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판다더니…" 물건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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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판다더니…" 물건이 없네

최저가판매 대형마트 소비자 우롱… 미끼상품 아니냐


최근 국내 대형마트들이 주요 생필품 가격을 잇따라 내리며 '할인 경쟁'에 뛰어든 이후 주말이면 시내 마트 매장은 쇼핑을 하러 온 소비자들로 가득 찬다.

각 대형마트들이 저마다 '국내 최저가'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판촉전을 벌이면서 생필품을 알뜰 구매해 보겠다는 고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가 생필품 가격 인하를 처음 선언했던 지난 7일 각사별로 제시했던 가격에 비해 매장 진열대에 붙어 있는 제품값은 더 내려가 있었다.

10원이라도 경쟁사보다 싸게 팔겠다며 비교 대상이 되는 품목들의 값을 수시로 내린 탓이다.

하지만, 정작 해당 품목들은 이미 다 팔려나가기 일쑤여서 특가품이 아니라 `미끼 상품'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대형마트 가격 경쟁 속 활기 = 16일 오후 6시 서울 이마트 왕십리역점. 모처럼 포근한 날씨 속에 주말을 맞아 매장은 쇼핑객들로 크게 붐볐다.

특히 신선식품 매장은 장바구니와 쇼핑카트에 물건을 가득 담은 쇼핑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이마트 측은 날씨가 풀리면서 평소 주말보다 손님이 30% 이상 늘었다고 귀띔했다.

정육 코너엔 삼겹살을 사려는 소비자들로 10m가 넘는 긴 줄이 생겼다. 소비자들은 최소 10분 넘게 기다려야 비로소 주문을 할 수 있었고, 매장 직원들은 "○○○ 주문하신 분 어디 계세요"라고 외치며 손님 찾기에 바빴다.

매장 진열대에 삼겹살은 올려놓기가 무섭게 바닥이 났다. 진열대 안쪽 주방에서는 고기를 다듬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인근 행당동에서 장보러왔다는 주부 김모(42)씨는 "줄을 선지 20분만에 가까스로 삼겹살 2㎏을 샀다"면서도 "가족들과 저녁에 구워먹을 생각"이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제일 쌉니다" = 지난 15일 오후 8시 홈플러스 영등포점 식품매장.

진열대 주변에 `E할인점 신문 광고와 비교해도 확실히 쌉니다'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이마트에서 가격을 내린 생필품 22개와 동일하거나 동종인 제품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가격 비교표를 붙여 놓고 `○○원 더 저렴'이라는 문구까지 적어 넣었다.

커피믹스처럼 이마트가 할인한 제품과 중량이 다를 경우에는 동일 중량으로 환산해 비교한 가격까지 `친절하게' 쓰여 있다.


이날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경쟁사끼리 가격 경쟁이 붙은 제품 주변에는 `이런 가격 보셨나요? 롯데마트 ○○원 이마트 ○○원'이라고 적힌 광고 문구가 보였고 `이마트 신문광고보다 10원이라도 더 싸게 판매하겠습니다'라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가격차를 강조하는 문구 밑에 작은 글씨로 `1월15일 15시 용산 이마트 기준'이라고 보충 설명이 달린 안내판도 있었다.

인근에 있는 경쟁사 점포에 대해서는 날짜 단위가 아니라 매 시각 단위로 가격을 체크하고 수시로 이보다 값을 내리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처럼 각 대형마트들이 경쟁 모드에 돌입하다 보니 이마트가 가격 인하 선언을 했던 지난 7일 당시보다 경쟁품목들의 가격이 더 싸졌다.

지난 7일 국내산 삼겹살(100g)은 홈플러스에서 950원이었지만 15일 880원이 돼 있었고 970원이었던 롯데마트의 삼겹살(100g)값도 860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마트는 다시 가격을 추가 할인했다.

16일 오후에 이마트 왕십리점에서 표시한 삼겹살 100g 가격은 850원.

전날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에서 팔린 삼겹살 가격보다 더 내려간 것이며 지난 7일 이마트가 스스로 신문광고에서 발표한 980원과 비교하면 130원이나 싸졌다.

