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홈쇼핑 "너 같으면…" 김 대리 울린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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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홈쇼핑 "너 같으면…" 김 대리 울린 '갑질'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06월 29일 0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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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이거 구성이 왜 이래? 이래가지고 며칠 전 A사 방송 매출 넘기겠어?"

또 팀장의 핀잔이다. 판매를 준비중인 B브랜드 화장품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다.

"하나라도 더 끼워줘야 호스트들이 '업계 최초' '역대 최다' 멘트를 쓸 거 아냐 뭐가 이렇게 빈약해, 이러면 일반 매장이랑 뭐가 달라? 너 같으면 사겠냐? 엉?"

팀장의 세모 눈이 김 대리의 자존심을 쿡쿡 찌른다.

◆ "40만원 화장품 세트 2개가 사은품" 소비자 현혹

모르는 바는 아니다. 경쟁사보다 단 1개라도 수량이 많아야 내세울 것이 생긴다. 푸짐한 구성은 짧은 시간 소비자 눈을 끌기에 용이하다.

"처음으로 이렇게 많이 드리는 거에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에요, 상담 전화 어렵습니다, 아 오늘 매진될 것 같네요." 쇼핑호스트들이 속사포처럼 호들갑 떨며 혼을 쏙 빼놔야 한다.

하지만…

김 대리는 며칠 전 업체와의 실랑이를 떠올리고 이내 고개를 휘휘 젓는다. 홈쇼핑이 '갑'이라지만 물량을 도매금으로 넘기지 않아도 충분히 형편 넉넉한 대기업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에센스나 크림 1~2개만 더 줘요. 이대로 방송 나가기엔 수량 진짜 부족해요. 이거 며칠 전 A사도 방송 나갔는데 차별화 지점이 없잖아요 우리가."

"이러시면 안되죠. 저희가 무슨, 인지도 없는 영세기업도 아니고 그렇게 후려치기 하시면 안됩니다. 저희도 본사에서 허가가 안 나요. 제품 하나당 가격이 수십만원을 오가는데 이걸 어떻게 더 드려요?"

싸한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만지작거리던 화장품 세트를 못내 아쉬워하며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김 대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팀장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뗀다.

"그게, 아시다시피 이 브랜드 중소기업도 아니고, 업계 1위 대기업인데 닦달한다고 뭐 더 나오는 게 없습니다. 일단 이 구성에서 성능을 적극 강조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짜증 폭탄이 날아든다.

"그럼 샘플이라도 구걸해와!"

그렇게 시작된 모의였다. 결국 가격도 책정되지 않은, 손가락 길이만큼의 작은 샘플 두 세트를 더 끼워 방송하기로 어렵게 합의를 마쳤다.

"이거 2개 80만원, 그러니까 40만원 상당 사은품 2세트 준다고 멘트 집어넣고 샘플이라는 표현은 0.1초 정도? 잠시 스쳐가듯 말하자. 카메라는 바짝 당기고. 그래야 크기가 정품처럼 커 보이지."

"팀장님, 요즘 소비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러다 금세 들통나지 않을까요? 공정위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죠?"

김 대리의 소심한 걱정에 팀장은 콧방귀를 꼈다.

"이거 오늘 매진이면 한방에 수억원이야. 공정위? 과징금은 몇백만원이면 퉁 쳐. 넌 왜 계산이 어둡냐."

당당하다. 소비자들 눈속임 정도야 가뿐하다. 처벌도 겁내지 않는다. 수억원 매출에 몇백만원 벌금은 '수수료' 쯤으로 여기고 만다. 안 걸리면 '땡큐'고 걸리면 까짓 수수료 내면 그만이다.

"이게 백화점에서 40만원 돈입니다. 3종 세트를 2개 보내드릴 테니까 용량 확인하시고요."

카메라에 불이 켜지자 쇼핑호스트들의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린다. 1시간에 4800세트, 6억5000만원어치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주문전화는 초단위로 올라가 눈으로 숫자를 따라 잡기도 힘들다. 그제서야 팀장의 얼굴에 흐뭇함이 감돈다.

'그래, 잊자 잊자. 이걸로 소고기 회식이나 실컷 하면 좋겠네.'

김 대리는 그렇게 눈을 질끈 감았다.

◆ 정품 대비 용량 10% 불과한 샘플 증정…과태료 800만원

롯데홈쇼핑이 화장품 샘플을 정품인 것처럼 속여 광고, 판매했다 덜미를 잡혔다. 13만5000원 상당의 화장품을 판매하면서 40만원치 세럼·크림·아이크림 3종 정품을 2세트 추가로 준다고 홍보했다.

실제 소비자가 받은 사은품 3종은 정품 대비 용량이 12~16%에 불과한 견본품이었다. 방송에서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제품이 크게 보이도록 이미지를 확대, 왜곡해 방송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 측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태료 800만원을 부과했다. 지난해 각종 비리 '복마전'으로 낙인 찍힌 뒤 쇄신 약속을 거듭하며 어렵게 조건부 재승인을 받아낸 게 불과 2개월 전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정명령에도 불구하고 위반행위가 반복되는 경우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처분이 부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고'의 효과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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