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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공익 자본주의의 현장 나오시마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6년 03월 21일 오후 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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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후쿠다케 테츠히코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1986년이었다. 아동 학습서와 ‘바다제비’같은 사상 잡지를 만들던 ‘후쿠다케 서점’ 의 창업주인이다. 그가 늘 그리워하던 곳 나오시마에 천진한 아이들이 자연을 즐기는 캠프장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눈을 감았다. 아들 후쿠다케 쇼이치로(福武長一郞)는 도쿄의 가업을 정리하고 고향 오카야마(岡山)로 돌아왔다. 회사이름도 후쿠다케 서점에서 ‘잘 살다’ 는 의미의 ‘베네세(Benesse)' 로 바꿔버렸다. 어느 날 바다건너 나오시마에 내린 순간 아버지가 왜 그토록 이 섬을 못 잊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아름다운 바다는 섬을 타고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곡선에 안겨있었다. 한없이 고요한 석양 바다는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간의 문명에 피폐해진 구리제련소 잔해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몇 바퀴 섬을 둘러본 뒤 평소 알고 지내던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 세계적 건축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 사람은 선술집에서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갤러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안도는 무척 당황했다. 상상이 가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방문하면 할수록 산과 바다의 굴곡에서 뭔가 신비함이 솟아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토 바다의 아름다움은 에도시대부터 세계적 찬사를 받아왔다. 혼슈와 시코쿠 바다에 버려진 작은 섬(인구 3300명)은 생명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헤이안 시대(1156년) 고시라카와 천왕이 즉위 무렵 귀족과 무인들의 내전을 겪으면서(호케의 난) 패배한 스토쿠 상왕이 유배 길에 이 섬에 들렀다가 주민들의 솔직함(素直)에 감동해 나오시마(直島)로 이름 지어진 마을이다. 이 섬을 지나면 메이지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고치현)가는 길이다. 바다를 건너는 20분 동안 구국의 고뇌에 쌓여 육지로 향했을 청년 료마를 몇 번이나 떠올렸다.

후쿠다케의 열정과 땀은 서서히 사람들을 움직였다. 바다는 스스로 아름다워지려 했고 섬은 더 푸른 숲이 되고자했다. 그 각각의 언어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1992년 베네세하우스가 선을 보였다. 예상을 벗어난 감동이었다. 2002년 지중미술관, 2010년 이우환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옛 골목을 살리는 ‘이에(家)프로젝트’ 는 인간의 역사와 깊이를 담아냈다.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거친 꿈의 호텔 오벌과 비치, 파크가 차례로 개장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베네세파크 앞마당 Niki de saint phalle의 Le Banc 의자에서.

▲베네세파크 앞마당 Niki de saint phalle의 Le Banc 의자에서.

마음에 고인 물을 길어 올린다는 독특한 조각 ‘가보짜(호박)’는 백미였다. 파크 호텔 선착장 잔교에 세워진 노란 호박은 영혼의 세탁소 같은 느낌이다. 어느 해 태풍에 호박 꼭지가 날아갔다. 마을어부는 고기잡이 나갔다가 파도에 떠다니는 꼭지를 건져 다시 끼워 맞췄다고 한다. 예술과 인간은 이렇게 공존하고 있었다. 조각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1929-)는 고개 너머 선착장에 또 하나의 빨간 호박을 설치했다. 거대한 호박에 하늘의 점이 박히고 곳곳이 원형으로 뚫려있다. 우주와 교신하는 통로다.

햇살이 포근한 아침나절 걸어서 돌아본 섬 소재지 혼무라 마을은 독특한 체험이었다. 오래된 과거가 거장들의 건축과 어우러져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고갯길 쪽 베네세 뮤지엄은 해가 벌써 중천이다.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 1948- 세계적 사진거장)의 ‘노출된 바다’ 연작이 심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콘크리트에 걸린 사진들은 텅 빈 중앙 공간 바다의 수평선과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의 사진과 자연의 형체가 침묵으로 만나는 모습이다. 에게 해 필리온과 황해 제주 사진이 발길을 잡았다. 흑백사진의 수평선이 다양한 질감으로 나의 내면을 두드렸다. 그 시간의 흐름은 다시 현세의 세토 바다를 따라 흘러들고 있었다.

스기모토의 바다사진과 자연의 교감.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스기모토의 바다사진과 자연의 교감.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나오시마를 움직이는 베네세 홀딩스는 ‘잘사는 것’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실험이며 실천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해지려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인간은 정보와 오락이 넘치는데도 고독하고 행복하지 못하다. 섬의 풍경은 평화를 준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살면 저절로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친 그들을 제 발로 오게 만드는 게 숙제다. 깜짝 놀랄만한 구상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답은 건축과 예술이었다. 후쿠다케와 안도가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바다와 태양과 예술과 건축을 한데 묶어 문화공간을 만들고 그 생명력으로 버려진 섬을 살려냈다.

명소를 만들어낸 결정적 힘은 역시 후쿠다케의 ‘공익자본주의’ 소신에서 시작되었다. 현대기업들은 대개 문화를 목적으로 재단을 만들고 대주주가 배당금을 기부한다. 하지만 객관적 운영보다는 오너의 자녀들이 관계하고 치부와 도피의 통로로 이용되곤 한다. 한마디로 왜곡된 ‘금융자본주의’의 모습이다. 그는 이처럼 병든 자본주의를 과감히 바꾸고자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키는 병든 자본주의의 치부라고 보았다.

“공익자본주의(Public Capitalism)는 부의 배분을 달리한다. 세금회피나 과배당의 일부를 사용해 기업스스로가 좋은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쓰는 것이다. 공익자본주의는 인간과 기업의 모든 연결 고리를 선순환 시킬 것이다. 문화는 경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여야 한다. 문화가 경제를 이끌어가야 한다. 사물은 경제에 앞서가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 앞서가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예술에 대한 후쿠다케의 지론은 상상이상의 설득력과 울림이 있다. 형제와 자식들의 재산싸움에 이골이 난 현대자본주의의 추악함은 한계에 와 있다. 오직 자신과 가족만이 잘살고 말겠다는 천민자본주의는 진한 고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상공에서 본 전경.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상공에서 본 전경.

나오시마는 꿈꾸는 인간의 수채화가 그려진 섬이다. 후쿠다케의 과대망상이 만화처럼 현실이 된 미지의 세계, 버려진 광산에 대한 분노가 예술로 승화된 천국, 천년의 신전을 만든다는 정성으로 놀라운 투혼이 쏟아 부어진 이상향이다. 바다건너 우라노 항구는 속세이고 나오시마는 피안이다. 문명의 속도와 생의 시간과 그것들을 정의하는 숫자의 의미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다. 지중미술관에서 제임스 터렐의 작품 '오픈 필드' 의 형상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무망함이 인생이다.

나오시마에는 흥분과 긴장과 경쟁 대신 인간이 있었다. 잊혀진 사람냄새가 있었다. 점점 늙어가는 섬사람들의 시간을 가라앉히는 바다가 있었다. 그림과 미술관이 주인공 같지만 실은 인간이 주인공임을 알게 해주었다. 모네와 이우환의 위대한 작품에서 탈출해 그저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인간을 그려낼 수 있다는 역발상과 치열함이 있었다. 나오시마는 오늘도 당신들의 자본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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