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21세기형 공리주의 실험
상태바
코로나 팬데믹, 21세기형 공리주의 실험
  • 박항준 세한대 교수 danwool@naver.com
  • 기사출고 2020년 04월 13일 09시 21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껏 인류의 통념은 국가나 사회가 긴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민주적 절차를 버리고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즉, 독재를 용인하는 철학적 프레임을 유지해왔다. 이는 난세에 다양한 목소리로 인한 국론분열보다는 영웅이 나타나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와 민족, 사회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유지하는 것이 위기 극복에 보다 효율적이라는 희망과 의도가 숨겨져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인 정은경 본부장을 영웅으로 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 공리주의적 사고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이러한 인류적 통념이 얼마나 환상에 머물러 있었음을 바라보게 된다. 인류는 일본과 중국과는 다른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된 한국의 극명한 대응전략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는 독재적인 정치구조로 인해 획일성과 빠른 의사결정이라는 장점을 가진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비전문성을 가진 리더의 최종 결정과 관료주의적 행태로 인해 전 세계에 신종 바이러스를 급속히 퍼트리고만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 20세기와 마찬가지로 21기에 들어와서도 명분 하나로 소(小)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보이지 않은 독재시스템 일본! 이 두 공리주의적 정치 시스템은 결국 21세기형 위기극복에는 실패하는 리더십임을 증명하고 있다.

잠시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사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위험한 도박을 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강대국 눈치만 보냐는 핀잔에도 세계적인 허브공항과 국경을 폐쇄하지 않았고, 심지어 집단 발병된 대구시마저도 폐쇄하지 않고 수십만 명의 검사와 동선추적만을 수행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가?', '예배를 들여야 하느냐 마느냐?', '마스크 대란과 검사비, 치료비를 누가 내야 하느냐?'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수십 개의 방송사마다 다른 관점을 토해내고, 심지어 출연한 의학 전문가들마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면서 바이러스 대란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사재기(panic buying)가 없다. 사망률은 1%대에 머물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래트닝 더 커브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확진자 치료가 의학적 통제 하에 들어와 있다.

 

플래트닝 더 커브(Flattening the Curve) 모델. 하나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발병률이 급증했음을 나타내는 가파른 봉우리고(보라색),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인 감염을 나타내는 완만한 곡선(빗금)이다. [자료 미국 CDC]
플래트닝 더 커브(Flattening the Curve) 모델. 하나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발병률이 급증했음을 나타내는 가파른 봉우리고(보라색),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인 감염을 나타내는 완만한 곡선(빗금)이다. [자료 미국 CDC]

혹자는 질병관리능력에 한국을 칭찬하고 있지만 세계는 이러한 대한민국을 민주주의의 실험장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인류 통념상 위급 단계에서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알고 있었던 공리주의적 독재 카리스마가 21세기에는 효용성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한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담론'이 얼마나 중요한 민주주의적 절차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21세기형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된 한국 정부와 국민의 행동이 독재나 영웅 없이도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한국에서의 담론화과정은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기 시작한다. 625 발발 직후 의정부까지 북한군이 밀고 내려왔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상황을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의 '혼란 방지'를 명분으로 말이다. 중국이나 일본 정부가 수행했던 '정보통제'는 국민의 '혼란 방지'라는 명분으로 어쩌면 위기 상황에서 인류가 이제껏 가져왔던 당연한 대응 매뉴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바이러스의 공격에 적지 않은 인구 5000만 명을 상대로 정보를 공개하고 각각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실험을 한 것이다. 매일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국민에게 진행상황, 특히 이름 모를 전염병에 대해 조금씩 알아낼 때마다 정부의 대응방식의 변화와 수정, 이로 인해 오는 정부의 오류 수정마저도 솔직히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소통과 통섭의 과정은 국민들에게 예측가능성을 제공하여 안정을 가져오게 된다.

혹자는 한국 국민이 훌륭해서, 온라인 쇼핑이 발달해서 사재기가 없었다고 원인 분석을 하지만 영어로 panic buying인 사재기는 말 그대로 불안감에서부터 오는 행위다. 예측가능성이 사재기를 부르지 않은 것이지 온라인 쇼핑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혹 정부가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금번 코로나 사태로 깨우쳐야 할 것은 다시 말하지만 '사회적 담론화' 과정이다. 5천만 명의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을 이기적이라고, 잘 모른다고 눌러버리고 '나를 따르라'라는 리더십으로 국민들을 '정보통제'하는 공리주의 방식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21세기형 국가적 위기들을 분명 극복할 수 없다.

물론 강력한 리더십이 빠른 대처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슈퍼맨이 나타나서 사이다 발언과 정책을 날리면 국민들은 대리만족을 하는데 익숙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와 달리 21세기에는 국민의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가 공유되며, 다원화된 사회다. 강력한 카리스마나 획기적인 정책제안, 정보통제나 빠른 의사결정보다는 조금은 느린듯하지만 '사회적 담론화' 과정이 바이러스 퇴치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민주주의적 실험에 대한민국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담론'이라는 민주주의의 실험의 성공으로 나온 핵심 성과지표(KPI)를 활용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표적으로 '재난지원금'은 이미 이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세계적인 대공황과 자국 이기주의가 극에 달할 것에 대비해 코로나 민주주의 실험에서 익힌 담론의 원칙과 지표로 앞으로 다가올 경제 쓰나미도 국민과 함께 슬기롭게 극복해주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