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천명관 장편 '고령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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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천명관 장편 '고령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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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너땜에 못살아.

일주일에 한번은 내가 내동생에게 하는 말

내가 너네들 때문에 못산다 못살아.

우리엄마가 하루에 한번이상은 하는말

이 죽일놈의 가족들.."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문학동네



좋아하는 책이 하나 둘 늘어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 둘 늘어난다는 말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은 작가를 향한 나의 무한한 애정을 퐁퐁 샘솟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단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인데도 좋아하게 된 작가 천명관.
 
<고래>에 이은 그의 작품 <고령화 가족>은 전작에 비해 보다 가볍고 보다 현실적이며 보다 입체적이다.
사실 전작 <고래>는 메타글쓰기로서 소설의 영역을 넓혀주었지만 현실적이진 않았다.
물론 그것은 메타글쓰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허나 후작인 <고령화가족>은 그와 다르게 인물들은 보다 입체적이고 재미있으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유쾌하다.
<고래>가 가지고 있는 원시성, 진중함 그리고 이야기의 무거움이 쏙 빠져서 이 책은 가볍고 신나고 재미있다.
또한 두 소설은 같은 가족을 소재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래>의 가족은 스펙터클한 반면에 <고령화가족>의 가족은 찌질하다. 닮은 듯 다른 소설인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저런 사람들을 가족이라고...라거나 저런 가족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어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없겠는가? 가족이라서 늘 좋고 늘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지지리 웬수 같은 경우도 많다.
술 먹고 파출소에서 뻗은 남편을 데려다 벗겨 침대에 눕혀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심정이라거나 새로 산 핸드백을 홀랑 훔쳐서 여자친구에게 갖다 바친 동생의 만행을 목도한 날이라거나 아버지 몰래 동네 계를 하다 계주 아줌마가 날라서 내 등록금마저 같이 날려버린 엄마를 본 날..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저런 웬수같고 지긋지긋하고 가족이라니까 마지못해 목구멍으로 참으면서 살아가는 날이 많다.
물론 내 엄마도 날보고 그럴 것이고 내 동생도 날보고 그럴 것이다.
 
여기에 그런 가족이 있다. 지긋지긋해서 이젠 웬수도 그런 웬수가 없는 가족들 말이다.
큰형이란 작자는 아동성추행범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왔고 여동생은 이른바 물장사를 하며 이혼과 결혼을 밥 먹듯이 하고 나는 그나마 가족들 중에 가장 가방 끈이 길다고는 하나 영화가 실패한 이후 폐인이 되어버린 인생이다.
그런 형제들이 중년이 지나 엄마 품으로 돌아온다. 아~찌질해도 이렇게 찌질할 수가 20대 후반의 니트족도 아니고 캥거루 족도 아닌 중년이 지나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는 사람이라니 생각만해도 짜증을 왈칵 치솟는다. 그래서인지 이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허나 신기한 건 엄마다.
이 대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큰 공헌을 하면서도 이 엄마가 어쩐지 생기가 도는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그리고 먹이기 위해 돈을 벌고 중년이 넘어 돌아온 생활비 한 푼도 안내는 아들들을 위해서 짙은 화장을 하고 외판 일을 하면서도 엄마는 연신 생기가 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아들들이 뭐가 예쁘다고 엄마는 생기가 돌까?
 
끈끈한 모성애, 천명관이 그리는 이 찌질한 가족을 이끌고 있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전작에서 강인한 모성을, 때로는 잔혹한 모성을 보여주었다면 <고령화가족>에서 그는 끈끈한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운다.
70세가 넘은 노모는 중년이 넘어 처절하게 실패한 인생으로 돌아온 아들들을 두말 않고 받아준다. 그리곤 그들의 잘못마저 덮어준다. 아주 덤덤히... 아, 지겹다. 맞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었다면 천명관이 그리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저 모성애로 똘똘 뭉친 존재라면 나는 이 소설이 참 찌질 하면서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웃기지만 결코 유쾌하지는 않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한평생 여자로 살아야 하는 나에게 어머니와 끈끈하고 똘똘 뭉친 모성애라는 주제는 참으로 무겁고 짜증나고 할 수만 있다면 보디슬램을 꽂아버리고 싶은 단어니까 말이다.
그러나 천명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모성 안에 숨어있는 여성성을 끄집어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 가족의 숨은 비밀을 알 수 있다. 막장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출생의 비밀 같은 거 말이다.
허나 걱정은 마시라 막장드라마처럼 그 출생의 비밀은 무겁지도 사건의 전반을 끌고 가지고 않는다. 그것은 그저 에피소드의 하나로 스쳐지나 갈 뿐이니 말이다. 아~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 찌질한 40~50대의 니트족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장면들이다.
지긋지긋해하고 치를 떨고 때로는 머리 터지게 싸워가면서 그들은 일상을 꾸려간다.
그야말로 아~가족, 지긋지긋한 그 놈의 가족이다. 리얼했다. 가족이란 무릇 그런 것이다.
매스컴이나 소설에서 다뤄지는 가족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가족의 힘, 가족의 정 그런 거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난 살면서 "우리가족을 너무 사랑해~" 라는 생각보다 "저 웬수같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 적이 더 많았다.
가족이기 때문에 마지 못해 참은 적도 있었고 가족이기 때문에 남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일을 이해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지만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가족이란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인 사람들이다.
밉고 싫고 때로는 오만 정 다 떨어지지만 '그래도..가족이잖아' 가 되는 사람.
나도 내 가족이 싫지만 누군가 남이 내 가족을 욕하는 것 못 참을 것 같은 기분, 내 동생이 백수에 날건달인 건 사실이지만 그걸 누가 걸고 넘어졌을 때 이 악물고 싸우게 되는 사람들 그게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지겹고 지겨우면서도 그래도... 내가 챙겨야지 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 가족이 딱 그렇다. 가족간의 갈등부터 화해까지 지긋지긋하게 찌질하고 그래도... 로 마무리된다. 리얼하다. 그간 여느 영화에서 그린 가족보다 리얼하다. 그래서 배시시 웃음도 나고 울컥 눈물도 난다. 천명관 표 가족이야기인 것이다.
"고령화건 노령화건 좋다. 그래, 가족이라서 그래도...하고 산다."  책을 덮고 남은 한 줄이다.
 

 
 
 -엄마 작년에 돌아가셨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오함마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가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한참동안 흐느끼던 오함마는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하다…….엄마한테 미안하고…….
미연이한테도 미안하고 너한테도 미안하고…….
그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울먹이며
계속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의 눈앞엔 커다란 덩치의 그가
어린애처럼 몸을 떨며 흐느끼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러게 씨발, 누가 그렇게 살래?
 
-본문 284쪽 발췌-
 
 
 

천명관 소설읽기




 

 

출처:참좋다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gotozoo3/118243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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