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에 걸린 샤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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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모리에 걸린 샤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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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쓰가루(津輕)반도와 시라가미(白神)산지로 휩쓸려 간다. 사과와 눈의 고장 아오모리(靑森)를 온통 삼켜 버릴 듯 천지를 뒤덮은 눈발의 기세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창문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다가 숙소를 나와 폭설 속으로 걸어 나갔다.
2010.12.22

 

아오모리에 걸린 샤갈의 꿈

 

 

끝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쓰가루(津輕)반도와 시라가미(白神)산지로 휩쓸려 간다. 사과와 눈의 고장 아오모리(靑森)를 온통 삼켜 버릴 듯 천지를 뒤덮은 눈발의 기세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창문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다가 숙소를 나와 폭설 속으로 걸어 나갔다. 벌써 발목까지 푹 빠져든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설국(雪國)의 배경답게 도호구(東北)지방의 눈은 한번 내리면 몇날 며칠을 줄기차게 퍼붓는다. 홋카이도와 연결되는 세이칸(靑函) 터널이 뚫리고 최근 신간선(新幹線) 동북철도열차가 개통되기 전까지 이곳은 겨울이면 눈길에 막혀 도쿄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오지였다. 그 두메산골 아오모리가 이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샤갈은 불행했다. 유대인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를 가난과 전쟁의 공포로 지내다 박해를 피해 파리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러시아풍의 본명 마르크 샤갈로프(Marc Chagalloff)에서 샤갈(Chagall)로 이름을 바꾸고 파리예술인 행세를 해보려 했지만 촌뜨기를 탈피하긴 쉽지가 않았다. 고향의 유대인 마을 비테프스크를 떠난 뒤에도 그의 영혼속에는 러시아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샤갈의 대표적인 그림들 속에는 그래서 어김없이 동유럽과 러시아의 유대교 종파인 하시디즘의 영향이 깊게 베어 염소와 수탉, 물고기, 소 등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신비주의가 동화처럼 그려지고 있다. 우울하고 힘들었던 고향의 추억을 캔버스 위에 아름답게 환생시키며 힘든 인생의 강을 건너간 것이다. 1922년 러시아에서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추방되었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 샤갈은 예술의 이름으로 파시즘을 이겨낸 파리의 영웅 대열에 함께 올랐다. 유대인을 넘어 세계인이 된 것이다.


 

샤갈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놓칠세라 꼭 껴안고 날아간다. 평생의 뮤즈였던 첫 번째 아내 벨라, 헌신적이었던 딸 이다(Ida), 늦둥이 아들과 사랑의 배신감을 동시에 안겨준 버지니아, 말년을 지켜준 바바 등 그의 인생을 관통했던 네 여자가 주요한 그림소재다. 첫 아내 벨라가 죽는 1944년까지 샤갈은 오늘날 가치 있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후 미국 망명길에 올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 공공벽화 등 살기위한 그림들을 그렸다. 1985년 98세로 파리에서 죽을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유대인, 러시아, 사랑, 고향 이라는 키워드를 놓친 적이 없었다.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와 함께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예술가 샤갈에게 고향은 환상과 신비로운 감성의 샘이었던 것이다.

  

  

뉴욕에서 샤갈은 러시아 집시 출신의 발레리나 아레코의 공연을 위해 4개의 대형 작품을 그렸다. 가난한 집시지만 사랑을 안고 살았던 아레코를 백마에 비유했다. 아레코가 말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처연하다. 원숭이와 바이올린, 꼭 껴안고 은하수로 날아가는 신혼부부, 별이 보이는 러시아 고향마을 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13년 전, 샤갈의 이 대작 4점 가운데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보관중인 1점을 제외한 3점을 일본의 아오모리 현이 무려 150억 원을 들여 구입했다. 안도 다다오의 나오시마 스토리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보자는 뜻이 통한 것이다. 그로부터 미무라 신고(三村申吾)지사 등 이 지역의 유지들이 모여 아오모리 미술관을 구상하고 건축가 아오키 준의 설계로 4년 전 현재의 세계적인 아오모리 미술관이 탄생하게 된다. 물론 미술관 대형 이벤트 홀 벽에 샤갈의 초대형 작품 3점이 내걸렸고 개관 첫해부터 해마다 50만 명의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오모리 미술관은 이제 샤갈의 그림으로 더 유명하다. 북쪽의 교토로 불리우는 히로사키(弘前)성 축조 400년 기념전과 이곳 쓰가루 반도출신으로 출세작 '사양''오쓰가루'를 통해 일본의 국민소설가 반열에 올라있는 다자이 오사무(大宰 治)의 탄생 110주년 전, 향토 미술가 나라 요시모토의 대형조각 '아오모리의 개' 조각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주인공 '이웃집 토토로' 등 일본에서도 변방이었던 아오모리 예술이 샤갈과 만나 시너지를 내면서 국제적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눈이 쏟아지는 지난 주말 밤, 아오키 준의 걸작 아오모리 미술관은 한일문화포럼과 노영심의 피아노 콘서트를 보러온 양국의 주요 인사들로 북적였다. 한국저축은행 윤현수 회장이 마련한 민간교류 프로그램이 열렬한 박수속에 막을 올렸다. 미무라 지사와 다카야마 히바리 아오모리 미술관장, 한국에서 원로배우 문희, 시인 신경림, 소설가 사석원, 국악인 안숙선 등이 함께 모였다. 라파엘 크리닉 자선활동과 제비꽃 문학상으로 문인들을 지원하는가 하면 사진작가로 경영과 예술을 활발하게 접목시켜나가는 윤현수 회장. 그는 "찰나같이 짧은 인생, 뭔가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보고자 준비한 것이 예술을 통한 한국과 일본의 만남이고 첫 번째 행사로 노영심 콘서트와 아오모리 사과심기를 준비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5층 높이의 천정과 벽이 하나의 사각형 공간으로 배치된 미술관 이벤트 홀에서 노영심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장내는 이내 환상적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녀의 연작 '눈의 송가'가 건반에서 춤추는 동안 샤갈의 명화 속에 갇힌 관객들은 러시아와 꿈, 고향 속으로 잠겨 들었다. 미술관 밖은 며칠째 내리는 눈발이 여전히 대지를 감싸안고 있다. 마디마디 선율은 샤갈의 그림속에서 하시디즘의 동물들을 달리게 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밤하늘로 날아 오르게 한다. '샤갈의 눈내리는 고향마을', 비테프스크와 아오모리를 이어주는가 하면 일본과 러시아, 한국을 이어주는 꿈의 세계로 끝없이 걸어 들어가게 만든다.


 

인구 130만의 시골 아오모리현이 강원도나 충청북도에도 밀리는 지방정부의 한계를 딛고 쌓아올린 미술관의 성공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서울을 떠나면 변변한 갤러리 하나 찾아보기 힘든 우리가 무역액 9천억 달러, 소득 2만 달러, G20 정상회의 유치라는 숫자의 자부심만 가지고 올라가야 할 산봉우리가 아직은 너무 높다. 21세기는 경제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문화가 세상의 경쟁력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넉넉한 체구의 다카야마 히바리 미술관장은 "앞으로 2~3년 내 연간 100만 명 관람객 유치가 목표" 라며 필자에게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국의 유명한 성공학 연구가  나폴레온 힐은 "황금은 땅속보다 인간의 생각속에서 더 많이 채굴 되었다"고 이미 100년 전에 통찰했다. 생각속에서 끌어내는 상상력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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