 "자~ 우리가 제일 싸게 팝니다. 다른 마트 둘러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각 마트 매장마다 점원들은 목소리를 높였고, 쇼핑객들은 매장 입구에서 받아 든 전단과 진열대에 붙은 가격을 번갈아 보며 제품을 살폈다.
  
◇"그 제품은 이미 다 팔렸어요" = 일부 생필품이나마 가격이 연일 내린 것은 소비자들로서는 일단 반길 만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싸졌다는 제품을 찾으면 정작 다 팔리고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16일 오후 이마트 왕십리점은 수 시간 만에 삽겹살이 동났다.

오후 6시에는 정육코너에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오후 7시10분께 다시 찾은 이 곳은 1시간 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었다.

진열대 위에 "오늘 삼겹살은 품절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팻말이 올라와 있었다.

이따금 장바구니를 뜬 사람들이 진열대를 기웃거리다 이 팻말을 보고는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마트 측은 "오늘 하루 동안 삼겹살이 1천800㎏이나 팔렸다"면서 "내일 공급업체로부터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한 여성 고객은 이마트보다 10원 더 싸다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고구마(700g 1봉 1천550원)를 진열대를 뒤졌다.

 "그 제품은 오후 들어 다 나갔어요. 내일 일찍 오셔야 살 수 있습니다"
점원이 이같이 말하자 이 고객은 하는 수 없이 진열대에서 좀 더 가격이 비싼 다른 고구마 1봉지를 카트에 담고는 "제일 싸면 뭐해, 없는데.."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애초부터 구입량을 제한한 물품도 있었다.

이마트 왕십리점은 할인 대상인 국내산 삽겹살을 1인당 2㎏으로 한정하고 있었다.

롯데마트 삽겹살 코너에서도 100g에 860원에 팔겠다고 신문에 광고된 국내산 삼겹살은 품절된 상태였다. 비어 있는 진열대에는 조그만 글씨로 `1인에 1.5㎏까지만 팝니다'라고 안내문이 남아 있었다.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린 품목들은 구입량을 한정하고 있거나 조기에 다 팔려 나간 경우가 종종 보였다.

이 점포에서 경쟁사보다 160원 싸게 내놓았다고 광고한 바나나는 진열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옆 진열대에는 이 바나나보다 다소 가격이 높은 다른 제품들이 있었고, 점원은 "많이 살 생각 없으시면 품질 좋은 것으로 가져가세요"라며 더 비싼 제품을 권했다.

가격 경쟁 제품인 CJ햇반(210g 3개 + 1개)가 놓여 있던 진열대에도 제품은 없고 `고객 성원에 힘입어 품절됐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붙여져 있었다.

4천50원에 판매되는 해태고향만두(910g+330g)의 경우, 1인당 2봉지만 살 수 있었고 그나마 오후에는 모두 팔려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광고와 실상이 다르다" = 광고내용과 다른 규격의 제품을 파는 경우도 있었다..

16일 오후 이마트 왕십리역점에서는 해태 고향만두와 오리온 초코파이 제품이 광고내용과 다른 규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마트 직원은 "해당 규격이 동나 대체 상품을 팔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마트가 7일 12개 품목, 15일 10개 품목 등 두차례에 걸쳐 가격을 내린 22개 품목 중 서울우유(2.3ℓ), CJ햇반(210g×3), 비트(2.1㎏×2), 맥심 모카골드(250입), 켈로그 콘푸로스트(600g) 등은 당초 광고내용보다 오히려 조금씩 싸게 팔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객 중에는 각 대형마트들이 펴는 가격 인하책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신모(39)씨는 "진열대를 열심히 뒤져도 광고에서 본 물품이 없는 걸 보면 그 물품을 매우 적은 양만 갖다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일부 물품이라도 가격이 많이 싸졌다니까 기분은 좋은데, 계산을 하고 보니 광고에 안 나온 물품들을 주로 샀더라"며 "대형마트라면 들쭉날쭉한 판촉보다는 꾸준히 싼 가격에 물품을 파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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