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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이우환, 점과 선으로 만나는 우주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09월 27일 오후 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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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 같은 장대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었다. 헝겊부적이 걸리면 금방이라도 징소리가 들릴 듯하다. 히말라야 중턱 초르텐(티벳 라마불교 사원)에서 봤던 롱다(오색천을 줄에 매달아 내건)가 떠오른다. 신이 올라탄 춤사위, 절정의 주문이 쏟아질듯 한 성황당 굿판이 가까이 느껴진다. 잊고 지낸 내면의 토테미즘이 정화수 떠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모정처럼 타오른다.

이우환(1936- 화가, 조각가)의 솟대와 바위, 철판은 철기와 신석기시대의 즐문토기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전설과 신화의 모티브에 피폐된 산업사회와 원시의 자연사회를 기묘하게 대조시켰다. 삭막한 도시와 모진 과정을 걸어 나온 문명의 뒤안길이 역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일본의 명소 나오시마 베네세하우스 아래쪽 계곡에 자리한 ‘이우환 미술관’ 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만평이 넘는 대지와 인접한 바다, 그 수평선과 가지런히 지어진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벽사이 전시장은 하늘과 우주로 가는 길처럼 속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주는 것 같았다. 자연석과 철판은 건축, 사람, 예술의 삼각 공존을 꿈꾼다. 50미터의 수평 벽이 수직의 대조로 꺾여 들여가는 접점을 돌아 나왔다. 거기에 하나의 탑으로 18.5미터 육각 콘크리트가 버티고 있었다. 공간의 여백은 대륙적 감성을 혼합해내고 있었다.

▲나오시마 이우환미술관 광장의 조각품
▲나오시마 이우환미술관 광장의 조각품

이우환은 경남 함안사람이다. 1956년 서울미대를 중퇴하고 니혼대(日本大) 철학과로 갈아탔다. 말하자면 철학박사 미술가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들은 사유가 깊다. 전후 일본을 휩쓴 모노파(物派)의 선구자로 떠올라 이미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라있다. 화두는 자연과 인간이다. 두 대상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조각과 회화에서 집요하게 탐구했다. 돌멩이와 철판으로만 제작되는 조각품은 심플하다 못해 단순 그 자체다. 하지만 그것이 메시지다. 돌멩이는 지구보다 먼저 태어난 것들도 있다. 터무니없는 시간의 덩어리다.

도쿄 근처 가마쿠라 이우환의 화실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관은 벽으로, 선으로 이어져 들어갔다. 마치 태초의 동굴 같다. 나는 그곳에서 우주와 교신하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안쪽을 견고하게 벽으로 쌓고 바깥쪽의 빛을 끌어들이는 기법은 새롭다. 네모난 큰 광장을 걷다가 안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서 걷는 공간체험과 시각적 경험을 동시에 진행시킨다. 어둑한 실내의 미로를 지나 다시 나오자 산과 바다가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우환의 ‘선으로’ 회화와 돌, 철판 작품 전시
▲이우환의 ‘선으로’ 회화와 돌, 철판 작품 전시

정신문화의 근원적 고민은 비어있음이다. 이우환이 추구하는 세계다. 텅 빈 공간과 대지의 암석을 도려내 얻어진 틈새에 수많은 시선이 머물고 있었다. 땅속으로 숨어버린 미술관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내면의 격렬함이 포개어져 색다른 수채화로 떠오른다. 구겐하임과 베르사이유 전시는 세계가 그를 주목하게 만든 계기였다. ‘관계항-신호’는 빛과 그림자의 대치점이 주는 긴장감이 백미다. 건축과 조각의 만남은 한 공간에서 긴장과 화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우환과 안도 다다오. 두 사람의 사유가 미학적 공명으로 이어져 완벽한 호흡을 끌어내고 있었다.

붓의 질감만으로 간결한 점이나 선을 그려내는 그의 미니멀리즘은 동양의 선불교 사상과 깊이 닿아 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의 관계” 에 충실한 심미적 미술작품들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점으로부터’ 는 우주의 기원이 느껴졌었다. 원형으로 차츰 커져 올라오는 점들의 연속선은 달팽이 곡선으로 마침내 세상과 뜨겁게 조우하는 모습이었다.

▲베네세하우스 계곡 이우환 미술관 앞에서.
▲베네세하우스 계곡 이우환 미술관 앞에서.

오벨리스크와 자연석 철판이 놓인 ‘조응의 광장’ 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다섯 개의 공간이 기다린다. 만남의 방, 침묵의 방, 그림자의 방, 명상의 방까지 통과하면 더욱 알 수 없는 하늘이 가득하다. 살면서 서로 무심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사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무리 봐도 너무 단순해서 허무하기까지 한 그의 작품은 인간의 덧없는 생을 그려내고 있다. 유적도 온천도 없는 나오시마 외딴섬에 이우환은 오늘도 동양의 예술대표같은 혼을 뿜어내고 있다.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후쿠다케 회장과 이우환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첫눈에 의기투합했다. 대륙의 느낌이 강한 이우환의 작품들이 나오시마에 전시되기를 원했다. ‘점에서’, ‘선에서’ 연작을 통해 모노파의 깊이를 일궈낸 대가의 작품은 이렇게 빛이 났다.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 은 영구 개관중이다. 두 나라의 과거를 뛰어넘는 화합의 언어가 숨겨져 있었다.

남태평양을 건너 시코구(四國) 해변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나무와 깃발과 인간의 내면까지 흔들고 지나간다. 지중해를 온통 봄으로 물들이는 아프리카의 노토스 해풍 같다. 계절이 밀려가고 새로운 하늘이 열린다. 하지만 이우환의 오벨리스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광장에 내려앉은 철판은 무한 시간을 담고 있다. 존재의 기원과 현재는 물론 알 수 없는 미지의 먼 앞날까지 견고하게 가두어 놓고 있으니 시간은 그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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