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제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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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제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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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5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아름다운 워싱턴 호를 끼고 건너다 보이는 도시 밸뷰(Bellevue)는 차라리 한 장의 그림이었다.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이라는 영화로 이 근처의 숨막히는 풍광이 꽤 널리 소개된 바 있지만 그 어떤 경치도 밸뷰에 견줄 수는 없었다던가. 외국인은 물론 미국사람들까지 가장 가보
2010.10.25

 

소프트 웨어 제국을 가다

 

 

시애틀에서 5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아름다운 워싱턴 호를 끼고 건너다 보이는 도시 밸뷰(Bellevue)는 차라리 한 장의 그림이었다.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이라는 영화로 이 근처의 숨막히는 풍광이 꽤 널리 소개된 바 있지만 그 어떤 경치도 밸뷰에 견줄 수는 없었다던가. 외국인은 물론 미국사람들까지 가장 가보고 싶은 낭만의 도시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1869년 서부개척시대에 마을 형태로 시작해 1953년 시로 승격된 밸뷰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경치를 의미한다고 하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밸뷰 외곽을 조금 벗어나자 마자 자연속의 소도시 레드먼드(Redmond)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현존하는 지구촌 최대의 소프트웨어 제국, 마이크로 소프트 본사가 위치한 '레드먼드 MS캠퍼스'다.


 

낮은 건물로 배치돼 있는 본사와 연구동, 숙소, 전시관, 방문객 센터 등을 둘러보는데 자동차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울창한 수풀사이로 잘 정제된 건축 작품들이 하나씩 숨겨져 있는 듯하다. 특별도시를 설계한 것처럼 도로와 신호등이 규격을 갖춰 잘 배치돼 있고 윤기 흐르는 가로수들이 싱그럽다. 정문 왼쪽의 잔디구장이 특히 시선을 모은다. 흠집하나 없는 양잔디 구장은 직원들의 축구열기로 가득하다. 회사가 아니라 아름다운 숲속의 거대한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한다. 1974년 빌 게이츠가 하버드를 중퇴하고 선배이자 동료인 폴 앨런과 함께 뉴멕시코주 앨버커크에서 만든 마이크로 소프트를 79년 워싱턴주 밸뷰로 이전시키고 다시 이곳 레드먼드로 옮긴 게 1986년이니까 벌써 25년이 지난 셈이다. 빌 게이츠 자신이 고향인 시애틀을 그리워 하다가 회사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뒤 곧바로 본사를 끌고 귀향한 것이다.


 

창업주 빌 게이츠가 1500달러로 회사를 만들 당시 이 자금은 하버드 기숙사에서 포커로 딴 돈이라는 전설적인 얘기도 있지만 2008년 기준으로 MS의 매출은 700억 달러, 직원 2만5천명이 레드먼드 본사와 전 세계 107개국에서 일하고 있다. 지구촌 모든 사무실 컴퓨터의 99.9%를 MS윈도우즈로 구축해 완벽한 독점 시스템으로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거대한 소프트웨어 왕국을 건설했으니 빌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비결은 다름 아닌 끓임없는 기술개발, 그것도 혁신적 기술이 줄줄이 이어지도록 파상적 공격을 집중한데서 현재의 열매가 맺힌 것이다. 소름끼치는 투자집중과 인재사냥이 제국의 성공 스토리다.


 

리얼라이징 포텐셜(Realizing Potential), 즉 '인간과 기업의 무한한 잠재력 실현'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회사방침이다. 창의적 인재고용, 일에 대한 흥미와 도전, 성과지향의 환경은 초창기부터 이어져 오는 3대 슬로건으로 MS의 회사분위기를 잘 나타내준다. 캔디디트 제너레이터(Candidate Generater), 말하자면 인재 발굴팀 300여명은 빌이 2008년 은퇴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일반 업무를 하지 않고 전 세계 전시회와 세미나 등을 통해 각국의 인재를 1:1로 접촉한다. 쓸만한 재목을 집요하게 공략해 식구를 만들고 이들이 무한한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생존공식으로 MS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프트업계의 최강자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하드웨어라면 몰라도 소프트웨어 기술로는 아직 세계시장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힘들고 비전 없다는 이유로 명문대의 컴퓨터 공학과 마저 정원미달이다. 삼성전자만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이 3만 명 정도 필요하지만 만 6천명 밖에 고용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난속에 구직난'이라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분야를 등한시 해왔던 국내 풍토 탓이다. 국가차원의 시급한 대응이 절실하다. 후발주자로만 알았던 중국은 '천인계획(千人計劃)'을 세워 향후 10년간 기술 분야 인재양성에 국운을 걸고 있다. 학교 보내고 의료와 주택지원에 보조금까지 파격적인 대우로 각성마다 인재유치전이 한창이다. 지난해에만 10만여 명의 인재가 몰렸다고 하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하드웨어의 강자는 몇 군데 키웠지만 정작 지금 아쉬운 소프트웨어 쪽은 중소기업들이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을 뿐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중화학 공업이다 조선소다 철강공장이다 해서 바쁘게 40여년을 뛰어왔는데 세계는 소프트웨어나 검색 비즈니스로 저만큼 달아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이렇게 빨리 밥줄이 될 줄을 몰랐던 것일까.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봐도 한국경제는 세대교체에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노장들의 분전이 애처롭기는 하지만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글로벌 신흥 유망주들은 하나같이 신세대 기업들이다. 지난해 영국 FT 선정 세계 500대 기업순위를 보면 MS 6위를 필두로 애플과 구글, 아마존 등 신생기업들이 50위권에 대거 포진해 있다.  머지않아 페이스북과 넷플리스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순위를 차고 올 것이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시애틀 인근의 타코마 시는 전통적인 조선소 도시였지만 지금은 옛 자취일 뿐 군사항구로 변모해 쇠퇴해 가고 있다. 반면 시애틀과 밸뷰는 마이크로 소프트와 인텔 같은 첨단 정보기업들이 창출해내는 부를 통해 번영을 이어간다. MS의 주식부자들이 모여 사는 밸뷰는 마커스백화점과 노스롬을 비롯해 명품 상점들이 즐비하다. 소득 2만 달러, G20 회원국 위치까지 숨차게 쫓아 왔는데 지금부터는 우리 미래의 성장동력이 문제다. 방법은 무엇일까. 여태까지 남들 하는 만큼 따라가는 추격형 개발투자로 힘겹게 왔다면 지금부터는 공격형 투자 드라이브로 시장을 선도해야 생존이 가능할 것이다. 파격과 혁신이 필요하다. 무역규모 10위권을 달성했다는 자만과 느슨함이 오히려 독이다. 숫자에만 집착 할게 아니라 한번더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픔이 절실하다.


 

MS를 돌아본 뒤 '스타벅스 신화'가 시작된 시애틀 부두가의 1호점을 방문했다. 커피를 마시며 로컬신문을 보니 톱기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의 CEO 스티브 발머는 " MS가 소프트웨어에 머물지 않고 윈도폰7 스마트폰을 출시하겠다" 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기술을 인정받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대만 HTC, 아수스, 미국 델 등 5개 글로벌 제조사와 손잡고 다양한 형태의 기기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소프트웨어로 만족할 것 같던 MS제국이 드디어 애플과 구글을 상대로 '스마트폰 삼국지'의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 싸움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우리는 그냥 구경꾼으로만 남을 것인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머리가 무거워 진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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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명효 2010-10-30 06:40:15
참으로 시의적절한 내용이다. 우리의 기업들과 정책당국이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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