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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청년 김우중. 끝나지 않은 도전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7년 03월 2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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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인류의 정신문화를 태동시키고 살찌운 문화유산이다. 그리스의 비극이나 세익스피어의 주옥같은 명작들은 ‘테아트론(시어터의 유래)’이라는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흰 깃발이 내걸리는 날에는 희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검은 깃발이 내걸리면 비극을 보는 날이다. 흰 것도 검은 것도 아닌 다른 색의 깃발이 올라가면 그날은 역사물이다.
80을 넘겼지만 김우중의 눈동자는 살아있었다. 장녀가 운영하는 미술관 계단을 2층까지 거뜬히 올라갔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기쁜 이야기와 슬픈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제 기쁨도 슬픔도 아닌 자신의 인생역정을 진솔하게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자상한 노년의 모습이었다.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나온 이유를 헤어질 때까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시선은 가끔 처연했지만 혈기왕성한 중년의 건강함이 배어 있었다. 굵은 안경테 너머의 미소는 지난시절 사람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얼굴이었다. 대한민국 경제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주인공의 왕성함이 아련하다. 과거는 모두 덧없다고 했다. (주)대우 한 회사만 38조원의 매출(396개의 해외법인 운영)을 올리던 시절을 떠올리면 할 말이 많아진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국난에 해당하는 외환위기를 넘지 못하고 일그러진 신화는 잊고 싶은 과거다.

대우가 상상하고 실천한 90년대 소비문화는 화려함을 넘어 찬란하기까지 했다. 대우전자의 하이터치와 소비자 시대의 유토피아를 목표한 만든 탱크주의 작품들, 티코에서 레간자, 누비라, 라노스, 마티즈로 이어지는 독자모델 생산, 디자인을 바탕으로 100개국 해외시장을 휩쓴 파상적 마케팅은 아직도 드라마같은 족적이다. 내구 소비재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대우의 신문화 창조는 실용과 첨단을 버무린 시대정신이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김일성을 만나고 트럼프를 초청해 서울에 아파트를 짓고 우즈베키스탄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던 때의 기억들은 눈을 감은 노병의 실루엣을 대하는 듯 했다. 하지만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와 순환출자에 발목이 잡힌 문어발 확장, 정치와 권력을 동원해 성장시켜온 정경유착. 정부의 파산 결단에 갈 곳을 잃은 수 만 명의 직원들. 그 또한 일찍이 가보지 못한 길이었다.

▲종로 선재아트센터 앞에서 김우중 회장과

▲종로 선재아트센터 앞에서 김우중 회장과

  동남아시아에서 ‘글로벌 청년사업가 육성(GYBM)’ 이른바 ‘김우중 사관학교’의 관심은 대단하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에서 모여든 우수한 인재들은 10개월의 ‘G스쿨’ 코스를 마치고 취업하거나 창업전선으로 향한다. 현지에서 이들의 인기는 높다. 서로 데려가려는 바람에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김우중은 하노이와 호치민을 오가며 졸업생들과 스킨십을 하고 있다. 취업한 회사의 대표들을 만나거나 새로 문을 연 청년 창업자들을 찾아가 격려한다. 베트남 청년들에게 특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우리와 역사성을 같이하면서 가능성이 밝은 곳이어서 애정이 쏟고 있다고 고백했다.

저물어가는 인생사에 흔적을 남기려는 ‘킴기즈칸’ 의 청년정신은 아직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 달에 두어 번 동남아와 서울을 왕복하며 ‘제2의 김우중’ 을 꿈꾸는 세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건강은 소식과 명상, 잠으로 해결한다. 무수한 비행기 탑승으로 한창때 연중 260일을 해외에서 보낸 이력 탓에 청력이 약해져 조금 불편한 것 빼고는. 30여 년 전 ‘인생봄날’ 의 사유에 머물러 있었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김우중의 시대는 추억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완으로 마무리된 세계경영은 세월속에 엷어지고 있다. 회한이 가득한 그의 이력서는 서서히 빛이 바래어가는 중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대체 대우그룹은 왜 망가졌을까. 누가 주도한 결과인가. 그렇게 엉망이었던 기업이었나. 대우창업50주년을 맞아 모여든 500여명의 전직 대우맨들은 아직도 아쉬움과 원망을 접지 못하고 있었다. 김회장의 아들이 만든 독립영화 ‘100인이 증언하는 대우’는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스크린 맞은편 멀찌감치 서서 화면을 지켜보던 이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기업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할 수도 없다. 기업의 생애주기는 잘해야 대부분이 40년이다. “기업가들이 지갑에 들어온 돈을 세기 시작하면 그 나라의 미래가 없다. 그저 키우고 만들어내고 해외시장을 개척해낼 때의 쾌감정도가 충분한 보상” 이라는 김회장의 지론은 그때나 통하는 이야기였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이 실종된 지금 세계를 주름잡던 경험은 놓치기 어려운 자극제다. “기업가가 존경은커녕 존중도 못 받는 요즘 같은 세태가 이어지면 나라 망한다”는 걱정은 공감영역 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게 문제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가야한다”. 김우중의 실패를 손가락질하기에는 그가 이룬 도전정신과 글로벌 경영의 그림자가 너무 크다.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초연함일까. “아쉬움은 많지만 여한은 없다. 다만 청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려고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는 마무리는 여운이 길게 남았다.

“요즈음 누구든지 우리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혼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관에 혼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며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삶의 미래 비전이 실종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질서의 극복은 대화다. 대화는 인간의 특이한 생물학적 조건에서 우러 나온다”. 도올 김용옥과 함께 한 비행기 여행기록 ‘대화(1991)’ 의 서문이다. 김우중이 직접 쓴 글이다. 우리의 대화도 이쯤에서 정리되었다. 방배동 자택으로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인생의 공과는 생전에 내릴 수 없는 부분이다. 선구자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보고 있기 때문에.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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