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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위대한 유산. 기네스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7년 08월 0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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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는 아일랜드의 상징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모든 부처에서 국가서류의 공식인장으로 켈틱 하프 문양을 쓰고 있다. 끌 없는 녹색의 평원에서 한들거리는 풀숲은 하프의 부드러운 연주곡을 그대로 옮겨 그린 듯하다. 고전적인 코린트 기법의 아트기둥 현악기가 천개의 소리로 인간의 감성을 마법처럼 끌고 다닌다. 잔잔하면서도 파도가 일렁이는듯한 아일랜드 벌판에서 하프가 탄생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프와 아일랜드의 궁합은 신화의 영역이다.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다. 더블린의 건물도 다리도 기념탑도 하프를 새겨 넣은 구조물이 많은 이유다.

세계 사람들은 아일랜드라는 국가보다 ‘기네스’ 를 더 많이 기억한다. 브랜드 하나가 문화명품 반열에 올랐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흑맥주는 그들의 살아있는 역사다. 기네스의 트레이드 마크도 하프, 아일랜드 국가 문양도 하프로 이곳에서 국가와 맥주가 동격이다. 서로의 하프를 반대로 그려 구별할 뿐이다. 기네스 거품에는 아일랜드 역사가 녹아있다. 흑맥주 스타우트의 명성 뒤에 아일랜드의 초원이 펼쳐져 있다.

더블린 성을 지나 들어선 기네스 제조공장은 거대한 ‘뮤지엄’ 이었다. 8층까지 관통하는 대형 파인트 잔 형상을 따라 구석구석 쌓인 2천 여 개의 오크통이 독특한 배치로 시선을 압도했다. 7층 ‘그래비티 바’ 에서 기네스 한잔을 들고 비 내리는 더블린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흑맥주 한 모금이 온몸에 다시 따듯한 온기를 지펴주는 느낌이었다.

긴 줄에 서서 예외 없이 입장료 2만원을 내야 기네스 뮤지엄 탐험이 허락된다. 엄청난 규모의 관광수입이 보장되는 문화상품인 셈이다. 기네스의 3백년 역사와 아일랜드 국가 브랜드가 매칭된 다큐멘터리가 건물 곳곳에 배어있었다. 리피(1930년대 여류시인의 이름을 붙임)강변의 기네스 덕분에 이 나라는 문학과 예술이 꽃피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 더블린 기네스 맥주 제조공장에서
▲ 더블린 기네스 맥주 제조공장에서

더블린의 ‘하프페니(반 페니 통행세에서 유래)다리’ 건너 낡은 양조장에서 아서 기네스(Arther Guiness)가 시작한 모험이 수퍼 브랜드의 출발이었다(1755년). 폐허가 된 양조장을 9천년 임대 계약으로 되살려 오늘날 글로벌 프리미엄 맥주의 선두자리에 우뚝 섰다. 보리와 호프를 넣어 볶고(roasting), 으깨고(mashing), 끓이고(boiling), 양조하고(brewing), 발효(ermentation) 시키는 전 공정이 생산 디자인 서클 속에 숨어있었다. 호프를 검게 볶아 잊을 수 없는 맛의 조합을 찾아낸 것이다. 이 공장의 연간 임대료는 40파운드, 6대째 가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기네스 맛은 런던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수출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1811), 뉴욕(1840), 뉴질랜드(1858)로 팔려 나갔다.

드레프트 비어를 만들고(1988) ‘조니워커’ 와 ‘딤플’ 을 인수 한 뒤 회사는 런던으로 옮겨졌다. 디아지오 그룹(기네스 본사)은 지금 세계50개 양조장에서 생산된 맥주를 150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아일랜드산 최대 수출품이다. 여세를 몰아 만든 ‘기네스 북’ 은 또 다른 관심과 시장을 창출해냈다. 세계최초, 세계최대만을 모으기 시작한 후원기업은 돈방석에 올랐다. 연간 1억 부가 넘게 팔려나가면서 ‘기네스’ 왕국 건설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기네스의 비밀은 질소구슬(위젯)이다. 캔을 딸 때 공기와 만나 압력이 풀리면서 거품이 만들어진다. 이 순간 단순한 맥주가 ‘그리미 헤드’ 의 독특한 명품이 된다. 윗입술을 적시는 부드러운 거품 맛은 기네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명작이다. 효모통의 상부에서 발효되는 ‘에일(ale)’ 이나 하부에서 만들어지는 ‘라거(lager)’ 를 막론하고 그리미 거품은 기네스의 상징이다. 칼스버그(덴마크), 하이네켄(네덜란드), 필스너(체코), 아사히(일본), 코로나(멕시코)를 넘어서는 맛의 비결이다.

