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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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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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을 딛고 일어서 글로벌 2대 강국 자리까지 치고 올라간 일본은 80년대 후반부터 장기불황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부동산 버블에서 시작된 어려움은 급기야 2008년 GDP 성장률 -3.5%로 최악의 국면으로 들어섰다. 집값폭락에 금융부채에 취업난까지 겹쳐 소비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2011.01.19

 

포퓰리즘의 유혹

 

 

 

패전을 딛고 일어서 글로벌 2대 강국 자리까지 치고 올라간 일본은 80년대 후반부터 장기불황 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부동산 버블에서 시작된 어려움은 급기야 2008 GDP 성장률 -3.5%로 최악의 국면으로 들어섰다. 집값폭락에 금융부채에 취업난까지 겹쳐 소비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보다 못한 자민당 정부는 국내경기를 살리기 위해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기로 하고 1인당 1 2000엔씩을 돌렸다. '200조엔 플랜'으로 명명된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해 홋카이도부터 배급이 시작됐다. 그런데 저축성이 뛰어난 일본인들은 그 돈으로 소비를 하지 않고 다시 은행에 맡겨버려 애초 겨눴던 정책목표는커녕 국고만 축내는 결과로 끝이 났다. 야당은 인기몰이식 정책의 실패라며 자민당에 맹공을 퍼부었다. 금융부실과 부동산 버블 등으로 안 그래도 50년 자민당 독주에 넌더리를 내오던 유권자들은 그런 저런 이유로 최초의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켰다.

 

집권 3년을 잘 넘겨오던 이명박 정권이 새해벽두부터 물가에 휘둘리는 모습이다. 경제를 주제로 압도적인 표를 몰아줬는데 3년 만에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물가가 많이 오른 국가로 전락했으니 할 말이 없게 됐다. 집권 초 '전봇대 뽑기'로 규제개혁을 부르짖고 '747 공약'으로 선진사회를 만들겠다던 거창한 구호는 어느 틈엔가 슬며시 자취를 감췄다. 대신 예상을 뒤엎고 '친서민 모드'로 과감한 정책유턴을 감행했다. 친기업과 부자감세를 논의하다가 패가 안 풀리자 급히 방향전환 한 과거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보수층과 기업가들은 실망했고 서민들은 반신반의의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다.

 

이 마당에 당연히 물가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정위를 동원해 물가잡기 분위기를 유도하는가 싶더니 "기름 값이 이상하다"는 최근 대통령의 발언으로 물가와의 전쟁은 본격화된 느낌이다.  기름 값이 안 내리면 대통령의 권위가 손상될 것이고 즉시 내리면 정유사들의 폭리가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임종룡 재경부 차관은 즉각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반드시 기름 값을 잡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잡힌다면 지금까지 안 잡고 내버려둔 정부가 시비거리에 오를 것이다.

 

리터당 2천원에 육박하는 기름 값은 반 이상이 세금이다. 도입가와 기타경비를 합쳐 산출해보니 폭리를 취한다고 몰매를 맞는 정유사도 억울하다. 국제유가는 내렸지만 그사이 환율변수가 생겨 당장 주유소 가격표에 반영시킬 수 없는 사정이니 정유사만 탓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성급한 대통령의 발언으로 정부와 정유사 모두 진퇴양난이다. 이런 식으로 할거면 앞으로는 대통령이 막걸리 값, 분유 값, 설탕 값도 챙기고 회사원들 월급까지 일일이 점검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슈퍼맨 대통령, 마법사 대통령을 모시는 건 좋은데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자유주의 시장경제냐고 불만들이 대단하다. 만약 통치권자의 발언에 따라 물가가 오락가락하면 우리 정도 국가수준에서 체면 구기는 일이다.

 

지방선거 때부터 무상논쟁이 달아오르더니 급기야 서울시 무상급식을 놓고 이념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똑같은 서울시민이 투표했는데 시장은 한나라, 의회는 민주가 다수다. 각자 선거공약대로 한쪽은 무상급식을, 다른 한쪽은 무상급식 반대를 외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포퓰리즘이라고 삿대질이다. 급기야 오세훈 시장은 정치생명을 걸고 '무상급식 찬반투표'까지 들고 나와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가 내든 부모가 내든 어쨌든 아이들은 탈 없이 급식점심 먹고 공부 잘하고 있는데 어른들의 주도권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복지논쟁은 정치권으로 확전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한국형 복지'를 주장하고 안상수 대표는 '70% 복지',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무상시리즈'를 들고 나왔다. 배고픈 사람들은 복지를 부르짖고 부자들은 공짜점심의 대가를 걱정한다. 유권자를 생각하면 여야모두 복지논쟁을 피해 갈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보자니 돈이 문제다. 복지 논쟁은 확전될수록 공짜혜택을 더 베푸는 쪽으로 결론 낫던 게 역사의 교훈인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 연말 난데없이 종편방송국이 4개나 허가 났다. 뉴스채널까지 치면 5개다. 오랜 기간 전문가와 정부관계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내린 결론이 잘해야 1, 무리하면 2개까지였는데 소위 조중동매 4개 신문에 골고루 하나씩 쥐어졌다. 우리 정도 국가규모에 4개씩 방송국을 한꺼번에 내주는 것이 맞는 일인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당장 자본금을 모아야 하는 신문사는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지분참여를 윽박지르고 있고 다가올 광고수주 전쟁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를 것이다. 문화콘텐츠 수출과 고용증대로 포장된 대량허가 명분보다 시장에서 갚아야 할 후유증이 더 클 것 같아 걱정이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대로 보수신문들이 이 정권 탄생을 도왔고 이다음 선거에서도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시장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들에게 포퓰리즘의 유혹은 금단의 사과다. 대개 세금과 복지카드, 허가권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슈를 선점하려 한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치명적인 화가 닥쳐오는데도 유혹을 참기 힘들다. "여론조사에서 국정 수행 지지도가 50% 이하로 내려가면 대통령 얼굴이 굳어진다. 무슨 조치라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청와대 참모의 얘기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조각상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 왜 망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정권과 정부에 좋은 정책보다는 국민에게 좋은 정책을 내야 하는데, 단기적으로 욕먹더라도 장기적으로 평가 받는 정책을 팔아야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좀 더 차분해져야 한다. 자신의 조각상이 가장 싸서 좋다고 잡상인처럼 물건을 흔들면서 목청만 높일 것이 아니라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깊이 있는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손쉬운 포퓰리즘적 처방을 내리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진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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