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근혜 정부 경제 비화]⑤ '모피아' 강만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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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부 경제 비화]⑤ '모피아' 강만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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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없이 돈 써보고, 韓銀·정치권과 걸핏하면 충돌
   
▲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설명하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컨슈머타임스 윤광원 기자] 2009년 2월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물러나던 날, 강만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정말 돈은 원 없이 써봤다"

강만수의 재정자금 사용 내역 중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이 '유가환급금'이었다.

기세좋게 나가던 2008년 상반기, MB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 두 가지는 '유가급등에 따른 물가불안'과 '광우병사태'였다.

유가환급금은 유가상승에 따른 서민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기 납부한 소득세의 일부를 돌려준 것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초의 세금 환급이었다. 광우병 사태로 고조된 정부에 대한 반감을 잠재우려는 '포퓰리즘' 성격도 있었다.

◆유가환급금, 국민들에게 '현금 뿌리기'

그 해 6월 정부가 내놓은 '고유가 극복 민생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발표된 유가환급금의 내용은 이렇다.

연간 총급여 3600만원 이하의 근로자와 종합소득액 2400만원 이하의 자영업자에게 유가상승에 따른 연간 유류비 증가분의 절반인 6~24만원을 돌려준다는 것.

근로자는 총급여 3000만원 이하이면 24만원, 3000~3200만원이면 18만원, 3200~3400만원이면 12만원, 3400만원 이상이면 6만원씩이다. 자영업자는 종합소득이 2000만원 이하이면 24만원, 2000~2130만원이면 18만원, 2130~2260만원이면 12만원, 2260~2400만원이면 6만원씩이다.

민생종합대책에 투입되는 세계잉여금 10조5000억원 중 3조1400억원이 여기에 투입됐다.

또 경유를 쓰는 버스와 화물차, 선박 등에 기존 유류보조금에 더해 유가상승분의 절반을 지원, 모두 2조7000억원을 퍼줬다. 면세유를 쓰는 농·어민들에게도 유가상승분의 절반을 지급하고 면세유 공급도 확대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중증 장애인 등 취약계층 89만 가구에 대해서도 월 2만원씩을 국고에서 보조해줬다.

사실상 고소득층을 제외한 대부분 국민들에게 1인당 최대 24만원의 현금을 살포 셈이었다. 난 데 없이 '공돈' 24만원을 받아든 월급쟁이들은 '이게 웬 횡재냐'고 기뻐하면서도 '이래도 되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초 정부는 유가 대책으로 유류세 인하, 서민층에 에너지 바우처 지급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결론은 '현금 뿌리기'였다.

이에 대해 강만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유류세 인하 등 획일적인 지원보다는 고유가를 감내하기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선별적·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유가 투기세력을 지원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저소득층 등 특정 계층에 대해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저소득층에 선별적 지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핏대' 강만수, 여야 모두와 좌충우돌

강만수의 스타일은 강경 드라이브 일변도여서 국회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자주 충돌을 벌였다.

2008년 10월 6일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장. 강만수는 정책 실패를 질타하는 여야 의원 모두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은 "환율정책 실패로 물가 폭등과 수백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낭비한 강만수 장관은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면서 "환율·유가·금융위기로 총체적 경제난국을 맞고 있다. 강만수 경질 후 '비상 내각'을 꾸려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김종률 의원도 "정부의 신뢰 상실과 리더십 실종이 경제위기를 증폭시키는 근본 요인"이라며 "무모한 성장지상주의인 'MB노믹스'도 전면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무소속 강운태 의원은 "다음 '아고라'에 '강만수 책임론'이 비등하고 있다"면서 "아고라에 들어가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참고 있던 강만수가 마침내 폭발했다. "안 들어갔다. 앞으로도 안 들어갈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임론에 대해 "아직 책임질만한 그런 시간들이 없었다. 정책의 효과도 그런 상태"라고 반박하고 "우리는 급하다고 추경과 법안을 내놨는데 정치권에서는 3달동안 싸움만 하다가 국회도 못 열지 않았나. 그러다보니 일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만 끌어왔다"며 정채권 책임론도 제기했다.

이번에는 여당인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나섰다.

"현 경제팀은 경상수지 균형에 집착하면서 고환율 정책을 추진해 불과 18일만에 84.4원의 환율을 급등시켰다. 결국 고유가와 겹쳐지면서 물가 폭등, 외환시장 혼란 등을 초래했다"

이에 강만수는 "내가 무슨 고환율 정책을 썼느냐"고 인상을 쓰면서 언성을 높였다.

