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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나오시마, 빛으로 만나는 모네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09월 27일 오후 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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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콘크리트 벽을 비켜 돌아서서 수련 연못가에 들어섰다. 가지런한 수면에는 푸른 하늘이 모두 담겨 있었다. 나오시마의 비스듬한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디자인 되어진 계단식 물가에는 이미 봄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생명이 움트는 식물들의 파릇한 축제와 함께 수련은 빠른 속도로 연두색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앞 바다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우노 항구는 춤추는 아지랑이 속에 점점 가물가물해져갔다.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 인상파 화가)는 당대의 미인 모델 카미유와의 사랑으로 두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요절해버린 사랑을 떠나보내고 재정적 지원자였던 알리스와 재결합했다. 그녀가 데리고 온 여섯 자녀까지 8남매를 책임지면서 지베르니 정원에서 생이 끝날 때까지 꽃과 나무를 그렸다. 집요한 빛의 추적 작업이었다. 빛은 곧 색채라는 회화적 질문을 놓지 않았다. ‘인상-해돋이’ 에서 유래한 인상주의 창시자답게 시각에 따라 변하는 사물의 프리즘을 담아냈다. 같은 인상파 화가 세잔은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으로 그를 극찬했다.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은 모네와 빛으로 만나려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夫)의 땀이 이뤄낸 걸작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안도지만 건축에서 빛이 차지하는 역할에 주목해 누구도 따라 하기 어려운 장르를 개척해냈다. 그는 모네의 연작 ‘수련연못’ 의 의미를 확장하겠다는 착상에서 세계적으로 독특한 지중건물을 현실화 시켰다.

나오시마 지추미술관 입구에서
▲나오시마 지추미술관 입구에서

노출 콘크리트가 삼각, 사각으로 만나고 직각으로 포개지는 얇은 벽은 교묘하게 자연광을 흡수한다. 스며드는 빛은 모네의 그림을 비추고 바닥을 일으켜 세워 끝없는 근원적 상상을 자극한다. 밖에서 보면 건축의 부피감이 거의 없고 건물 안에서는 자연을 지척으로 느낄 수 있다. 빛으로 승부하는 조각가 월터 드 마리아와 공간 설치 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솜씨도 백미다.

프랑스 파리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에는 수련 연못을 건너는 일본풍의 아치형 다리가 있었다. 19세기 초 유럽을 풍미한 자포니즘의 영향이다. 가보지 못한 일본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1906년 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한 ‘수련 연작’ 은 모네의 마지막 작품이다. 태양이 뜨고 질 때까지 정원에 앉아 캔버스를 바꿔가며 빛의 변화를 담아냈다. 초라한 인간의 생을 자연의 무상함으로 견디면서 우주적 시각을 담아내려 했다. 전쟁의 허무를 화폭으로 이겨내고자 했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은 지추미술관 가는 길에 그대로 살아있었다.

지베르니정원에서 그린 모네의 수련-연작
▲지베르니정원에서 그린 모네의 수련-연작

가로 6미터가 넘는 대작 앞에 서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는 순간에도 노출 콘크리트 천정으로 들어오는 빛은 새로운 영감을 속삭이고 있었다. 바닥에는 2센티미터 크기의 카라라 산 대리석 70만개가 타일처럼 깔려 다시 자연광을 부드럽게 반사해내고 있었다. 따뜻하게 혹은 은밀하거나 신비롭게 속세에 지친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포용의 미학이다.

몇 년 전 파리에서 모네의 수련만을 골라내건 오랑주리 미술관 투어 메모리가 고개를 내민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제지에 눈에만 넣고 돌아온 아쉬운 여행이었지만 그때부터 지베르니 정원은 내 기억의 한쪽에서 자라고 있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미리 머릿속에 그림을 담고 있어야 한다”. 덥수룩한 수염의 마음씨 좋은 아저씨 모네의 고집이 엿보이는 감성적 직관이다.

안도 다다오는 지추 미술관을 지으면서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살리고 없는 것은 상상해 보라”고 했다. 존재하는 것은 살리고 없는 것은 만든다는 나오시마의 주인 후쿠다케 회장의 소신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만 보고 기억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평생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무심함이다. 땅속으로 묻혀 있는 지추 미술관은 9점의 작품을 위한 공간으로 그렇게 이 세상에 탄생했다.

제임스 터렐의 오픈 필드. 빛 안에 공간이 있다.
▲제임스 터렐의 오픈 필드. 빛 안에 공간이 있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캘리포니아 출생)의 ‘오픈 스카이’ 는 빛이면서 입체적 공간이라는 환각을 불러 일으켰다. LED 조합으로 만들어진 40개의 빛은 벽이 아니라 지상으로 관통하는 통로를 연상케 한다. ‘오픈필드’는 2차원의 평면인지 3차원의 공간인지 직접 빛 속으로 들어가서야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1935-2013 미국 조각가. 버클리에서 미술전공)의 공간에는 공 모양의 거대한 화강암덩어리가 하나 놓여 있다. 흠집하나 없는 완벽한 구형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시선을 교차해볼 수 있는 영원의 공간이다. 자연과 문명의 대립 같은 느낌이다. 대지미술의 선구자답게 모네와 빛으로 잘 어울리고 있었다. ‘시간/영원/시간없음’ 은 조각이라기보다 허무한 생의 윤회를 수채화처럼 담고 있었다.

월터 드 마리아 조각 전시실
▲월터 드 마리아 조각 전시실

나오시마는 자연과 예술과 건축의 ‘콜라보레이션’ 현장이다. 가능성의 공간인 지중미술관에 보는 이의 상상력과 대화를 정갈하게 준비시켰다. 추상적인 기하학 형태의 건축을 땅속에 묻어 배치한 구성은 일찍이 없었던 신(神)의 갤러리다. 나오시마는 새로운 사물의 환상에 놀라는 유년의 꿈을 일깨워 주는 듯 했다. 건축과 바다와 생명이 어우러진 인간의 명제를 끝임 없이 묻고 있는 그 모습이 말이다.

봄의 무성한 숲과 대지의 열기가 살아나는 시간에 사람들은 그 무관심했던 겨울을 툭툭 털고 줄지어 나오시마를 찾아왔다. 행복한 고요 속에 생명이 떠오르는 들녘에는 이름 모를 곤충들의 군무가 태양을 뜨겁게 하고 있다. 그 사이 노인들의 세밀한 손길은 가지를 치고 계절을 누빈다. 예술이 가득한 섬 마을에 모네가 사랑했던 빛이 서서히 기울어져 갔다. 짙게 물들어가는 석양에 한줄기 가는 연기가 피어올라 이 제전의 덧없는 운명을 알리고 있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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