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젠인(三千院)의 바람은 달랐다. 이끼정원에서 솟아오르는 공기는 골짜기의 정취를 가득 품고 달려 나왔다. 녹색냄새와 새소리, 지나가는 바람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옛사람들의 자취는 세월 따라 흐르고 겹겹이 쌓여 아직도 이 산자락을 맴도는 듯하다.
7세기에 지어진 천태종의 몬제키(門跡. 황족이나 귀족이 출가, 시주해 만든 절) 사찰은 깊어지는 숲의 골짜기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와 이끼에 둘러싸인 진입로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였다.
본당의 넓은 마루는 낯설지 않았다. 숨소리도 죽여 가며 살금살금 뒤쪽에 자리 잡고 앉아 눈앞에 서있는 늙은 소나무부터 은밀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위로 솟는 대신 측면으로 구부러져 굵게 누운 줄기위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솔잎들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정갈한 소나무 가지는 수많은 손길이 오랫동안 분주하게 머문 흔적이 역력했다.
정원의 모습은 황홀했다. 나 자신도 잊은 채 바라봤다. 입은 닫고 눈과 귀만 열었다. 머릿속에 어지럽게 엉켜 있던 속세의 상념들이 달아나고 있었다. 마루 왼쪽으로 작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며 솔바람 소리,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이 귓전으로 스며들어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주었다. 한나절을 움직이지 않고 멍 때리는 이들도 많아 이런 내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끼정원은 자연의 소리들을 방목시키고 있었다. 바람과 향기를 빌려 내 마음속의 때 묻은 흔적들을 지워냈다. 오솔길을 따라 이 정원까지 오르는 동안 벌써 눈과 귀가 평소 맛보지 못한 대접을 받는 중이다. 옛 선인들이 했다던 그 '귀씻이(洗耳)' 를 제대로 하는 날이다.
무성한 수목 속에는 평화와 사랑의 진동밖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요한 침묵을 하늘만이 내려 다 보고 있었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 이라던 도쿠카와 이에야스(일본 도쿠카와 막부정권의 시조)의 말처럼 견디기 힘든 등짐을 지고 살아왔다. 산젠인에 모두 내려놓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푹신한 깊이의 이끼 밭 가운데 익살스런 모습의 동자보살상이 미소로 나를 반겨 주었다. 괴롭거나 무거운 마음이 있었다면 다 내려놓고 가라는 눈치다. 마음의 고요를 얻고 다시 꽃 같은 향기로 하산하라 한다. 무상(無常)의 시간이다.

이끼는 선류(蘚類)에 속하는 작고 부드러운 식물이다. 크기는 1센티에서 10센티에 이르지만 더 큰 종류도 많다.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 집단을 이루며 자란다. 때문에 어두운 느낌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다. 씨앗은 없고 단순한 잎이 가는 줄기를 덮는다. 지구에는 일만 여종이 넘는 이끼가 존재한다. 풀과 나무 이전 4억 년 전부터 있었다니 전설의 식물인 셈이다.
건축시장에서 이끼 정원 시공은 물론 전문 업체까지 성업 중이다. 영화나 예술작품에도 등장한다. 음습한 역할이 아니라 고요와 내면의 안정을 주는 이끼의 역할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모든 식물은 수직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끼는 수평을 지향한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하방을 고집한다.
"이끼는 품이 넓은 수평적 삶을 지향한다. 바닥을 기면서도 높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안으로 품어 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물들 모두를 보듬고 고목에도 푸른 웃을 입힌다." (이끼- 윤영순)

