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 폄훼발언 논란 뭐였길래?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 후손 내세운 근거는?(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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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폄훼발언 논란 뭐였길래?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 후손 내세운 근거는?(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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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발언논란에 "3.1운동 대중의 노력 알리고 싶었을뿐"

   
 

[컨슈머타임스 김종효 기자] 설민석 강사가 논란이 된 민족대표 33인 폄훼발언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일부 단어 선택 등은 사과했지만 자신의 입장은 변함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 중인 한국사 스타강사 설민석은 3월 16일 SNS를 통해 이날 불거진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 폄훼발언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설민석 강사는 "나는 수험강사로서 교과서를 기본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노력해왔다. 다만,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역사라는 학문의 특성상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존재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설민석 강사는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3.1 운동 당일, 역사의 중요한 현장인 탑골공원에서의 만세 현장에 있지 않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점이나 독립선언서 낭독 후 일본 측에 자수해 투옥된 점 등에 대해 다양한 학계의 평가가 있으며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역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설민석 강사는 "학계의 비판적 견해를 수용해 도서 및 강연에 반영헸으며, 그 날, 그 장소, 그 현장에서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날 그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날의 사건만으로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들이 희석되거나 가려져서도 안 되며, 그분들을 추모해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유족 여러분들께 상처가 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하지만 설민석 강사는 "단지 당시에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의 숭고한 죽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뿐"이라고 의도를 설명했다.

설민석 강사는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며 이들에게 사과했다.

앞서 민족대표 33인 후손들은 설민석 강사가 역사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했다고 항의했다. 이들에 따르면 설민석 강사는 역사 강의에서 3.1운동 당시를 설명하면서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대낮에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 태화관에 가서 낮술을 막 먹었다, ▲태화관 마담 주옥경과 손병희가 사귀었고 나중에 결혼한다. 그 마담이 D/C 해준다고, 안주 하나 더 준다고 오라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등 발언을 했다.

민족대표 33인 후손들은 '룸살롱', '마담' 등 단어 선택과 당시 발언 뉘앙스, 취지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설민석 강사가 민족대표 33인의 업적 및 손병희의 셋째 부인 주옥경 역시 폄훼했다고 주장,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당초 설민석 강사 측은 해당 사료가 있다며 즉답을 피했고 결국 설민석 강사는 SNS에 글을 올려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고히 했다.

(다음은 설민석 강사가 SNS에 게재한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 폄훼논란에 관한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설민석입니다.

오늘 보도된 사건과 관련하여 저의 입장을 밝히고자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수험강사로서 교과서를 기본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다만,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역사라는 학문의 특성상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저와 생각이 다른 여러 분들의 따끔한 조언과 걱정 어린 시선이 있음도 잘 알고 있고,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수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늘 불거진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민족대표 33인이 3.1 운동 당일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자발적으로 일본 경무 총감부에게 연락하여 투옥된 점과, 탑골공원에서의 만세 운동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세 운동을 이끈 것은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계의 평가가 있으며 민족대표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역시 존재합니다.

저는 학계의 비판적 견해를 수용하여 도서 및 강연에 반영하였으며, 그 날, 그 장소, 그 현장에서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날 그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또한 그 날의 사건만으로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들이 희석되거나 가려져서도 안 되며, 그분들을 추모하여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유족 여러분들께 상처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당시에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들의 숭고한 죽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습니다. 저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신중한 자세로 역사 대중화에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설민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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