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과장진급시험' 불만기류 늘어가는 속사정
상태바
롯데 '과장진급시험' 불만기류 늘어가는 속사정
  • 김재훈 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10월 21일 07시 35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에서] 현실업무 '거리감' 합격률 50%…'만년대리' 자처 곳곳
   
▲ 롯데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이 과장 진급시험 대상자들을 위해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롯데그룹 사보 캡쳐)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 롯데그룹 자체 연중 최대행사. CEO들을 포함한 각 계열사 임직원 상당수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 국가대항 운동경기를 방불케 할 만큼 열띤 응원전이 펼쳐지는 '단합대회'의 장.

겉으로만 보면 대규모 운동회가 치러지는 것 같기도 한데요. 과장 직함을 달기 위한 대리급 롯데맨들의 '과거' 진급시험 현장입니다.

1983년을 전후로 무려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전통으로 굳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삼성, 현대·기아차, SK, LG 등 10대 그룹 중에서는 롯데가 유일하게 해당 시험을 일괄적으로 치르고 있습니다.

올해 역시 지난 9일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신동빈 회장을 비롯 그룹 핵심 관계자들을 겨냥한 검찰조사 시점과 맞물리면서 예년에 비해 '조용히' 넘어갔을 뿐입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무래도 분위기상 맞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격은 분명합니다. 중간관리자로 넘어가는 직원들의 기본소양과 실무능력을 평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자체학습을 통해 채우라는 무언의 압박도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이론 쪽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계열사별로 영어·일본어 등 외국어 성적을 요구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롯데 평사원급 직원들 사이에 묘한 불만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전략경영, 조직관리, 회계, 롯데 핵심가치 등 4개 시험과목이 현실 업무와 동떨어져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객관적 업무성과를 평가 받아 진급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들의 뾰로통한 표정도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험 난이도는 상당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평균 60점이 합격선인데요. 합격률은 평균 50%선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험 직전 장기간 휴가를 내고 공부에 매진하는 대리급 직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외근이 많은 직군은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엉덩이가 무거운' 일을 주로 맡고 있는 '사무실형' 직원들이야 틈틈이 시간을 쪼개는 게 어렵지 않은데요. 반대로 현장을 발로 직접 뛰는 '필드형' 인재들의 경우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각 계열사별로 외근이 많거나 하는 등 특수 직군에 속한 직원들의 경우 시험문제와 평가기준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롯데그룹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합격이 돼도 고민하는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입사 동기들 중 절반 정도만 과장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친분)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릅니다. 어떤 계열사는 재수생, 삼수생들도 흔하다고 합니다. 실무 역량은 충분히 검증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기가 발목을 잡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만년대리'로 근무하겠다는 선후배들도 최근 부쩍 늘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워 보입니다. 만약 운전면허증이 없어 경기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세계 최고의 카레이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오직 운전실력만으로 무대에 세우는 다른 팀들도 상당한데 말이죠. 롯데의 좋은 인재들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룹에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열사별로 시험과목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등 나름의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유지되고 있는 조직문화와 전통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갑자기 (시험제도 자체를) 확 바꿀 계획은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역시 롯데그룹 관계자의 말입니다.

통상 그룹사들 사이에서는 '영어+다면평가' 방식이 진급 절차로 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현재 시점에서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가 골자입니다. '스페셜리스트'로의 성장 가능성과 이를 뛰어넘는 '멀티플레이어'로의 도약 확률을 타진합니다.

결과는 곧 금전적 보상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에 만년대리를 선택한 롯데맨들의 입장을 대입하면 흥미롭습니다.

"생활수준이 어떻게 바뀔 정도로 직함수당이 크지 않습니다. 대리로 꾸준히 일하면서 연차와 성과에 따라 받는 보상과 비교해 미미한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런데 진급을 하면 그만큼 책임감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집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죠. 그럴 바에야 일 잘하는 대리로 오래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후배 동료들이 주변 곳곳에 생기고 있어서 외롭지도 않습니다."

태생적으로 나쁜, 그리고 불편한 전통이란 없습니다. 그 가치와 의미 또한 오랜 시간 변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세월의 변화상에 따라,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심지가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이라면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그룹 전체가 큰 요동을 치고 있는 이때. 진정한 체질개선의 단초가 과장진급시험에 묻혀있는 것은 아닌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