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창 국순당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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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창 국순당 연구소장
  • 최미혜 기자 choimh@cstimes.com
  • 기사출고 2013년 04월 29일 0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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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속에 잠자고 있던 전통주에 새 생명…"우리 술 알리는데 앞장"
   
 

[컨슈머타임스 최미혜 기자] 뽀얀 막걸리 한잔에 노릇노릇하게 지진 파전이 생각나는 비 오는 날.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 연구에 한창인 국순당 연구소를 찾았다. 내부로 들어서기도 전에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퀴퀴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연이어 콧속으로 들어온다.

이화주, 동정춘 등 고서에 두세 문장으로만 존재하던 사라진 전통주 22가지가 이 곳에서 새로 태어났다. 술 맛을 돋우는 술잔, 함께 먹으면 어울리는 안주 연구도 이 곳에서 이뤄진다. 365일 쉬지 않고 일하는 효모 '덕분에' 신우창 국순당 연구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주말에도 발효 중인 술을 살피러 나온다.

고서 속에 잠자고 있던 술에 영혼을 불어넣고 있는 신우창 연구소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술에 취하듯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든다.

◆ "프랑스 '샤또디켐' 부럽지 않은 한국 '동정춘'"

Q. 전통주를 복원하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고문 해석 작업부터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요.

== 얼핏 보면 비과학적인 것 같지만 책에 기록된 술 만드는 방법은 굉장히 과학적입니다. 어디서 물을 떠 술을 빚으라던지, 어떤 술은 겨울에만 담그라던지 당장은 '왜 그럴까' 생각이 드는데 알고 보면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기록된 것은 두세 문장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죠. 아는 만큼 보입니다. 처음 술을 복원하면 기록대로 재현해내는 수준이지만 경험이 쌓이고 공부를 할수록 문맥에서 여러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부인을 유혹할 때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만든 술인지, 맛은 어떤지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술이었을지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만주 동모산 근처고 시대적으로 2000년 전이죠. 당시 이곳에서 자라는 원료는 많지 않습니다. 조, 피, 수수 같은 잡곡류 입니다. 여인이 맛있게 먹으려면 당도도 적당히 필요하죠. 종합하면 알코올은 13도 정도, 당도는 3~4%의 술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Q. 고문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대상이나 당시 식문화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겠군요.

== 맞습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상상을 먼저 해봅니다. 식문화는 어땠을까, 누가 먹었을까 연구원들끼리 함께 고민하고 실제 공부도 합니다. 물론 상상으로 만든 술과 실제 재현됐을 때 술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연구자의 상상이 잘못된 것인지 술이 잘못 복원된 것인지 다시 고민합니다. 연구와 실패를 거듭하다 복원주를 완성했을 때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역사적 지식이나 통찰력이 없으면 복원하는 기계에 불과하죠. 술을 담근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연구를 통한 철학과 가치가 술에 녹아 들었는지 느껴집니다. 술에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술을 기호식품 정도로 여길 수도 있지만 의미가 담겼을 때 가치는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Q. 복원하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거나 기억에 남는 전통주가 있다면요.

== 2008년에 프랑스 보르도 지방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샤또디켐'이라는 농축 와인이 있습니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나는 포도로 한 잔 정도만 만들 수 있는 와인입니다. 향이 진한 와인이죠. 문득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술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슬펐습니다. 그런데 '동정춘'을 복원했습니다. 물이 들어가지 않는 독특한 술이죠. 보통 논 한 평에서 나는 쌀로 막걸리는 13~15병 만들 수 있는데 '동정춘'은 1병 밖에 못 만듭니다. 향미가 매우 뛰어난 술입니다. 복원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한동안 방치하다시피 하기도 했는데 성공했을 땐 정말 기뻤습니다.

'청감주'라는 전통주도 있습니다. 술을 빚을 때 물 대신 고급 청주를 사용합니다. 물이 있어야 발효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데 술이 들어가니까 효모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견디기 위해 효모는 스스로 저항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미생물 입장에서는 괴롭겠지만 이때 나오는 물질 때문에 술의 감미와 향기가 좋아집니다. 물 대신 복분자주를 부으면 '복분청감주'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하게 응용 가능한 술입니다.

