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오는 꾼들은 십중팔구 '베팅'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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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 오는 꾼들은 십중팔구 '베팅' 중독"
  • 김재훈 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2년 05월 22일 0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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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명암'] ② 한탕노린 정신병자-승부조작 '불편한 진실'
   
 

서울경마공원에서 경마지를 연신 들춰보고 있는 황모(서울 은평구)씨. 닳고 닳은 구두와 찌든 청바지, 손톱에 낀 때 등 허름한 행색이 그를 말해주고 있다. 검은색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으로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지면에 휘갈기더니 손가락에 침을 묻혀 다른 페이지를 넘겨보느라 바쁘다.

접근한 기자의 입에서 '취재'라는 말이 나오자 "뭣 때문에 그러느냐"며 경계했다. 취재의도를 설명했다.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그는 기다렸다는 듯 한국마사회에 대한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자양반 삼복승이라고 알아? 건전한 놀이문화 같은 소리하고 있네……"

◆ "정신병자들이나 다름 없지. 못 끊어 이거……"

삼복승은 순위와 관계 없이 먼저 들어오는 상위 3개의 말을 맞추면 된다. 1등만 맞추는 단승식과 순서와 관계없이 1·2등을 맞추는 복승식, 1·2등을 순서대로 적중시키는 쌍승식에 비해 까다롭다. 그런 만큼 배당금은 이들에 비해 적게는 수십배에서 많게는 수백배까지 높게 형성된다. '한탕'을 노리는 경마꾼들이 주로 찾는 승식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경마팬들의 흥미배가와 소액구매 유도차원에서 마사회가 전격 도입했다.

"예전에는 다 털리고(잃고) 주머니에 몇 천원 정도 남으면 우동이나 한 그릇 사먹고 집에 돌아갔거든. 그런데 삼복승식이 생기면서부터 단돈 100원만 있어도 몽땅 마권을 구매하는데 쓰는 나 같은 사람이 부지기수야. 정신병자들이나 다름 없지. 못 끊어 이거……"

경마를 건전한 놀이문화로 정착시키겠다는 마사회의 의도가 낳은 일종의 부작용이다. 습관성 도박처럼 '베팅'에 중독된 경마팬들에게는 소액이나마 한 경기 더 뛰어들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알거지'가 되는 지름길일 수 밖에 없다. 도박중독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사회는 습관성도박 상담심리치료 전문기관인 유캔센터를 199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유캔센터는 전국 민간 상담센터와 병-의원과의 연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 질에 대해서는 그간 꾸준히 의문이 제기돼 왔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한국마사회 순매출액은 2조1564억원이다. 이중 도박중독 예방·치유 관련사업 예산은 38억원으로 순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8%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강원랜드는 순매출(1조2534억원)의 0.4%(50억원)를,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륜·경정사업의 경우 순매출액(8814억원)의 0.22%(19억원)를 도박중독 예방·치유에 지출해 대조적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전국 거점지역 대형 병원들과 (유캔센터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며 "심리학, 상담전문 인력이 포진돼 있는데다 다른 병원과 연계해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장객들 사이에는 '병 주고 약 준다'는 식의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길지 않은 대화가 마무리 될 때쯤 황씨는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이거 다 지들(마사회)끼리 짜고 치는 거야. 없는 X들 주머니 털어서 자기들 배 채우는 거지. 경마장은 즐겁게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라 돈 잃고 열 받아 가는 곳이야. 경마장에 오는 꾼들은 십중팔구 거지야. 젊은 사람들은 이쪽을 쳐다봐서는 안돼……"

황씨는 들고 있던 경마지를 쓰레기통에 구겨 던지고 걸음을 재촉했다.

   
 

◆ "베팅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이미지가 많이 왜곡"

감사원이 이달 초 내놓은 '한국마사회 기관운영감사'는 마사회 측이 승부조작 우려를 낳을 수 있는 경주마들에 대한 도핑테스트도 허술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진정제, 호르몬소염제 등이 포함된 치료약물 투여가 승부조작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관련해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은 최근 브로커에게 금품을 받고 경마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한국마사회법 위반)로 한국 마사회 소속 관리사 A씨, 조교사 B씨 등 2명을 구속했다.

돈을 받은 기수들이 우승 예상마를 타고 경기에 출전해 늦게 출발하거나 고삐를 당기는 등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승부를 조작해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약물이 사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건전한 놀이문화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의미다.

마사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마가 베팅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경마) 이미지가 많이 왜곡돼 있다"며 "카지노와 같은 도박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주마 생산농가가 200호가 넘을 만큼 농촌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산업육성법'이 통과됐다. 전국민이 저렴하게 승마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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