불 요구 가운데 1954건이 종결됐고, 이 가운데 0.67%에 불과한 13건만 교환·환불 판정이 내려졌다.

하자가 발견돼 교환·환불 대상이 되더라도 최종 판정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교환·환불 판정이 내려진 13건의 평균 소요 시간은 7개월이 넘는 218.9일이었다.

소비자는 그저 '뽑기'를 잘못했을 뿐인데, 차량이 고장 나면서 얻는 불편과 분쟁 과정에서의 마찰을 감수하고 차량 하자에 대한 입증까지 해야 한다. 입증을 해내더라도 이를 인정받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완성차 업체들이 레몬법을 이유로 교환·환불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최근 아우디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가 차량을 받은 지 1시간 만에 엔진에 문제가 생겨 교환·환불을 문의했지만, 아직 하자가 한 번밖에 발생하지 않아 레몬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1억원이 넘게 주고 산 차가 첫 주행에서 고장 난 것도 화가 나는데,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 때문에 교환·환불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우디 측은 출고 이전부터 있던 제조사의 실수일 확률이 높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레몬법'을 핑계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차량 사용이 급하고 레몬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잘 몰라, 울며 겨자먹기로 차량을 수리해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유명무실한 레몬법은 도입 이후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소비자의 불만만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제조사가 차량의 무결함을 입증하고 적극적으로 하자를 조사하는 등 새로운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

개선을 통해 레몬법이 '소비자 보호법'이라는 이름처럼 소비자를 위한 법으로 작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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