Q. 최근 출시된 막걸리 '대박'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막걸리로 보면 됩니다. 기존 '아이싱'은 독특한 맛으로 마니아 층을 확보했지만 대중화 되지는 못했습니다. '대박'은 품질경쟁력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춰 '시장 1위'를 목표로 국순당이 출시한 제품입니다. 막걸리 전용효모로 최적의 맛도 찾았습니다. '대박'을 위해 효모를 바꿨습니다. 쌀 고유의 향이 나는 효모로 만들어 다른 제품과는 향이 다릅니다.

전통주를 살리고 소비자들에게 좋은 점을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2위 업체가 시장 분위기를 리드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도 전통주를 연구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시장 1위가 되면 막걸리를 위한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1위가 가진 장점은 시장을 리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막걸리는 배불러서 못 먹겠다', '막걸리를 먹고 나면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 등 막걸리에 대한 편견도 있는데요.

== 막걸리를 마실 때 포만감을 느끼는 이유는 식이섬유 때문입니다. 막걸리를 흔들기 전에 밑에 하얗게 가라앉는 물질이 있는데 이 때문에 배가 부른 것이죠. 식이섬유는 몸에 흡수돼 에너지원이 되는 게 아니라 배변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배가 부르기 때문에 막걸리를 마시면 살이 찐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포만감 때문에 과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술이든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플 수 밖에 없죠. 머리가 아픈 건 숙취현상 때문인데 아세트알데히드가 원인입니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알코올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만들어지고 분해 될때도 생깁니다. 간혹 술을 마시는 도중에 머리가 아픈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막걸리가 유통중에도 발효가 됩니다. 아세트알데히드가 술 속에 있다는 얘기죠. 국순당 막걸리는 발효가 완료된 상태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술 안에는 아세트알데히드가 없습니다. 대신 술 마신 다음날은 몸속에서 술이 분해될 때 만들어지는 아세트알데히드 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 있죠. '막걸리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 이게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가 맞습니다.

◆ "막걸리 세계화, 식문화와 연계해 접근"

Q. 국순당 연구소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근무 시간에도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있을 텐데요.

== 맛을 볼 때는 실제 술을 마십니다. 벌컥벌컥 마시는 것은 아니고 삼킬 때 느낌을 보기 위해 소량을 맛봅니다. 최근에는 신제품 막걸리 '대박'을 테스트했는데 오후 2시부터 3~4시간 가량 하다 보니 퇴근할 때는 운전을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술을 연구하는 업무의 특성 때문이죠. 과음한 다음날 테스팅 일정이 잡혀 있으면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술을 체질적으로 못 마신다면 맛을 테스트하거나 할 때 지장이 있으니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주면접'을 통과한 사람만 연구소에 채용합니다.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를 보지는 않습니다. 주량을 먼저 물어봅니다. 소주 2병을 마실 수 있다고 했는데 반병만 마시고도 자제력을 잃는다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 경우 감점요인이 됩니다.

   
 

Q. 한동안 막걸리 붐이 일다 최근에는 시들해진 모양입니다.

== 유행을 타는 것으로 봅니다. 정부에서 전통주 관련 지원을 확대하고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지다 보니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주위에서 먹으니 한번쯤은 다들 먹게 됩니다. 그러다 충성고객으로 남기도 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막걸리 시장이 죽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 부분 거품이 빠진 것으로 봅니다. 다져지는 과정이죠.

과거에 비해 전통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이 늘어났고 제도적으로 보완된 부분도 많습니다. 다만 전통주 연구자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전통주 산업 육성이나 수출 면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Q. 막걸리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 현재 국순당 막걸리가 40여개국으로 수출됩니다. 전 세계인의 입맛을 단기간 내에 잡기는 힘듭니다. 우선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쌀 문화권은 비교적 공략하기 수월합니다. 동남아에는 막걸리와 유사한 술도 많이 있습니다. 술 자체 만으로 접근하기 보다 식문화랑 연계해 문화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게 해야 합니다. 한류 열풍에 따라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막걸리나 우리 전통주를 한식과 함께 소개하는 것이죠. 식문화를 통한 접근으로 익숙해진 다음 술을 즐기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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