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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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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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1


 

평창의 불편한 진실

 

 

무성한 잡초더미 사이로 몇 년을 견뎌온 시설물 기둥들이 버티고 서있다. 한여름 녹음속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스키 리프트들과 점프 도약대, 본부 건물 전광판 등이 이전보다 더 낡아 보인다. 연결도로는 군데군데 패여 떨어져 나가고 벗겨진 페인트와 녹슨 구조물들이 한 시절을 기다리며 침묵 속에 몸을 사리고 있다. 우람한 호텔과 부속건물이 덩그러니 쓸쓸한 모습이다. 값비싼 디자인으로 치장된 로비와 객실, 수십억을 받겠다고 지어진 골프장 콘도 별장들은 인적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가 결정되기 전 평창 알펜시아 단지의 풍경이다. 무려 1조원을 들여 지어진 엄청난 복합단지는 정적에 묻혀있었다. 투자비를 건지지 못한 강원개발공사는 파산지경이다. 하루 돌아오는 이자만 수억 원 이라니 계산이 되지 않는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 큰 호텔에 열 팀도 안 되는 방문객이 머무는 주말 밤 시간은 차라리 미안함으로 직원들 보기가 민망한 시간이었다. 두 번이나 유치가 실패로 돌아간 뒤 탈출구를 찾지 못한 대표이사의 한숨이 마주하는 소주잔에 하염없이 떨어진다.

그런 평창에 드디어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됐다니 남아공 더반의 만세소리는 물론 지역주민들의 덩실덩실 춤사위가 오히려 처연하다. 10년을 기다린 고통의 한풀이였을까. 잊고 싶은 악몽 같은 세월을 던져버린 홀가분함이었을까. 가난을 딛고 일어선 개도국에서 올림픽을 유치하고 월드컵에다 이제 겨울스포츠 축제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으니 좀 더 흥분하고 즐겨도 된다고 등을 두들겨주고 싶다. 이제 곧 방치된 경기장 시설물과 올림픽 단지 꾸미기 삽질이 재개될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 간다는 자부심을 한껏 뽐내면서 국제사회의 일류국가 대접을 기대하니 기가 막힌 경사임에는 틀림없다.

애국주의적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경제효과 부풀리기로 나라가 들썩이더니 조금씩 흥분이 가라앉는것 같다. 충분히 이해한다. 더 부풀려서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내고 싶은 심정이니까. 현대경제연구원이 냈다는 자료를 인용해 경제효과가 64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구문이다. 동계 올림픽이 끝나면 평창은 세계적 관광지가 되면서 10년간 32조 2천 억 원의 추가 관광효과가 발생한다는 보고서에 강원 도민들은 흠뻑 취해 있다. 여기에 국가 브랜드 제고효과가 11조 6천억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가세하면 100조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은 물론 강원도가 그냥 돈방석에 앉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불행 끝 행복 시작 일까. 우선 경제효과의 대부분은 세금투자 효과로 봐야 한다. 경기장을 더 짓고 도로를 연결하고 고속철도를 신설하고 호텔을 세우는 일들은 재정투자를 유발하는 직접경제 효과다. 그냥 예산 들여서 다른 지역에 이런 공사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투자가 강원도에 되었을 때 차이나는 효과의 설명이 없고 기회비용이나 재정지출의 타당성 논리가 매우 빈약하다. 국가적 잔치에 있는 대로 곳간을 열어 젖히고 싶지만 인천공항에서 인구 20만에도 못 미치는 춘천까지 동계올림픽 며칠을 위해 9조원짜리 고속철도를 깔겠다는 계획이 타당한가는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현지 주민들은 올림픽 후 32조원의 관광효과에 큰 기대를 거는 눈치인데 이 통계포장도 황당하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환율이 최고로 치솟았던 1999년 68억 달러의 관광수입이 있었다. 3년 후 부산 아시안게임과 월드컵이 동시에 치러진 2002년은 오히려 59억 달러로 줄었다. 국제스포츠행사가 관광수입증대에 사실상 별 기여를 못한 것이다. 전망보고서 대로라면 매년 3조원의 관광수입이 10년 동안 강원도 일대에 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실성이 얼마나 고려된 내용인지 의문시된다. 동아대 모 교수는 64조 경제효과에 대해 "과학적 분석이라기 보다는 신념에 가까운 뻥튀기"라고 혀를 찼다.

김연아의 금메달로 흥분했던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5조원의 심각한 적자였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190억 달러를 쏟아 부은 일본 나가노는 70억 달러의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프랑스 알베르빌, 그리스 아테네도 올림픽 빚 폭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작년 전남 영암에서 열린 포뮬러원 그랑프리는 대회를 반납하든 강행하든 엄청난 적자가 예상되고 2014년 대회를 앞두고 있는 인천 아시안 게임은 이미 다가온 빚더미 속에 송영길 시장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24조원의 경제효과를 전망 했는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 과대포장을 따져보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국제대회 유치했다고 수출이 늘어나고 선진국 된다는 홍보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미국 동북부 작은 시골마을 레이크 플래시드는 1932년과 1980년 두 번의 동계대회 유치로 연간 천 만 명이 찾는 명품 휴양도시가 되었다. 1994년 대회를 연 노르웨이 릴리함메르는 2만 명 밖에 살지 않는 산골도시지만 연간 4천 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인구 5만의 평창이 이렇게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현실에 접근하는 자세다. 아직 우리수준에 황송한 국제대회를 유치했으니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우선 빚이라도 내다가 광을 내고 싶다면 평창은 영락없이 밴쿠버나 나가노의 아류가 될 것이다.

2018년 잔치가 끝나고 다시 찾은 알펜시아가 지금처럼 잡초속에 버려지기를 국민들은 원치 않는다. 루지, 봅슬레이, 스캘톤. 이름도 생소한 경기장을 몽땅 새로 지어서 대회 며칠 치루고 다시 유령단지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고 싶지 않다. 있는 시설 활용하고 알뜰한 투자로 부디 성공한 동계올림픽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섣부른 포장술로 부동산 투기꾼들만 배불리고 빚더미에 내몰리는 올림픽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정도 수준은 이미 넘어섰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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