일본에서 이끼정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오닌의 난' (1467년. 쇼군 후계문제로 지방의 다이묘들이 교토에서 벌인 항쟁) 때 부터였다. 무로마치 막부의 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정치보다 정원 만들고 새소리 듣기를 더 좋아했다. 이 때문에 오닌의 난이 일어났지만 정원문화는 후퇴하지 않고 더 꽃을 피웠다.
아시카가의 할아버지가 세운 킨가쿠지(금각사)는 오늘날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 그 자신은 긴가쿠지(은각사)를 지어 가꿨다. 일본 정원의 진수로 알려진 매력적인 사찰들이다. 사계절 모두 들러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이 곳의 이끼를 보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교토의 명소로 등장한 아만 호텔의 넓은 정원도 이끼가 일품이다. 숲속에 감춰진 호텔 룸은 이끼가 가득한 정원을 지나야 도달한다. 갈수록 높은 수준으로 추상화되고 양식화된 고급정원에는 반드시 이끼가 시공된다. 문명은 늘 원시의 자연을 꿈꾸기 때문이리라.
일본의 미학과 철학이 수반된 선불교 정원은 바위와 자갈이 필수다. 양치식물과 대나무, 동백은 동반자들이었다. 여기에 이끼가 주연 급으로 올라섰다. 천년 동안 종교와 철학이 녹아있는 바탕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정토불교와 연결되는 낙원의 개념이 함유되어 있다. 이끼는 현대인들에게 확실한 심신처방제다.

교토는 도시를 둘러싼 산들이 일정한 습도를 제공한다. 장마철에는 적절한 수분이 유지되어 이끼의 성장과 생존이 용이하다. 유리한 조건 때문에 이전부터 매력적인 정원이 많았다. 지하수가 풍부한 지역특성도 한 몫 했다. 중세이후 일본의 이끼정원은 '고케테라' 로 성스런 사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천 년 전 승려들이 정원을 가꾸며 이끼가 지배하는 공간의 균형 잡힌 평온함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산젠인 에는 130종의 이끼가 있다. 흙과 나무, 돌멩이, 석등, 동자보살을 카펫처럼 두껍게 덮어나가는 중이다. 교토 북쪽을 대표하는 이 정원 근처에는 호센인, 사이호지, 료안지 같은 유명사찰의 정원이 산재해 있다. 이곳 오하라 지역은 이끼 정원 동네다.
사이호지(서방사)는 10세기에 만들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있는 정원의 모델이다. 담장 안에는 이끼가 융단처럼 덮여져 숨겨진 눈의 시각들을 모두 일깨워주고 있었다. 이끼는 계절을 넘어 언제나 초록의 세상을 연출해 준다. 오랜 세월 수명이 다한 그루터기 이끼는 전 세계 사진 애호가들의 소장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생명을 마치고도 수많은 시간이 흐른 그루터기에 수북이 덮인 이끼는 예술의 경지다. 만들거나 꾸미지 않아도 자연은 인간의 사고를 항상 뛰어 넘는다. 경외감으로도 부족하다. 말 할 수 없는 숙연한 감정들이 일렁이게 한다.

이끼정원은 '와비사비' 의 완성이다. '와비'는 검소한 공간과 고요한 정취 속에 새겨지는 단순함의 미학이다. '사비'는 느린 시간과 여유를 받아들이는 오래됨의 미학이다. '와비사비'는 겉 보다 본질에 집중하고 서두르기 보다는 유유자적한 느긋함을 가지면서 부족함에서 만족을 느끼는 일본문화의 핵심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침묵의 눈부신 정지상태, 그 사이로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스며들었다가 쏟아지는 오후다. 이끼정원의 풍경은 마음속에 오래 걸어두고 싶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아름다움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고 경험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공간이다. 와비사비의 정취가 산젠인 경내를 가득 채우고 흘러 넘쳤다.
가능하면 이곳을 떠날 때까지 나는 와비사비의 마음을 놓지 않으려 했다. 뚜렷했다가도 희미해져가는 기억처럼 모든 것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세상의 이치를 떠올렸다. 이끼정원 계단을 내려와 교토 시내로 환속하는 동안 작은 사유의 줄기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한 때는 존재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존재하지만 곧 존재하지 않을 덧없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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