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우의 블랙박스] 수입차 정찰제 도입, 취지는 좋은데 신뢰 구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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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의 블랙박스] 수입차 정찰제 도입, 취지는 좋은데 신뢰 구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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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이찬우 기자.
컨슈머타임스 이찬우 기자.

컨슈머타임스=이찬우 기자 | 수입차 시장은 매년 '기습할인'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딜러사들의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인해 지점마다, 시기마다 다른 가격에 차량이 판매되기 때문이다.

수입차는 본사가 지정한 수입사, 딜러사를 통해 판매된다. 최초 정해진 가격이 존재하지만 판매가 부진하거나, 월 실적 대수를 채우기 위해 자체적 할인이 들어간다.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모두가 알만 한 수입 브랜드들이 매년 10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할인해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이에 소비자들의 불만도 매년 쌓인다. 출시하자마자 구매한 소비자를 바보로 만들어버린 꼴이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림 끝에 차량을 제값 주고 샀더니 몇 달 뒤에 수백만원씩 할인해 팔고 있으니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폭스바겐 딜러사들이 20%에 달하는 '기습할인'을 실시해 300명이 넘는 구매자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을 수밖에 없다. 전화해서 따져봤자 수입사와 딜러사는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쁘고 이미 차를 싼 값에 구매한 소비자들도 많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해도 큰 소용이 없다.

이에 등장한 것이 '정찰제'다. 모든 소비자들에게 똑같은 가격으로 차량을 판매하는 것이다. 테슬라, 폴스타 등은 이미 온라인 정찰 판매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최근 혼다코리아가 정찰제 도입을 공식 선언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정찰제 도입을 반기는 분위기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똑같은 가격으로 차량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시장에 제대로 정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다. 이미 정찰제를 도입한 기업조차 본사가 지정한 가격이 오르내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정찰제를 도입해도 딜러사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대표적인 정찰제 기업 테슬라의 경우 가격이 주식처럼 수요에 따라 빈번하게 오르내린다. 테슬라는 전기차 붐이 일어나 판매가 급증하자 가격을 수차례 올렸다. 제일 저렴한 차량인 모델 3가 8000만원에 육박할 정도다. 이후 판매가 부진하자 또 가격을 인하하는 등 정찰제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실적 압박을 받는 딜러사들이 정찰제를 고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떻게든 한 대라도 더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의 입장에서 다른 대리점, 사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싶은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혼다코리아는 내부 위원회를 만들어 감독한다고 했지만, 암암리에 할인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 르노코리아 등 국내기업도 오래전부터 정찰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업사원들이 자신의 몫을 포기하면서까지 고객에게 할인을 제공하고 있다. 수입차 시장만 이와 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소비자들의 즐거운 자동차 소비를 위해 '정찰제'는 필요한, 합리적인 제도다. 하지만 도입에 앞서 확실한 방침과 구체적인 매뉴얼을 구축해,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는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 섣부른 도입으로 시장에 혼란만 가져온다면 이는 신의 한수가 아닌 자충수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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