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패션 성공 '옷'보다 '문화'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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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패션 성공 '옷'보다 '문화'에 달렸다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12월 07일 0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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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중년을 넘어선 여성들의 외모는 서로 닮아간다.

짧게 잘라 볶은 파마머리를 시작으로 요란한 무늬나 색상, 낙낙한 핏의 일명 '몸빼바지' 등을 공통분모로 하는 '아줌마 패션'이 50~60대 여성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사무직 종사자들의 옷차림은 찍어낸 듯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넥타이부대'라고 싸잡아 부른다. 패션도 재미없고 '비슷할 것'을 강요당하는 넥타이부대의 생각도 재미없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옷차림이 말해주는 그들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이었다. 연령·성별이라는 프레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갇히지 않고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능란해 보였다.

백발의 긴 생머리를 우아하게 올려 묶고 민소매 블라우스에 하늘색 줄무늬의 롱스커트를 매치한 할머니나 몸에 밀착되는 늘씬한 정장에 고풍스러운 중절모와 지팡이로 멋을 낸 노년의 신사는 그 자체로 풍경이었다.

과감한 노출이나 요란한 의상에도 부러 눈살을 찌푸리거나 대놓고 힐끔거리며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없었다. 당황하는 쪽은 관광객인 내 자신뿐이었다.

그들은 패션을 문화로서 충분히 존중하고 무례한 시선으로 간섭하지 않았다.

거기서 인생 처음으로 '핫팬츠'를 구입한 이유다. 모델 몸매가 아니어도 아무도 나를 비웃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서였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엔 옷장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그들은 단순히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지키는 도구로서의 '옷'을 넘어 나를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서 '옷'을 소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들이 패션 종주국의 지위를 이날까지 지켜올 수 있었는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었다.

얼마 전 국내 1위 패션업체 삼성물산(구 제일모직)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세계 최대 남성복 어패럴 전시회 '삐띠워모(Pitti Uomo)'에 국내 남성복 브랜드 '준지(Juun.J)'가 게스트 디자이너로 초청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이를 기념해 준지 디자이너 정욱준 상무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삼성물산 패션, 당시 제일모직에 합류한 이래 처음 갖는 인터뷰 자리였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던 걸까. 예상했던 질문이 날아 들었다.

K-뷰티의 성공에 비해 K-패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조심스럽게 "이제 시작 단계"라고 답했다.

이어 "문화가 알려진 다음, 그 다음에 패션이 알려지는 게 맞는 순서"라고 덧붙였다. 결국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선망이 패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로 들렸다.

패션은 문화와 닮아있고 닿아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 상무는 또한 해외에서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일관성 있는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제일 중요하다"는 답을 내놨다.

'K-뷰티', 그러니까 아모레퍼시픽으로 대표되는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아시아의 미'라는 중심 가치와 순수한 자연주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마케팅에 성공한 것과 같은, 우리만의 색깔과 노하우가 패션에는 녹아있지 않다. 

오직 유행만 있을 뿐이다.

최근 신세계와 휠라 등 일부 업체들이 아웃도어 사업을 정리 한데서 엿볼 수 있듯 돈 되는 분야에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다 '시장 포화→공멸'로 가는 수순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 우리 브랜드만의 차별성' 대신 '남과 같은 것, 남이 해서 잘 되는 것'만 열심히 쫓은 결과다.

업체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남들처럼'에 만족하는 우리의 눈치 문화가 패션산업에도 녹아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틀을 깨고 판도를 바꾸는 과감한 시도가 없는 'K-패션'은 그래서 심심하다.

60대 여성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활보할 수 있는 나라, 나와 다른 차림이라고 해서 공공연한 힐난과 수근거림으로 금기와 한계를 만들지 않는 나라, 문화와 패션이 발맞춰 만들어가면 좋겠다.

패션을 보는 시각에 다양성과 자유에 대한 존중이 전제된다면 K-패션도 좀 더 세계무대에서 다양한 시도로 주목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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