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루이비통의 문제" 롯데百 '선 긋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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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루이비통의 문제" 롯데百 '선 긋기' 아쉽다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01월 08일 0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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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하루 10시간 가량 기자실에서 노트북과 씨름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잊을 때가 있다. 모든 일을 그저 습관처럼 처리하면서 말이다.

억울함과 분함을 호소하는 소비자 제보는 그래서 이 업(業)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이런 사건에 직면할 때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새삼 피부로 느끼게 되는 탓이다.

법과 제도는 멀리 있다. 설령 도움을 구할 수 있다 해도 시간과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때문에 언론은 소비자 호소에 더 귀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들어주는 것, 유사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공론화 하는 것,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롯데 에비뉴엘 루이비통에서 3년 전 구입한 제품이 뒤늦게 짝퉁 판정을 받았다는 이번 제보도 그렇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짝퉁관' 전락 위기 참조) 

기사화에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중간에서 진품을 가품으로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게 사건을 접한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평가여서 당혹스러웠다.

다른 곳도 아닌 국내 대표적 명품관인 롯데 에비뉴엘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겠냐는, 대기업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놀라울 정도로 견고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기업을 겨냥한 글을 올렸다는 자체만으로 소비자는 일단 의심의 눈초리부터 받고 있었다.

힘 없는 이들에게 일종의 '신문고' 역할을 해온 SNS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악용한 일부 블랙컨슈머들이 빚은 '불신'이 같은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팽배했다.

게다가 롯데는 유통회사인 만큼 1차적인 책임을 지는 곳은 아니다. 롯데백화점이 "루이비통과 소비자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들의 '모르쇠' 응대는 지적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문제에서 유통사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매장을 내어준 것에 불과하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왜 우리에게 책임을 묻냐"고 한다면 아래와 같은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유명 백화점 입점이 결정되면 이를 보도자료로 제작·배포해 입점 사실 자체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백화점은 아무 브랜드나 들여놓지 않을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입점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일종의 '검증'을 통과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데 대한 판매자와 소비자 간 암묵적 동의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백화점의 명성에 돈을 지불한다.

아울렛, 온라인 쇼핑몰, 마트 등등 다양한 유통채널 중에 굳이 백화점에서 지갑을 여는 것은 그곳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수준과 질을 믿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챙겨가는 수수료로 인한 가격 거품을 감안하고서라도 그 신뢰도에 기꺼이 투자하는 셈이다. 지금 '유통공룡'이라 불리는 대기업들은 결국 그런 소비자 믿음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웠다.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기대치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유통사'라는 이유로 루이비통 뒤로 숨는 롯데의 처신에 소비자가 배신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루이비통을 구입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 중 굳이 롯데 에비뉴엘을 찾은 이유와 제품 구입 비용에 결국 브랜드가 백화점에 지불하는 수수료까지 포함돼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말이다.

지난해 '가짜 백수오' 사건 당시 제조사인 네츄럴엔도텍보다 유통사인 홈쇼핑들이 전면에서 비난의 '뭇매'를 맞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부분 대기업 문패를 달고 있는 홈쇼핑사들은 가짜 백수오 사건에 대한 법적 해석이 나오기 전 이미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환불 비용을 토해냈다.

롯데백화점은 기자의 1차 취재 당시 "사실 관계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파악 중"이라는 기업의 뻔한 언론 응대 매뉴얼에는 사실 '행동'은 없다. 기업과 소비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액션'을 취하는 건 소비자다.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전문가를 섭외하고 언론에 제보하며 도움을 줄 만한 기관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도 다르지 않다. 그는 경찰서에 까지 다녀왔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갑'이 '을'을 위해 먼저 행동하는 상황은 사실상 흔치 않다.

"자칫 중간에서 먼저 보상 얘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루이비통의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아니냐"며 "소비자와 루이비통 어느 쪽의 편도 들 수 없는 고충을 이해해달라"는 롯데백화점의 입장도 여기 싣는다.

평가는 글을 읽는 소비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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