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 속 여성 캐릭터 옷 그만 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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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게임 속 여성 캐릭터 옷 그만 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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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서순현 기자] "내 속옷은 안 사면서 게임 캐릭터 속옷은 1달에 1번은 산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번화가. 약속이 늦춰져 게임이라도 할 겸 PC방에 들렀다. 앉자마자 옆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로부터 낯뜨거운 대화가 이어진다. 게임 캐릭터의 속옷에 대한 주제다.

모두 남자 학생들이었지만 캐릭터는 대부분 여성이다. 얼굴이 예쁘고 다리가 길고 몸매도 매우 좋다. 모든 이들이 상상하는 이른바 '명품 몸매'다. 캐릭터 위에 여러 속옷이 입혀지고 노출도가 높아질 때마다 학생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성인이 들어도 불편하기 그지 없는 이러한 대화는 1시간 정도 이후 그들이 PC방을 나설 때까지 지속됐다. 해당 게임은 엄연히 괴물을 사냥하는 액션게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 일부가 드러나거나 속옷이 보이는 등 여성 캐릭터의 노출을 강조한 게임들이 PC나 모바일을 불문하고 봇물을 이루고 있다. 노출도가 높아 '색기'를 뿜어낼수록 캐릭터의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매년 국내 게임의 여성 캐릭터들은 특히 여름이 되면 갑옷을 벗는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각종 인기 게임들은 매년 7월을 전후해 비키니 수영복 등 여름 코스튬을 내놓는다. 토끼 귀 장식이 달린 머리띠, 망사 스타킹 등 복장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국내 게임산업의 이러한 행태는 나름 속사정이 있다. 셧다운제 등 게임 중독 규제가 심해지면서 게임개발사들이 성인게임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게임의 소비층이 성인으로 옮겨간 탓도 있지만 청소년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는다.

거기에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라 불릴 만큼 경쟁이 심하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에서 들리는 푸념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대책이나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현행법상 특정 게임이 지나치게 선정적일 경우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지정할 권한 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정부가 게임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키 위해 내놓은 방안들도 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지난달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청소년유해환경 접촉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성인용 사이트와 게임 이용을 위해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한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교 학생의 경우 55.6%가 몰래 가족의 번호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셧다운제 주무부처인 여가부의 2012년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셧다운제 시행 이후 심야시간 청소년 인터넷게임 이용시간은 불과 0.3% 줄었다. 실효성은 없고 범법자만 늘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을 통해 게임 산업 내수시장 규모는 셧다운제가 시행된 2012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걷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3년 이후에는 마이너스 성장세다. 셧다운제 도입 후 내수시장은 약 1조6000억원 규모가 감소했다.

게임의 노출 논란은 잘못된 규제가 만들어낸 왜곡된 문제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의 작년 게임 산업 수출액은 12조1028억원으로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의 60%를 차지했다. 수출 효자 산업이 내부의 문제로 병들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과도한 규제보다는 건전한 시장을 활성화 시키기 위한 정부의 지원과 업계의 자율적 자정작용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게임 속 여성들이 이 추운 연말에도 속살을 내놓은 채 다니는 일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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