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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나는 왜 오키나와로 튀었을까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7년 02월 13일 오후 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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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남쪽으로 튄다면 그곳은 바로 오키나와야. 푸른 바다, 알 수 없는 전설의 마을들. 언제나 한소데(반팔) 차림으로 풍덩이 가능하니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사우스바운스’). 현대 일본문학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에 살짝 싫증이 나려했던 시점에서 오쿠다 히데오(1959-)를 만났다. 우선 그의 글은 유쾌하다. 오래전부터 일본 국민을 관두고 싶었던 이상한 아버지의 아들 우에하라 지로의 코믹한 성장이야기가 읽는 눈을 쏙 빠지게 했다.

과거 부르주아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혁명당 소위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일원인 아나키스트 아버지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지로는 줄곧 ‘사우스바운스’를 꿈꾼다. 그러다 결국 남쪽으로 튀었고 도착지는 오키나와였다. 별다른 주제도 없다. 복잡함을 싫어하는 요즘세대와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주인공 지로를 따라 오키나와로 튀고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그 핑계를 대고 떠나면 더 낭만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지 싶어 나도 소설책(‘남쪽으로 튀어’) 한권을 가방에 챙겨 오키나와로 튀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琉球)왕국이었다. 류큐는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천 년 전 중국 복건성과 타이완 사람들이 건너와 왕국을 세우고 융성하다가 15세기 일본 사쓰마에 점령당했다. 에도막부 초기니까 대개 4백 여 년 전이다. 신숙주의 ‘해동제국기(1471년)’ 에 처음 소개되고 나서 조선시대 한때는 홍길동의 ‘율도국’으로도 알려졌던 섬이다. 2차 대전 종전 무렵 미국과의 지상전으로 초토화되었지만 해변의 절경과 슈리성만은 건재했다.

▲ ▲오키나와 고대왕궁 슈리성의 수문장과 함께
▲ ▲오키나와 고대왕궁 슈리성의 수문장과 함께
 
그때 복장으로 슈리왕궁의 근무교대와 하늘제사가 공연으로 매일 재현되고 있었다. 모자색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언덕을 가득채운 금빛 기와지붕 건물들. 그 시절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주민들의 자부심은 류큐의 정체성 고민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만 명이 앉아도 될 만하다 하여 붙여진 넓은 바위 절벽 ‘만자모’ 를 걸어 내려와 남북으로 길게 누운 섬의 아래쪽을 주로 돌아보았다.

“푸른 섬은 피난처다. 도시와 문명과 이데올로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도망지로 그 섬이 있었다. 무망한 수평선, 시간의 흐름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느 한 지점에서 갑자기 멈춰 서 버린 곳. 신화가 전설로 이어지고 있는 땅”. 이렇게 묘사한 오쿠다도 매력적이지만 픽션 따라잡기에 나선 독자들도 만만치는 않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나고시 남쪽 해변의 가파른 산 중턱에 맛집이 있다는 소문에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역시 오쿠다의 소설이 일을 냈다. 야마노차야 라쿠스이(山茶屋 樂水). 이런 절벽에 허가를 내준 관청도 대단하지만 그가 다녀갔다는 소문으로 밥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리가 없었다. 용나무 그늘사이 화산석에 대고 만든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이른 오후의 파노라마가 해면에 펼쳐졌다. 빛의 축제가 한창이다. 시간에 따라 만들어지는 자연의 위대한 회화를 보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싶다.

창가 바다 쪽으로 배치된 방석자리가 백미였다. 해탈을 위해 면벽정진하는 암자 스님의 구도좌같다. 낡은 나무창틀을 열어 고이고 그저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과 경계가 없는 수평선에 눈을 박았다. 섬사람들이 먹는 대로 소박한 밥상을 받았다. 인간사 태양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피안과 현실을 이어주는 풍경은 역시 가슴 밑바닥을 일렁이게 한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넘치듯 지나온 날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산중턱 야마노차야 용나무 그늘.                     ▲나무창문으로 바라보는 바다.

산중턱 야마노차야 용나무 그늘.                          나무창문으로 바라보는 바다.

요즘 여수 돌산 앞바다 경도가 뜨고 있다. 볼품없었던 무인도 조그만 섬이 예약 없이는 가지 못할 정도다. 내친김에 한려수도 관광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기업도 있다(미래에셋그룹). 섬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원초적 방랑기를 자극하는 미지의 로직이다. 돈 들여 사서 고생해서라도 섬마을 답사를 꿈꾸는 것이 현대인들이니까.

흑산도, 비금도, 추자도, 욕지도, 거문도. 남해안에는 무수한 섬들이 모여 있다. 자본을 대고 스토리를 입히면 오키나와를 넘어설만한 곳들이 부지기수다. 지리적으로도 기막힌 입지다. 비행기로 반경 두 시간이면 닿는 100만 이상 동아시아 대도시가 50개나 된다. 유럽전체를 합한 것보다 많다.

섬은 자연환경에 인간의 이야기가 발라져야 재탄생된다. 신화와 현실이 버무려지면 일상의 쉼표를 찍겠다는 이들은 줄을 서있다. 리츠칼튼호텔은 통째로 개발할만한 섬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지고 다닌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들은 그림을 담고, 당국은 자리를 깔아야 한다. 잊혀진 섬들의 이야기가 그려져야 한다. 시코쿠의 나오시마, 중국의 해남도, 하와이의 마우이, 오키나와처럼 사람들은 어디론가 튀고 싶은 곳을 찾고 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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