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자본시장의 과거와 현재…서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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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자본시장의 과거와 현재…서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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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지훈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컨슈머타임스 김지훈 기자] 여행을 좋아하는 금융 기자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자본시장의 역사를 길 위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열광했던 어느 만화 속 주인공이 된 마냥 한국거래소 학예사가 직접 선별해 전국 14곳으로 내던진 구슬을 찾아 헤매고 왔다고 할까. 이는 3박 4일간의 자본시장 역사탐방이자 1200km에 이르는 대장정이기도 하다. 땡볕과 폭우에 몸은 지쳤을지 몰라도 마음만큼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처럼 설레고 열정적이었다. 희비가 교차했던 자본시장의 역사를 리와인더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편집자주>

자본시장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기 전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목적지는 뚜렷했지만 어디부터 방문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뜻깊은 장소를 먼저 들러보고 싶었지만 한 군데도 빼놓지 못할 만큼 의미가 깊은 곳들이었다.

현재 금융중심지인 여의도에서 여정을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집과 가까운 곳부터 들러야 할지 고민했다. 과감하게 내린 결정은 한국 최초의 공인주식거래시장인 경성주식현물취인소 건물이 있던 곳을 처음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왼쪽) 경성주식현물취인소 전경.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오른쪽) 현재 모습 [사진=김지훈 기자]

어둠이 깔린 깊은 밤, 경성주식현물취인소가 있던 1920년의 명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여전히 이곳 일대는 활기가 넘쳤으며 사람들이 많았다. 과거에 주식현물취인소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큰 변화가 느껴졌던 곳이다. 새삼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지도 어플을 켜고 이리저리 살폈지만 눈앞에 큰 건물이 찾고 있는 곳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헤맸다. 길을 돌아 더 작은 길을 찾았고 그 속에서 현재 아르누보센텀 빌딩의 입구와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 더 옛것을 찾기 위해 화려함을 피해 뒷골목으로 이동한 것이다.

부분적으로 간판 전등이 나가 운치를 더했던 곳으로 기억된다. 이곳이 과거에 화려했던 자본시장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떨치게 할 만큼 어떤 관계성도 찾을 수 없으며 현재는 수많은 상가가 밀집하고 있다.

경성주식현물취인소는 대한증권거래소(1956년)가 여의도로 이전(1979년)하기 전까지 증권시장이 자리했던 곳으로 금융 중심가 명동의 본산이다.

해방 후 한국 증권계는 증권구락부를 중심으로 증권거래소 설립을 꿈꿨다. 하지만 당시 사회‧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 실현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54년 정부와 대한증권업협회를 중심으로 증권거래소 설립추진위원회가 생겼고 1955년 '대한증권거래소 설립위원회' 조직 후 1956년 2월 11일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증권취인소령'에 따라 금융‧보험‧증권단이 출자한 영단제 조직 대한증권거래소가 정식 설립된 것이다.

당시 이 건물은 굉장히 멋있었다고 한다. 지붕 부분이 특히 아름다웠는데 한국전쟁 때 파괴 돼 보수하지 못하고 지붕이 없는 상태로 개소를 했다고 한다. 이름에 '주식'이 들어가는 만큼 이곳에는 실제로 주식이 상장됐다. 하지만 지금 개념처럼 거래가 되고 그런 건 아니었다.

당시 거래됐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조선식산신탁주식회사 3점이 한국거래소에 전시돼 있어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다.

(왼쪽) 대한증권주식회사 전경.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오른쪽) 현재 모습 [사진=김지훈 기자]

다음 행선지는 대한민국 금융 1번지 여의도로 떠났다. 한국의 최초 증권회사이자 첫 번째 거래소 회원인 대한증권주식회사의 흔적을 찾았다. 현재는 교보증권 본사가 자리한 곳이다.

이곳을 말한다면 먼저 언급한 증권구락부라는 한국 최초의 증권 단체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이 단체가 중요한 이유는 구성원들이 증권업 협회 초대 멤버들로 대표적으로 송대순 대한증권업협회 초대 회장과 일제시대 투자왕인 조준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자기들이 매집한 증권을 거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미약했고 이후 1949년에 한국 1호 증권회사인 지금의 교보증권인 대한증권을 이 자리에 설립하게 된다. 현재는 지하철 5호선과 9호선이 교차하는 여의도 중심으로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곳이다.

[사진=김지훈 기자]

다음으로 증권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인 한국거래소에 들렀다.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코넥스시장의 개설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증권의 매매거래, 장내파생상품의 청산 및 결제, 상장, 시장감시 등 자본시장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의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회원제를 채택하고 있어 금융투자회사나 은행만이 한국거래소와 직접 거래가 가능하다.

공공기관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2015년 1월에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되면서 민간기업이 됐다. 2005년에 한국증권거래소(KSE), 한국선물거래소(KOFEX),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 등 4개 단체가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통합됐으며 2009년 2월 4일에 한국거래소(KRX)로 사명을 변경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79년 명동에 있던 한국증권거래소가 현재 여의도 한국거래소 자리로 이전했으며 1979년~1999년까지 수작업매매시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본관 2층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공간은 과거 10개 육각포스트가 놓여 있었고 사람이 많을 때는 400명 정도가 이 안에서 거래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포스트마다 주식 빨간색, 채권 초록색, 선물 옵션은 노란색으로 구분했다.

거래소 직원들은 각 분야에 맞춰서 주식은 빨간색 자켓, 채권은 초록색 자켓을 입었는데 이게 근거가 돼 상장식 날 코스닥 위원장 등이 상장사 대표 등에게 빨간색 자켓을 입혀주고 그걸 입고 북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세 게시판. [사진=김지훈 기자]

또한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는 시장 대리인이라는 직업이 존재했다. 지금 데이터로 직접 주문을 내면 증권회사를 통해서 체결이 이뤄지지만 당시에는 개인 투자자가 증권을 든 증권회사에 전화를 하거나 문서 작성을 통해 가능했다. 그것을 거래소 시장 대리인들이 받아서 거래소 포스트에 냈다. 지금은 사라진 직종이지만 시장 대리인은 반드시 필요한 요직이었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육각포스트와 시세 게시판 등은 한국거래소에서 관람 가능하다. 이 공간이 궁금하다면 한국거래소 KRX 홍보관을 찾으면 된다. 한국거래소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는 다양한 전시 관람은 물론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금융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이다.

개인 관람객의 경우 사전예약은 불필요하며 방문 후 박물관을 둘러보면 된다. 하지만 전시해설사의 설명과 금융교육은 제한된다. 단체관람은 10명~60명까지의 인원(금융교육실 이용의 경우 10명~40명)을 원칙으로 사전 예약한 단체(온라인 신청)에 한해 전시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자 이 여행의 일부를 기입했을 뿐이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자본시장의 역사는 막상 들여다보니 더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이 여행은 다음 시간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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