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나가사키 침묵의 바다, 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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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나가사키 침묵의 바다, 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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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침묵하지 않고 있었다. 세상을 밀고 올라오는 소리와 그러다가 이내 쓸려 내려가는 소리가 포개어져 더는 경계를 느낄 수 없었다. 밀물과 썰물의 오고 가는 소리만이 영원으로 남는 곳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동작의 틈 사이로 무수한 생명들만 명멸하는 오후다. 남쪽 머나먼 태평양 해원에서 다가오는 바람은 점점 더 온기가 완연했다.

작은 어촌 소토메(外海)는 멀지 않았다. 나가사키에서 자동차로 이동하기에 지루하지 않은 적당한 거리다. 수평선이 하늘과 만나는 지점까지 목측이 가능한 맑은 해변이다. 일본의 국민작가 엔도 슈사쿠(1923-1996)는 이곳에서 소설 <침묵>을 구상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해변을 거닐며 명상하고 쓰고 생각하고 구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17세기 에도막부시대 잔혹했던 '기리시탄(천주교도)' 박해의 역사적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앞에 선 인간의 순교와 배교를 밀도 있는 문체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에도시대 나가사키는 포르투갈과 교역이 빈번했다. 이미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한때 최대 30만의 신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보다 200년이나 앞선 일이다. 어느 날 독실한 사제(페레이자)의 배교소식이 로마교황청에 날아든다. 이 소식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제자 두 명이 급파된다. 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잠입한 그들은 곧 관리들에게 잡히고 만다. 갖은 고문과 강제배교에 맞서는 사제들의 인간적 심리묘사는 압권이다.

 

▲엔도가 즐겨 찾았던 규슈 소토메 해변
▲엔도가 즐겨 찾았던 규슈 소토메 해변

바다에 던져진 신도들을 구하려고 함께 뛰어든 사제 가르페 신부는 죽는다. 남은 로드리고는 잔혹한 심문을 피할 수 없었다. 눈 앞 에서 구덩이를 파고 오물을 채워 넣은 뒤 거꾸로 매달아 피가 쏠리면 귓불에 칼집을 내어 피가 한 방울씩 세어 나오면서 천천히 죽게 하는 참혹함을 목격해야 했다.

그를 따르던 일본인 신도 모카치와 이치조는 해변의 십자가 말뚝에 산채로 묶여 죽는다. 밀물이 들어올 때 쯤 목까지 차오르는 높이에 묶인 그들은 며칠 동안 온 몸으로 이 고통을 견디다가 결국은 지쳐 생명이 다하고 만다. 죽음의 울부짖음이 해풍을 타고 마을로 들려올 때 쯤 주민들은 공포의 극한을 체험해야 했다.

로마시대에도 이교도 처형은 잔인했다. 산채로 원형경기장에 던져져 사자 밥이 되거나 군중들 앞에서 불로 태워지는 화형을 당했다. 그럼에도 결국 로마 국교로 자리 잡는 종교의 끈질긴 역사는 시대가 기록하고 있다. 이 연결점을 꺾고자 했던 사무라이 막부정권은 몇 배 지독한 형벌로 '기리시탄'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티븐 핑커의 말처럼 "피부색이 다르다고, 신념이 다르다고, 이해관계가 엇갈린다고 같은 종족을 무참히 죽이는 종()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 기록문화가 시작된 이래 수없이 자행된 야만적 살육은 어느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그러니 일본의 에도막부나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인류가 걸어온 종족 살인의 한 단면으로 기억된다.

로드리고 사제는 갖은 고문을 당 한 뒤 '후미에(예수나 마리아의 얼굴을 그린 나무 판을 짓밟는 것)' 를 강요당한다. 후미에를 할 것 인지 죽을 것인지를 흥정하는 집요한 고문 끝에 결국 성인의 얼굴을 밟고 만다. 죽음 앞에서 생존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거부하다 죽는 순교와 밟고 살아나는 배교의 심리 대비는 누구도 시선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살아난 로드리게스는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고 이곳에서 남은 생을 지내다가 죽는다. 남겨진 부인은 불교식 장례를 준비하면서 사람들 몰래 작은 십자가를 남편의 손에 쥐어준다. 저승길 동행해줄 영혼의 친구를 딸려 보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가사키 엔도슈사쿠 문학관.
▲나가사키 엔도슈사쿠 문학관.