어이없어 하던 김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 서병수 기획재정위원장에게 강 장관에 대한 질책을 요청했고, 서 위원장은 "장관이 고환율 정책을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그게 중요한 것"이라며 "의원들이 질의하는 것은 개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을 전달하는 자리인데, 국민에게는 겸손하게 답변해달라"고 질책했다.

김 의원은 또 "환율정책이 초기에는 경상수지를 위해, 나중에는 물가를 위해 쓰였다"며 "그 과정에서 수백억 달러의 소중한 달러가 없어졌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강만수는 "경상수지가 이 정부 들어서자마자 10년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그 이후 원유가격이 100달러가 넘어서고 두바이유 가격이 140달러까지 올라갔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탄력적으로 대응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외환보유고는 이럴 때 쓰도록 돼 있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여야 정치권이 강만수에 비판적이었던 것은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고 국내에서도 주가는 폭락, 환율은 폭등을 계속했다.

◆금융위기 불구, 한은과도 힘겨루기

이런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강만수는 정책파트너인 한국은행과 자주 충돌했다. 한은은 MB정부 초부터 고환율 정책을 펴는 강만수와 갈등을 빚었다.

"3월 24일 이성태 (당시 한은) 총재가 대통령과의 첫 대면에서 적정 환율이 950원에서 1000원 사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내가 생각하는 환율 1250원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 총재는 다음 날 아침 한국외국어대학 동창포럼에 나가 적정 환율이 970~980원이라고 발언해 하루에 29.9원을 떨어뜨려 970원대로 후퇴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루디거 돈부시 MIT 교수가 말한 대로 한국은행은 다시 외환시장의 '절대 군주 차르'가 됐다"

지난해 2월 발간한 그의 두 번째 자서전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 실록>의 일부다.

금융위기가 또 터지자 강만수는 끊임 없이 한은에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10월 26일 MB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금리인하를 논의하고 다음 날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강만수의 회고는 계속된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 그 날 오후 이 총재에게 전화를 해서 '다른 나라가 다 내릴 때 올렸고 금리격차도 너무 심하니 1% 내리면 좋겠다'고 권고했더니, 그는 '관례대로 0.25%를 내리겠다'고 했다. '지금 상황이 위중하니 1%를 꼭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한다'면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에 (정부는) 거부권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강하게 1%를 요구했더니 '0.5%까지는 생각해보겠지만, 더 이상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언쟁할 수도 없어 '내 판단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요'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결국 다음 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대폭인 연 0.75%포인트나 인하, 2006년 수준인 연 4.25%가 됐다.

"10월 30일 미국은 금리를 1%로 내리고 일본, 영국, EU, 중국도 이어서 금리를 내렸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연말에 3%까지 허겁지겁 내렸으니 중앙은행의 '독립'보다 '고립'이었고, 9월 15일 터진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대응을 위한 선제적, 결정적, 충분한 조치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런 강만수의 회고록 내용은 한은의 금리인하가 자신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뉘앙스다. 이에 대해 이성태 전 총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발끈했다.

"강 장관이 금리인하를 요구할 위치에 있었나? 자기가 뭔데 금리인하를 요구하나. 금리를 인하하면 좋다는 주장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부도 할 수 있고 기업쪽에서도 할 수 있고. 그렇다고 자기가 요구해서 내렸다, 그런 말이 성립하나? 금리인하를 '주장'했다고 하면 말이 될지 모르지만…

(강 장관이 금리인하를) 요구한 적 없다. 자기 권한에 속하지 않는 일을 무슨 근거로 요구하나?

개인적으로 주장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한국은행에 요구한다'고 생각할 것 같나? '아 저 사람은 저런 주장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은 할 수 있다. 요구하려면 그럴 만한 권한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거시경제정책의 양대 수장이 이렇게 손발이 안 맞았으니, 금융위기 대응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성격은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사람이… 

사실 강만수의 개인 성격은 절대 공격적이지 않다.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소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모두 놀란다. 악수를 할 때 상대의 손을 반만 잡기 때문. 소심하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줍어하며 낯을 가린다고 할까. 통이 크고 배포가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강만수의 마음을 취임 초기, 그때까지 안면이 거의 없었던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이 단번에 사로잡은 일화 한 토막이다.

비결은 이창용의 '주량'이다. 장신인 그는 술도 '장사'다. 폭탄주 1잔을 입안에 털어넣는데 1초도 안 걸린다.

"그런 나를 보고 '대학교수라 '샌님'인 줄 알았더니, 당신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라고 이창용은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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