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성부 '촌스러운' 가요 심의 '이현령 비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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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성부 '촌스러운' 가요 심의 '이현령 비현령'
  • 강윤지 기자 yjkang@cstimes.com
  • 기사출고 2011년 08월 29일 0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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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캐릭터 뽀로로와 곰돌이 푸, 미키마우스는 상의나 바지를 벗고 다니는데 왜 19금 처리되지 않느냐."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와 방송사의 터무니 없는 가요 심의기준이 소비자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최근 여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술·담배 단어가 들어간 곡을 잇따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했다. 8월 한달 동안만 '유해약물' 사유가 적용된 노래는 24곡, 올 들어서는 169곡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60곡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술과 담배 등 유해약물을 언급한 노래에 '19금' 딱지를 붙인 것인데 그 기준이 애매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술 한잔을 다같이 들이킬게"(2PM '핸즈 업'), "예쁜 여자와 담배 피고 차 마실 때"(10cm '아메리카노'), "취했나 봐.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아"(비스트 '비가 오는 날엔'), "난 취했는지도 몰라…술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지는 마"(김조한 '취중진담')라는 노랫말에 대해 '청소년에 유해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가사에 술, 담배와 같은 '유해약물'이 포함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우림이 부른 송창식의 '고래사냥' 역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라는 가사로 유해물 판정 위기까지 갔다. 그러나 원곡은 심의에 걸리지 않았다.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사의 가요 심의기준도 하나의 '개그쇼'를 방불케 한다. 최근 컴백한 가수 지나의 '바나나'라는 곡은 제목과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MBC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노랫말 속 '바나나'는 영어권에서 '미친(crazy)' 혹은 '열광적인(enthusiastic)'으로 쓰이는 관용어다. 방송사의 심의담당자가 도대체 어떤 '자의적' 해석으로 선정적이라는 판정을 내린 것인지 오히려 되묻고 싶은 대목이다.

제멋대로인 심의 기준을 보고 있자니 1970년대 대중가요가 무더기로 '금지곡'이 된 사건이 떠오르는 듯 하다.

당시 '아침이슬', '고래사냥' 등은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 특히 '독도는 우리땅'은 '반일감정을 악화한다'는 황당한 기준에 의해 방송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 살펴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기준이다. 여성부와 방송사의 묘한 19금 기준이 오버랩 된다.

이번 심의 결정이 예술계의 '표현의 자유'와 소비자들의 '들을 권리'를 박탈한 과도한 심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19금 곡으로 지정될 경우 청소년 보호 시간대에 방송이 불가하고 음반에는 '19세 미만 판매금지' 스티커가 부착돼 청소년들의 구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은 가수의 팬들과 네티즌들은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며 여성부 홈페이지를 찾아 적극적으로 항의 표시를 했다. "동요 '뽀뽀뽀'가 지나친 스킨십을 조장한다. 불쾌하다", "버섯구이, 조개구이도 너무 민망해서 먹을 수가 없다"는 등 조롱 섞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비슷한 시점, 여성부 입장에서는 '낯 뜨거운' 소식이 전해졌다. '술'이라는 단어 때문에 19금으로 묶였던 그룹 'SM더발라드'의 곡이 유해매체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청소년을 유해한 매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혹은 '촌스러운' 대중가요 규제는 당장 멈추는 것이 옳다.

시대흐름을 반영한, 아울러 대중들의 눈높이를 감안한 선진국적 '자율 규제'와 '심의기준'을 도입할 때라는 얘기다.

컨슈머타임스 강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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