우리나라 수입맥주는 연간 2천억을 넘어섰다. 매년 20%의 가파른 성장세다. 국산맥주는 호프를 10%만 넣으면 되기 때문에 맛이 밍밍하다. 물론 일본 맥주가 수입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5천종의 맥주가 지구촌의 밤을 유혹한다.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축제에는 매년 600만 명이 모인다. 삿포로의 오오도리 공원에서, 프라하의 레트나 공원에서, 필리핀의 산 미구엘 광장에서 비어 페스티벌은 국가의 이미지를 달군다. 무역과 소득수준은 다 웬만해졌는데 명품맥주 하나 갖지 못한 우리에게 기네스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 기네스 맥주 오크통 전시센터

▲ 기네스 맥주 오크통 전시센터

시인 윌리엄 예이츠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시머스 허니는 기네스를 사랑하던 아일랜드 사람들이었다. 4명이 모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아일랜드의 국격을 높여주고 있다. 트리니티 대학 켐퍼스에서 기네스 축제를 지켜보며 상상력을 키운 결과였다. 수도사들이 양피지에 라틴어 복음서를 새겨 넣으며 목을 축이던 기네스에는 더블린의 영혼이 녹아있다.

아일랜드의 대지는 끝없는 지평선이다. 광활하다 못해 경이롭다. 더블린에서 서쪽 끝 모허절벽까지 달리는 3시간 동안 초원의 물결은 끝이 없었다. 태양이 머무는 동안 빚어내는 녹색은 심연의 생각까지 끌어낸 40여개의 색으로 인간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 옐로우 그린, 화이트 그린, 퍼플 그린이 연출하는 스토리는 아일랜드 대자연의 파노라마다.

모허 절벽(Cliffs of Moher)의 ‘토치카 카페’ 에서도 짧은 여름을 아쉬워하는 기네스 축제는 한창이었다. 거친 북해의 파도와 바람에 수 천 년을 맞서면서 직각으로 깎여나간 바위를 보려고 그 앞에 섰다. 자연에 압도되었을 때 풀잎만도 못한 인간의 나약함은 들꽃처럼 흔들리는 법이다. 생각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서는 접점에서 나의 왜소함은 끝없이 절벽 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 허전함을 이기려고 기네스 한잔을 들고 포효하는 북해에 섰다.


▲ ▲모허절벽 반대쪽 동굴같은 토치카 카페 ▲200m의 거대한 모허절벽에서

 ▲모허절벽 반대쪽 동굴같은 토치카 카페                       ▲200m의 거대한 모허절벽에서


“일어나 지금 가리라/이니스프리로 가리라/나뭇가지 얹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집 지어/아홉이랑 콩밭 일구고/꿀벌들의 노래 들리는 숲에서/ 나 홀로 살리라/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을 따라 평화는 오리라/ 밤중조차 환하고 낮에는 보랏빛 어리는 곳/ 저녁에는 방울새 날개소리 들리는 거기/ 일어나 지금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호수에 찰랑이는 물결소리 들리는 그곳/ 내 가슴깊이 그 소리 듣노라” (이니스프리의 호도. 예이츠)

모허 절벽에서 멀지 않다는 예이츠의 고향이 궁금했다. 이니스프리의 호수를 돌며 어린 시절 꿈을 키웠을 ‘슬라이고 숲길’은 어떤 영감을 그에게 주었을지 그려보았다. 양떼 줄지어 한가로운 초원 저편으로 지금 막 시야를 벗어나는 한 자락 바람이 나의 질문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노마드’ 의 허전함은 여정이 아니라 기네스에 취한 먼 기억 속에서 더욱 격렬하게 부풀어 올랐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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