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의 커머스톡] 주인의식은 주인에게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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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의 커머스톡] 주인의식은 주인에게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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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박현정 기자] 얼마 전 일본 드라마 '검은 가죽 수첩'(2004)을 보게 됐다. 추리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소설이 원작으로 은행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1억2000만엔(약 11억8000만원)을 횡령해 긴자의 여왕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만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임하며 야망 넘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당시 사회상을 고려해 주체적인 여성상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고 읽어낼 수 있겠으나 드라마를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다. 올해 초부터 수억원에서 수천억원가량의 굵직한 횡령 사건들이 언론을 뜨겁게 달궜기 때문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2년까지 한해 평균 4만6000건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범죄 원인으로는 우발적 범죄가 가장 많았으나 생활비 마련, 사행심, 유흥비 마련 등이 주를 이뤘다.

올해 들어 발생한 횡령 범죄들은 대부분 주식·가상화폐 투자, 온라인 도박 등 일확천금을 위해 사용했거나 투자 손실을 메꾸기 위해 쓰였다. 지난 2년간 증시가 상승장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회삿돈을 잠깐 쓰고 주식·코인으로 벌어서 메꾸면 되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이 범죄를 불러왔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횡령 사건은 보통 회사의 내부통제시스템 부실과 연결되지만 이 경우 직원의 주인의식 부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직원은 회사의 주인이 아닌데 주인의식을 어떻게 가지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더구나 한 회사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던 세대와 달리 MZ세대에게 회사는 상호 필요에 따라 대등한 계약 관계를 맺은 곳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에게는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니체에 따르면 주인의식은 스스로가 삶의 주인으로서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 자기 극복을 통해 삶을 조형하려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좋은 인간'에 해당한다.

회사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여러 구성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 속에서 직원은 스스로를 부품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자기주도적으로 일하고 조직의 목표와 업무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졌을 때 담당한 업무에만 종속되는 것이 아닌 삶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주인의식이 회삿돈을 주인처럼 쓰라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덕적 해이는 회사 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스스로 불러오는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은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인격과 도덕성을 갖고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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