엔도 문학관은 실내 천정부터 벽으로 엇갈려 내려오는 격자 목재 디자인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아담한 건물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성당 분위기였다. 올해가 엔도 탄생 100주년이다. 나는 신자가 아니다. 종교적 수사가 넘치는 꽃잎이 아니라 꽃대로 살아온 건조한 지난날들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찬미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파리 도미니크 봉쇄 수도원의 사제들이나 불교 스님들의 면벽정진, 동안거 하안거 모두가 고립된 그들만의 소통방식으로 살다가 죽는다. 다양한 형태로 추구되는 영생을 존중하는 까닭이다.

문학관을 돌아 나와 '침묵의 비(碑)'를 만났다. 일본 역사상 노벨문학상 후보로 위대한 소설가 반열에 오른 엔도의 대표작을 기리기 위해 후세사람들이 만든 허망한 징표다. 수많은 신도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현장에 돌덩이 비석 하나가 화초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십자가에 묶여 밀물 썰물 끝에 죽은 영혼들이 그 주변을 떠다니는 듯 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엔도 슈사쿠가 소설에서 끝없이 반복시키는 질문이다.

"주님, 당신은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 합니다" 는 신부의 독백에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응답이 환영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카페 '라메르'에 앉아 기울어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1862-1918)의 교향곡 '라메르(바다)'는 소토메 해변의 커피하우스로 살아 있었다. 1900년대 초 유럽을 휩쓴 일본 판화 '우키요에' 때문에 드뷔시가 '자포니즘' 에 심취해 만든 작품이니 '침묵'과 어울리는 만남이다.

엔도의 소설은 영화로도 유명해졌다. '사일런스(2016)' 로 개봉된 화면이 더 생생하게 푸른 바다에 오버랩 되었다. 미국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1942-)감독의 깊이가 배어있는 작품이다. 리암 리슨 등 명배우들의 심리연기가 오랜 여운을 남기는 걸작이다.

 

▲ 영화 '사일런스' 의 포스터
▲ 영화 '사일런스' 의 포스터

불문학을 전공한 엔도 슈사쿠는 말년에 '고리안(孤狸庵. 늙은 여우와 너구리가 거주하는 곳)' 이라는 별명으로 일본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내가 아는 일본인 친구들은 모두 그를 본명보다 '고리안 선생' 으로 기억하기를 원했다. 일본의 가장 역량 있는 작가로 추앙받는 시바 료타로(1923-1996)와 태어나고 죽은 시기가 같은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다.

나는 한때 '황경한' 의 흔적을 찾아 나설 생각도 했다. 조선의 종교박해를 온몸으로 받아낸 정약용가의 조카사위 황사영의 어린 자식이다. 8천 명의 신도를 잡아 죽이는 참상을 베이징 주교에게 알린 '황사영 백서사건' 으로 그는 능지처참을 당했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는 모진 고문을 당했다. 정약종은 순교했고 정약용은 강진, 정약전은 흑산도로 긴 유배를 떠났다. 목민심서와 자산어보는 후세들에게 엄청난 유산이 되었지만 생전의 그들은 무자비한 천주교 박해 피해자들이었다.

'경한(景漢)' 은 나와 이름자가 같다는 우연도 컸다. 서학(예수)을 믿었다는 죄로 아버지 황사영이 참수된 뒤 어린 핏줄이 어머니 품에 안겨 남해안 섬으로 도망간 사연은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추자도까지 피신한 후 제주도로 건너가려 했으나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국천주교회 111번째 성지로 조성된 추자도 '황경한의 묘'는 많은 이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에도시대 로드리고 사제나 조선의 황사영은 무너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서성이다가 이승을 떠났다. 아픈 시대의 공통된 숙명이다.

소토메는 큐슈의 남쪽 바닷가다. 일제강점기 큐슈여고를 졸업한 국민시인 김남조(1927-)의 시어를 몇 번이나 되 뇌이며 오후를 보냈다. 엔도 슈사쿠와 인생의 언어가 상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의 교집합 때문이다. 바다가 없으면 너무 슬프거나 그 바다가 있어 삶의 위안이 되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 정서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 바다. 김남조 시)

 

일본의 개항과 함께 밀려들어온 종교는 박해의 시간을 피해가지 못했다. 잔혹한 살기의 폭풍이 지나고 나가사키에는 2차 세계대전 종반에 다시 군국주의를 응징하는 원폭이 투하되었다. 미쓰비시 조선소와 도회지가 쑥대밭이 되었다. 엔도는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대를 살며 지나간 종교박해의 야만을 기록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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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동 2024-04-11 07:53:4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엔도 슈사쿠!
덕분에 좋은 작가를 알았습니다..

기회되면
엔도문학관을 가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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