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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감자기근과 보릿고개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7년 09월 0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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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쌀과 유럽의 밀, 남미의 옥수수는 인류의 배고픔을 해결해준 3대 작물이다. 뒤늦게 감자가 4대 식량 반열에 올랐다. 감자는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 개척이후 유럽에 전해져 귀한 식용작물로 각광을 받았다. 소출량이 많고 대충 심어놓으면 어지간한 땅에서 잘 자란다. 보관도 쉽고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미 200년 전 유럽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주인공이 되었다 

옛 영국의 귀족들은 땅에서 나는 작물을 먹지 않았다. 하늘로 솟는 포도나 토마토, 밀이 주식이었다. 땅속에서 캐내는 것들은 모두 저급하게 여겼다. 그 시절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로 배고픔을 때웠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시절의 버팀목이었다. 녹색의 대평원 아무 곳에나 던져두면 풍성한 수확으로 보답하니 고맙고 든든한 먹거리였다 

하지만 신은 가난한 이들의 만족과 평화를 그리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런 문제없던 감자밭에 170년 전(1845) 곰팡이 병이 돌더니 아일랜드 전역을 덮쳤다. 영국은 도와주지 않았고 800만 인구 가운데 100만 명이 죽어나갔다. 기근당시 전 국민이 한명도 빠짐없이 거지상태였고 거리마다 시체가 즐비했다는 기록이 지금도 남아있다. 아일랜드 감자대기근은 현대 인류사의 수수께끼다.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Liffey)강변에서 우울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을 보았다. 바짝 마른 몸매의 여윈 주민들, 곧 쓰러질 듯한 형상의 비참함, 사람뿐 아니라 허기에 지친 개들의 모습이 당시의 비극을 짐작하게 했다. 죽어가는 아들을 안고 있는 부부동상 앞에 멈춰 섰다. 더는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웠다. 시체가 된 자식을 어깨에 메고 휘청거리는 행렬은 충격이었다. 조형물 주변으로 거대한 지하광맥처럼 아일랜드의 슬픔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리피강변 감자기르 동상에서

▲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리피강변 감자기근 동상에서


당시 감자기근을 피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난 사람은 200만 명에 육박했다. 북아일랜드의 항구도시 런던데리에서 정처 없이 배에 오른 이들은 멍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데니보이를 합창했다. 고향을 떠나며 부른 망향가였다. 살아서는 다시 돌아 올수 없는 곳을 그리는 구슬픈 노래였다. 리피강변에서 리시버로 듣는 데니보이는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바리톤 고성현의 목소리로). 

데니보이는 지정학적으로 독립을 원하는 아일랜드와 놓아주지 않는 영국의 700년 압제를 견뎌내며 만들어진 민중 아이랑이다. 듣고 있노라면 차분해지면서도 뜨거운 무엇인가를 가슴속에서 솟아오르게 한다. 전사하거나 굶어죽으면서 조국을 떠나야 하는 슬픈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죽음 앞에서 그려보는 고향의 목장과 초원, 양떼, 사계절 꽃들이 절절히 담겨있다. 그런 배경 때문에 21세기의 대표적 망향가로 기억된다.

 

오 사랑하는 아들 데니야.

목동의 피리소리가 널 부르는구나

산기슭 골짜기 아래에서도

여름은 가고 꽃은 시드는데

이제 너는 떠나야만 하고

우리는 여기 남아 널 기다리고 있구나

 

미국에 도착한 이들은 부활을 향해 정진했다. 동부 13주 전역에서 상류층을 형성하며 현대 미국의 주춧돌이 되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호박 귀신 가면으로 죽은자의 영혼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할로윈데이를 수출했고 케네디 대통령, 하버드 같은 인물을 배출해 아이리쉬 주류사회를 이뤄냈다. 절망의 바닥에서 건져 올린 희망이었다 

이민선으로 대서양을 건너 메사추세츠에서 생을 마친 어느 아일랜드 노인의 메모는 처연하다. “불어오는 바람이 흔적을 남기지 않듯 순간의 기척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리고 싶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먼지처럼 흘러 떠돌아왔기에 이렇게라도 살아남았다. 바람에 날리어 가고 또 떠나고 언젠가 그곳이 익숙해지면 다시 바람을 부르리라

 

▲ 아일랜드의 초록색 평원은 거대한 농산물 생산지다

▲ 아일랜드의 초록색 평원은 거대한 농산물 생산지다

 

감자로 시작된 배고픔의 절규가 청동상의 교훈으로 남겨졌다. 고단한 역사위에 올라선 아일랜드의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1995년 로빈슨 대통령은 우리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결코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라며 독립기념일에 리피 강변에서 국민들에게 처절했던 감자기근 역사의 성찰을 주문했다. 

보릿고개를 견뎌내기 위해 우수리스크와 북간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야 했던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는 고향의 봄으로 슬픔을 달랬다. 출발이 비슷한 데니보이 스토리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떠오르고 아앨랜드가 유럽에서 비상했을 때 세계는 가난을 이겨낸 성공모델로 두 나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정학적 고통을 딛고 단기간에 성공한 나라는 드물다. 영국의 압제를 이겨낸 강인한 아일랜드, 강대국에 둘러싸여 분단된 상황에서도 도약을 이뤄낸 한국은 닮은꼴이다. 리피강변을 서성거리는 내 마음속에 강한 역사적 유대감이 일렁거렸다 

아일랜드는 오늘날 유럽의 무역중심지로 우뚝 섰다.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외국자본 유치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브랙시트로 영국탈출을 시도하는 글로벌 금융기업들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다. 더블린의 뉴 금융센터는 새로운 호황을 맞고 있었다. ‘캘틱 타이거의 보폭은 멈추지 않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을 딛고 일어선 켈트인의 영광을 전 세계가 오래 기억할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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